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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다 Nov 02. 2023

못해

마음속의 공허한 외침.

벚꽃이 흩날리던 봄날의 끝자락.

단풍이는 한껏 가벼운 발놀림으로 나에게 다가와 그 아이를 소개했다.

"얘 이름은 백달이야"

소중한 보물을 다루듯 양손 가득 장수풍뎅이의 애벌레를 들고 백달 이를 소개하는 단풍이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밝아 보였다.

그런 아이에게 차마 키울 수 없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백달이는 네가 돌보는 거야 엄마는 신경안 쓰게 해 줘"

단풍이는 걱정 말라며 3~4일에 한 번 흙에 물만 뿌려주면 된다며 나를 안심시켰다.

평소에 나는 아이들에게 말하곤 했었다.

"엄마는 너희 둘 외에는 그 어떤 생물도 키울 수가 없어, 이 집에 들여올 생각도 하지 마"

단호한 나의 말에 아이들은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식물계의 유명한 살인지명수배자였다.

내 손에 들어온 식물들은 언제나 시들시들 해지다 하나같이 목숨을 달리했다.

아이들 어릴 적 어린이집에서 화분을 받아오면 선생님들은 말씀하시곤 했다.

"어머니, 물 만 한 번씩만 주면 돼요. 그럼 잘 자랄 거예요."

정말 물 만 주면 잘 자라는 줄 알았다.

식물들은 하나같이 날 알아보는지 시름시름 앓다가 말라죽곤 했다.

그렇게 분리수거되어 나가는 수많은 식물들을 아이들은 보아왔다.


그러다 올해  단풍이가 방과 후 활동으로 생명과학을 시작했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듯 줄줄이 무언가를 가져오기 시작했고 그 시작점엔 장수풍뎅이 애벌레가 있었다.

갓 알에서 나와 조그맣던 애벌레가 하루가 다르게 뚠뚠해지고 크기가 커져가는 모습을 무심히 지켜봤다.

꿈틀꿈틀 거리며 땅속을 파는 모습에 웃음이 지어지기도 했고 어쩌다 흙 위쪽으로 올라와 있으면 

연예인을 영접하듯 우리는 서로를 부르며 한참 동안 백달 이를 관찰했다.

그 시간 속에 우리는 정이 쌓이고 있음을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백달이라는 이름을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백달이는 한 낱 곤충이 아닌 우리 가족에게 의미 있는 생명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여러 수고로움이 존재하기도 했다.

단풍이는 성충이 된 백달이 의 젤리를 갈아주고 흙에 물을 뿌려주는 일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만

새 흙을 교체해 주는 일도 밤마다 열심히 활동하고 흩뿌려져 있는 흙을 정리하는 일도 나의 몫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첫째 가을이는 지금껏 관심도 없던 생명과학을 2학기가 시작되자마자 신청했다.

무언가를 키우는 걸 싫어하던 엄마가 학교에서 가져오는 생물은 허락한다고 생각이 닿은 모양이다.

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아이는 사이좋게 몬스테라 화분을 들고 말간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 들의 이름은 카스몬스와 콩이라고 했다. 이틀에 한 번씩 물만 주면 잘 자란다며 서로의 화분이 더 예쁘다는 아이들 앞에서 나는 점차 말을 잃어갔다.

'신경 쓰고 물 줄 얘들이 점차 늘어나네, 과연 얘들이 잊어버리지 않고 키울 수 있을까? 일이 점차 늘어나는 느낌이야'

우려와 달리 아이들은 생각보다 자신의 곤충과 식물들을 잘 챙겼다.

이름을 불러주고 물을 주는 모습을 보면서 나 역시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화분에 흘러내리는 물과 흙을 치우는 일은 내 몫이었지만 나름 아이들의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면서 조금의 수고로움은 인내하기로 했다.

하지만 지나친 자신감이었던 걸까?

얼마 지나지 않아 가을이가 부레옥잠이라는 수중식물을 들고 집으로 들어왔다.

내 동공이 흔들렸나 보다.

"3~4일에 한 번 물만 갈아 주면 된데, 과학시간에 다트 맞추기 1등 해서 받아온 거야."

나 지금 축하해야 하는 거니?

그리고 어제는 생명과학에서 애플스네일이라는 달팽이를 2마리씩 4마리를 가져왔다.

가을이의 달팽이 엄마 이름은 사과빵이고, 새끼는 사과씨란다.

단풍이도 이에 질세라 이름을 덪붙인다.

"엄마, 엄마 달팽이는 애플이고, 새끼는 딱딱이야"

그리고 누구보다 무해한 표정으로 웃으며 나에게 외친다.

"엄마 1주일에 한 번씩 물 갈아주고 하루에 2번씩 밥만 주면 된데."

'지금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 아니지? 이쯤 됐으면 우리 생명과학 그만둬야 할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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