1학년, 학교에서 아이를 잃어버리다.(2)
어른으로서의 의무.
고요한 학교에서 돌아오는 건 의미 없는 메아리뿐.
“단풍아” “이 단풍”
시간이 지체될수록 단풍이를 찾는 사람들의 마음에 어두운 그림자만이 감돈다.
그러기를 30여분.
담임 선생님은 학교 안에 단풍이가 없다고 판단하셨는지 같은 반 학부모들에게 전화를 돌려본다고 교실로 되돌아갔다.
안절부절, 1분 1초에 피가 점점 말라가는 듯할 무렵.
한 무리의 아이들이 1층 현관 쪽으로 내려온다.
그리고 그 안에서 단숨에 알아본다. 단풍이다.
“단풍아, 어디 있었어? 엄마랑 선생님이 얼마나 널 찾은 줄 알아?”
무슨 상황이 벌어진 줄 모르는 단풍이는 자신에게 득달같이 달려들어 질문을 쏟아내는
엄마와 방과 후 선생님이 꽤나 당황스러운 모양이다.
“단풍아 어디 있다 온 거야?”
엄마의 물음에 단풍이는
“몰라”라고 말하며 혼란스러움을 표현한다.
“엄마랑 선생님들이 단풍이 없어진 줄 알고 엄청 찾았어, 레고 가방은 어디다 놓고 왔어?”
“몰라, 받은 적 없어.”
“노란 가방 레고 들어 있는 가방 받았다면서.”
“단풍아, 선생님이 아까 수업 시간에 나눠줬잖아.”
“아니, 없어 안 받았어.”
그때 우리의 시선이 단풍이의 손에 가 닿는다.
당황한 단풍이가 손에 들고 있는 목걸이를 뱅뱅 돌리며 주위를 분산시킨다.
“단풍이가 토탈공예 수업을 들었나 본데요.”
이건 또 무슨 소리란 말인가.
분명히 레고 수업을 들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럼 단풍이가 레고 수업에 들어갔는지 안 들어갔는지도 모르고 계셨어요?”
“아니, 출석체크 했을 때 분명히 단풍이 이름에 대답을 했는데.”
“ 그럼 레고수업에서 착오가 있었다고 치고, 명단에 없는 애가 토탈공예 수업을 들었는데 거기서도 몰랐다는 건 문제가 있는 거 아닐까요?”
“죄송합니다, 어머니”
연신 죄송하다는 방과 후 선생님과 내 사이로 어느새 담임 선생님이 나와 상황파악을 하신다.
“아고, 단풍아 어디 있었어. 찾아서 다행이네 귀한 수업 들었네. 어머니 걱정 많으셨죠.”
방과 후 선생님이 담임 선생님께도 죄송하다는 사과를 하자
한쪽으로 방과 후 선생님을 데려가시더니
“아휴 걱정 많았죠, 됐어요 그럴 수도 있죠.”
그 말이 내 귀에도 정확히 들려온다.
그럴 수도 있다니요. 저 말을 내 앞에서 할 필요가 있을까. 문제없이 찾았으니 다 해결됐다는 뉘앙스의 말이 곱게 들리지 않는다.
좋은 말이 나갈 거 같지 않아 단풍이를 데리고 일단 집으로 향하기로 했다.
사진 출처: 단풍이가 만들어 온 목걸이.
그리고 오는 길에 단풍이에게 자초지종을 묻는다.
“단풍아 오늘 엄마가 레고 수업이라고 했는데 왜 토탈 공예수업에 들어갔어?”
“토탈 공예선생님이 그냥 가라고 했어, 그리고 나 오늘 자기소개도 두 번이 나 했어.”
“왜 두 번이야? 단풍이 반에서만 한 거 아니야?”
“아니 토탈 공예선생님이 자기소개 다 시켰어.”
“아고 그 와중에 그 반에서 자기소개까지 했어? 수업은 재미있었어?”
“아니 재미없었어”
그 상황이 짐작이 갔다.
