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심 잡기.
"빨리 좀 해 벌써 8시야"
"시간이 너만 기다려주니 빨리 좀 하면 안 될까?"
"알았어. 잠깐만"
요즘 내가 가을이에게 자주 하는 말이다.
엄마는 애가 타고 가을이는 정작 태연한 아이러니한 상황.
무엇이 문제였던 걸까?
가을이가 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교육유튜브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첫 아이라 모르는 게 많았고 시행착오를 줄이고 싶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가을이와 맞는 성향의 공부법을 찾고 나의 교육관을 정립하는 게
주목적이었다.
1~2년 동안 정말 열심히 여러 선생님들의 영상을 찾아보고 교육책도 읽었다.
내가 시도하는 대로, 계획한 대로 가을이는 무난히 잘 따라와 주었다.
가을이는 꾸준함이 무기인 아이였다.
중간중간 때론 어려움이 찾아왔지만 그땐 잠시 멈출 줄 알았고
다른 방법을 모색하면서 우리는 나름 팀워크를 이루어 갔다.
그러면서 유튜브를 찾아보는 횟수도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나름 잘해오고 있던 우리의 팀워크는 4학년이 되면서부터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내가 가을이한테 주로 하는 말은
"언제 할래?" "빨리 좀 해"가 주를 이루었고,
아이는 "잠깐만 쉬고" "조금만 있다가"등 미루는 말들이 대부분이었다.
4학년이 되고 하교 시간은 3~4시.
하교하고 간식 먹고 수영이나 피아노 다녀오면 5~6시.
아이는 여유가 없다고 느끼는 거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학원 다녀와서 조금 쉬었다가 저녁 먹으면 7시.
학교숙제, 개인공부를 하다 보면 잘 시간이 되고
아이가 그 시간마저 여유를 부리며 집중하지 않으니 잠잘 시간도 늦어지고
잠자기 전 독서하는 시간은 점점 없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짜증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쉬는 시간이 너무나 많은 것 같았고
집중해서 하면 1~2시간이면 끝낼 일을 너무나 미루는 거 같아서 화가 났다.
저학년 때도 그날그날 분량을 잘 처리해 왔었는데
이제 엄마손을 벗어나 혼자서도 잘 해낼 수 있는 학년이 왔는데도 불구하고
점점 뒤처지는 것 같아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다른 친구들은 수학학원을 다니면서 한 학기에 3~4권의 문제집을 풀고
두꺼운 원서책을 읽는다는데
한 학기에 수학문제집 1권 겨우 풀고 영어는 제자리걸음인 거 같아서
불안감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 불안감은 주로 잔소리 폭탄으로 가을이에게 투하됐고
아이는 스트레스를 받는 거 같았다.
우리는 점점 시간에 쫓기기 시작했다.
마음이 급해졌고 서로에 대한 불신이 생기기 시작했다.
답답한 마음에 교육유튜브를 다시 찾아보기 시작했다.
정보를 몰라서가 아닌 재정비를 하기 위한 마음가짐을 다지기 위함이었다.
아이를 공부하게 하는 힘은 관계에 있다고들 한다.
좋은 관계.
과연 지금 가을이와 나의 관계는 긍정적인 관계인 걸까?
아닌 거 같다.
처음의 가을이의 교육을 시키기 시작하면서 나의 마음을 생각해 본다.
'자존감이 떨어지지 않게 중간만 가게 하자.'
이게 나의 첫 마음이었다.
결국은 가을이가 잘 따라와 주면서 욕심이 나의 눈을 가린 것이다.
교육의 주목적은 당장의 성적이 아니라 고등학교 졸업까지 12년간,
지치지 않고 입시를 꾸준히 준비하기 위함이다.
처음 시작은 내가 한 발자국 앞서 아이를 리드하기 시작했고
고학년이 되는 시점은 아이와 함께 손을 잡고 함께 가는 것이 되어야 한다.
진흙 속에 아이가 빠졌을 때 내가 업고 건너가 줄 수는 없다.
가을이와 나는 다른 주체이기 때문이다.
그럼 엄마인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진흙 속에 들어가서 함께
손 잡아 주는 것이다.
불안 속에서 엄마인 나는 채찍이 아니라 쉬어갈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는 당근이 돼주어야 하지 않을까?
일단 시급한 일은, 나의 마음을 재정비하는 일.
정비가 끝나고 가을이에게 다시금 손을 내밀었다.
우리에게 1순위는 아직까지는 독서가 되어야 한다.
모든 일정은 9시 20분까지 잠 잘 준비가 끝나고 9시 20분부터는 독서시간확보.
저녁 먹고 제일 먼저 가을이가 할 일은 체크리스트 작성.
우선순위를 매기고 급한일부터 해치우기.
무언가를 시작하면 먹기 금지, 화장실 가지 금지 집중해서 끝내기.
그리고 쉬었다가 다른 거 시작하기.
그렇게 9시 20분 전에 일정 끝내기.
못한 건 주말에 도전하기.
못한 것에 너무 미련 갖지 않기로 했다.
힘들지만 참고 매일 시도하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높이 평가하기로 마음먹었다.
이렇게 근근이 해나가다 보면 가을이도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본인이 느끼는 때가 오지 않을까
결국은 아이의 공부는 엄마의 마음을 다스리는 일.
내가 생각하는 교육관의 중심을 잡고 아이와 함께 올바른 방향을 찾아가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렇게 가다 보면 어느새 공부의 주도권이 늦어도 고등학생 때쯤에는 아이의 손에 가있지 않을까.
그때까지 우리의 계획은 계속 변경될 것이다.
그 시도들 속에 가을이만의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지금 늦는다고 해서 계속 뒤처지는 않을 것이다.
꾸준함이 있다면, 진흙 속에서도 손 잡아 주는 이가 있다면
언젠가는 땅을 박차고 날아오르지 않을까
높이 날지 않아도 좋으니 땅을 박차고 날아오르는 그 순간을 즐길 줄 아는 아이가 되었으면 한다.
사진출처-픽사베이
두번째 사진-주다의 휴대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