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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다 Oct 19. 2023

인생을 걷다.

걸음에 의미를 부여하다.


8개월 된 걷기 새내기.


이제야 걷는 하루가 적응이 된 듯하다. 


하늘이 흐리거나 비가 오면 어떻게든 운동을 안 할 수 있어서 좋았던 나는 이제 없다.


오늘도 아이들 등원과 함께 시작된 나의 걷기 운동.


공원 쪽 횡당보도를 건너는 순간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순간 내 맘속에 게으름이 치고 올라온다.


‘비 온다. 비 오는 날 무슨 운동이야 집으로 가.’


집에 들어가면 나오기 싫을 것이란 걸아는 게으름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게으름의 말에 동조하며 이어폰도 없다는 핑계를 삼아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간단히 아침을 먹고 밖을 보니 비가 쏟아지는 것도 아니요 안 오는 것도 아닌 애매한 상태다. 


양심에 찔려하던 습관이란 놈이 나를 일으킨다.


‘그럴 땐 움직여, 나가서 후회하는 게 옮아.’ 


이럴 땐 습관이란 놈의 말을 듣는 것이 옳은 일임을 8개월의 시간이 증명해 주었다.


이어폰과 우산을 가지고 하천으로 향했다.


시원한 바람과 하천에 빗방울이 떨어지며 파장하는 빛을 구경삼아 걸으며 습관이란 놈의 말을 들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나오기 까지가 힘들지 걷을수록 정신과 몸이 건강해진다는 것을 스스로 느낄 수 있다. 

특히나 걷는 사람의 특권인 계절의 변화를 제일 먼저 가까이 관찰할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끼는 날들이다.


새싹이 간질간질 움트던 봄부터 파릇파릇해지던 무더운 여름을 지나 알록달록 색동옷을 바람결에 자랑하던 가을까지.


요즘은 나뭇잎이 떨어지며 이제 가을과 안녕할 준비를 하라고 자연은 귀띔 해 준다.


비 오는 날인데도 우산을 들고 비를 맞으며 운동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저 사람들도 게으름을 이긴 습관이란 놈 때문에 나와 있는 거겠지.


혼자서 걸어야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이 많다. 

머리로 여러 가지 생각들을 정리하고 평소에 소홀히 지나치는 것들이 보인다.


같은 시간에 나와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운동하는 사람들을 관찰하며 생각해 보는 것도 좋고 

계절에 따른 꽃들과 하천에 사는 생물들, 하천 근처에 사는 길고양이 들까지 모두들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투성이다.


반환점을 돌아 되돌아오는 길.


손을 꼭 붙잡고 가는 노부부가 눈에 들어온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려는 순간 할아버지께서 나를 향해 웃으시며 손을 흔들어주신다. 

나도 웃으며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자 옆에 할머니께서도 밝은 미소로 답해주신다.


가볍게 지나칠 인연에 의미를 부여해 주신 그분들의 따듯한 인사에 순간 눈시울이 붉어지며 많은 생각들이 스친다.


잠깐의 인사가 저렇게 따듯할 수도 있구나. 

저런 여유와 배려는 쉽게 갖게 되는 게 아닐 텐데 잠깐 스친 그분들은 어쩌면 따뜻한 인생을 사신 분들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분들의 미소에 오늘 나의 걷기 운동은 다른 때 보다 힘이 되고 행복했다.

걷기 운동을 한다고 하면 혹자는

 ‘나는 그 시간이 너무 아까워’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나는 걸으며 인생을 본다. 

자연의 변화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나와 같은 시간 같은 운동하는 사람들을 보며 그 들의 생을 상상해 본다.


옷차림, 걸음걸이, 나누는 대화들 그것들이 모두 나에게 그들을 상상해 볼 수 있는 힌트가 된다.

그리고 가끔 따뜻한 마음을 전해주는 노부부와 같은 사람들을 만나면 운동과 함께 따스한 마음이라는 보너스를 가지고 귀가한다.

어쩌면 이 보너스 때문에 매일 걷고 있는 나를 발견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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