내성적인 아이가 큰 어른이 그냥 가라고 하니 군 말없이 뒤따랐을 단풍이의 모습이.
그리고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목걸이를 색칠하고 열심히 만들면서 시간을 보냈겠지.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면서도 목에 가시가 걸린 듯 답답함이 이른다.
그리고 고민에 빠진다.
이대로 아무 일 없었다는 넘어가야 할까. 아니다.
내 아이는 무사히 돌아왔지만 이런 일이 또 일어나서는 안 되지 않을까.
집에 돌아와 마음을 진정시키고 방과 후 코디선생님께 연락을 드렸다.
“네 단풍이 어머니, 아까는 많이 놀라셨죠? 너무 죄송해요.”
“어? 제가 방과 후 코디 선생님께 전화를 드린다는 게 잘못 드린 거 같네요.”
“아니에요 어머니 제가 방과 후 코디랑 레고 수업을 겸하고 있어요, 저한테 말씀하시면 돼요.
혹시 단풍이 다음 주부터 수업 못 보낸다고 연락하신 건가요?”
“아니요, 단풍이가 하고 싶다고 해서 신청한 건데 이런 일로 가지 말라고 할 수는 없어요.
수업은 보낼 거고요, 제가 전화드린 이유는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되잖아요.
일단 레고수업에서 단풍이가 출석했는지도 놓치셨고, 백번 양보해서 실수할 수 있다고 이해해도 토탈 공예에서도 출석부에 없는 아이가 들어가서 자기소개를 하고 수업을 들었는데도 모르셨어요.
아이가 1시간 넘는 시간 동안 없어졌어도 모르셨다는 건데 그러면 어떻게 믿고 방과 후 수업을 보낼 수 있겠어요? 1학년 아이들은 출석을 부르셔도 아이들 얼굴하고 확인하셔야 맞는 거 아닐까요?
그리고 인원수 확인도 다 안 하시나 봐요.”
“정말 죄송해요 어머니, 그 부분 제가 책임지고 모든 방과 후 선생님께 공지해서 얼굴확인하고 출석하게 할게요. 인원수 체크도 더 정확하게 하고요. 그리고 1학년 아이들은 수업 후에도 당분간 제가 인솔해서 내보내겠습니다. 정말 죄송해요 어머니.”
선생님의 계속되는 사과에 나도 마음이 불편해졌다.
할 말은 해야 하지만 좋지 않은 말을 해야 하는 입장도 편치만은 않다.
그리고 단풍이를 찾으며 애가 탔을 선생님의 맘도 안타까워졌다.
“선생님도 단풍이 찾느라 고생하셨어요, 앞으로 이런 일 생기지 않게 잘 신경 써 주세요.
그리고 오늘 못 받은 재료 챙겨서 보내 주세요.”
그렇게 단풍이의 실종사건은 마무리되었다.
무사히 아이는 내 품으로 돌아왔지만 씁쓸함이 여운처럼 남아 겉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실수가 안전의 문제라면 다른 이야기가 된다.
내가 담임 선생님께 서운했던 점은 아무 일 없이 찾았고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마무리 때문이었다.
안전상의 문제가 발견됐고 그로 인해 문제가 생겼다면 그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으며 진심 어린 사과를 하고 부모와 아이를 귀가시킨 후 방과 후 선생님을 다독였어야 했다.
하지만 많이 놀라셨죠 다행이네요란 말만 남기신 채 먼저 교실로 돌아가셨다.
만일 아이를 찾지 못했다면 놀라셨죠, 죄송해요란 말 만으로 끝날 일이었을까
충분히 지켜져야 할 규칙들이 너무나 안일하게 지켜지지 않고 있다.
누군가는 무사히 찾았으면 됐지 뭘 유난스럽게 구냐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자식의 안전이 확보되었다고 그냥 묵인하면 이 같은 일은 또 일어난다.
누군가에겐 불편한 전화와 민원이겠지만 이 또한 아이들을 지켜내기 위해서 어른으로서 해야 할 의무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