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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다 Nov 16. 2023

친구 따라 영재원.

모든 경험은 소중하다.

가을이가 학교에 등교한 지  2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휴대폰 화면에 "가을이"라는 이름이 뜨면서 벨이 요란하게 울린다.

잠깐동안 여러 생각들이 스친다.

'어디 다쳤나' '무슨 일이 생겼나?'

학교에 있는 시간에 오는 전화는 그다지 반가운 전화가 아님을 알기에

얼른 통화버튼을 누른다.

"응 아들 무슨 일이야?"

"엄마, 나 어제 말한 영재원 신청해 줘."

뜬금없이 전화 와서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너 안 한다며 왜 갑자기 마음이 변했어?"

"생각보다 반 아이들이 많이 신청하더라고 그리고 지승이도 신청한데,

지승이 과학신청한다니까 나도 그거 신청해 줘 오늘 12까지 까지신청해야 한다니까

바로 신청해"

내 아들이지만 참 특이한 아이다.

친구 따라 강남 간 다지만 친구 따라 영재원 신청을 해달라니.

"오늘 밤 12시까지니까 모집분야 다시 보고 신청하자"

"아니야 지승이가 오늘 낮 12시까지 신청해야 된데, 12시 되기 전에 신청해"

"아니 엄마가 24시까지 인걸 확인했다니까 그리고 지승이 모집분야가 중요한 게 아니라 너한테

맞는 분야를 선택해야지 쉬는 시간 끝나가니까 일단 끊어"

전화를 끊고 나자 바로 카톡이 울린다.

"오늘 오후 12시까지, 오늘 점심까지야! 신청해"

아고 두야.

엄마 말은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곧이듣지 않는구나. 

내가 이렇게 신뢰가 없는 엄마였다니. 열받는다.

친구말은 법이요, 진리로구나.

어쨌든 열은 받지만 결론적으로는 좋은 일이다.

본인이 시험에 도전해 보겠다는데 도전정신을 높이 여겨 용서해 주마.



사실 전날 교육청 영재원 모집 공고가 뜨고 가을이에게 의중을 물었다.

"가을아, 너 SW'AI아카데미에서 수업 듣는 거 재미있어하는 거 같은데

영재원 지원해 보는 거 어때? 직접 가서 하면 더 재밌을 거 같은데"

내 말에 가을이는 해볼까? 고민하는가 싶더니 12월에 영재성 검사 시험을 본다는 말에

거절의사를 밝혔다.

해보고는 싶은데 시험이 싫어서라니 그 게으름에 답답함이 이르렀지만 

본인이 싫다는데 어쩌겠나 내가 시험을 대신 봐줄 수도 없는 노릇이 고하며 마음을 접었었다.

그런데 친한 친구가 접수했다고 자신도 접수해 달라는 가벼움이라니 영 믿음이 가질 않는다.


그리고 하원 후 가을이에게 물었다.

"지승이는 SW'AI랑 수학과학 중에 어느 분 야 지원했데?"

"수학과학지원한 거 같은데"

두 분야의 활동 내용을 가을이에게 보여주며 확인한다.

"수학과학은 수학위주인데 괜찮겠어?"

"아니 SW'AI신청해 줘"

그럼 그렇지 가을이 말만 믿고 신청했다가는 그 뒷수습을 어떻게 감당할까.

"그렇지 수학과학은 너한테 안 맞을 거 같지? , 그런데 시험이 싫다더니 어떻게 그렇게 마음이 쉽게 변했데?"

"반 아이들 많이 신청한다니까 나도 해보고 싶어 졌어"

"알겠어 접수는 하자, 그런데 영재원 준비하는 애들은 1년 전부터 준비한데 문제도 그렇고 쉽지 않을 거야,

붙으면 좋겠지만 경험에 본다는데 의미를 두자.

영재원 문제집 있던데 풀어볼래? 아니면 과학책 집에 있는 것들 위주로 다시 읽을래?"

"그냥 과학책 읽을래"

그래 내가 예상했던 대로다.

뭐든 쉽게 생각하는 저 성격.

"그래 과학책들 찬찬히 시험 보기 전까지 다시 읽어 봐"


욕심을 비워본다.

욕심이 있어도 될까 말까 한 영재원 시험에 저리도 여유가 넘치다니.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너의 용감함에 박수를 보내주마.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것들이 있겠지.


아이들을 키우면서 모든 부모들이 한 번쯤은 내 아이가 영재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나 또한 그랬다.

기억력이 남다른 거 같아서 착각했고

같은 책, 같은 영상을 남들은 1~2주면 질린다는데 몇 년을 읽고 보는 근성에 착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안다.

세상에 정말로 영재성이 있는 애들은 남다르다는 것을.

영재성이 있는 아이들의 SNS나 TV만 봐도 괜히 영재가 아니구나 싶다.

그래도 이런 생각은 한다.

영재원에 있는 아이들이 모두영재일까?

영재여야만 영재원의 수업을 들을 수 있는 걸까?

전에 TV에서 어떤 엄마가 물었다.

"영재성이 있는 애들은 어떻게 케어해줘야 할까요?"

"특별할 건 없어요. 모든 아이들이 한 가지씩은 모든 영재성을 가지고 태어나니까요

각자에 맞게 개성을 개발해 주시면 될 거 같아요."

그 선생님 말에 난 감동받았다.

맞아. 정말 뛰어난 아이들도 있겠지, 하지만 일반 평범한 아이들도 하나씩은 

달란트를 가지고 있지 않을까.

그 달란트를 찾느냐 못 찾느냐의 과정일 뿐.

그래서 초등학교의 과정은 체험의 과정이 중요하다고 하는 거 같다.

이것저것 체험해 봐야 내가 뭘 좋아하고 잘하는지

뭘 싫어하고 맞지 않는지를 알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영재원 원서접수를 하고 가을이는 평소와 똑같은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별 말 하지 않기로 마음먹는다.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기간에 준비한다고 뭐가 크게 달라질까.

읽던 책들을 다시 한번 보라는 말 밖에는 달리 해 줄말이 없다.

그러면서도 나의 손은 스리슬쩍 과학책을 주문해 본다.

한 권이라도 더 읽어보라는 엄마의 양가적인 마음.(마음 비운 거 맞니?)


12월의 어느 날.

시험을 보고 나오는 가을이는 어떤 모습일까.

주눅이 들어있을까? 본인의 성향에 맞게 '몰라 그냥 봤어' 라며 대수롭지 않게 웃으며 나올까

그 모습이 어떤 모습이든지 애썼다고 수고했다고 안아줘야겠다.

오늘 수능날, 고3의 모든 부모들이 그런 마음이지 않을까.

당장의 결과보다는 애쓰고 나오는 아이들이 짠하고 대견한 마음.


*수험생 여러분 모두들 수고 많으셨어요. 작은 마음이나마 여러분을 응원하고 기원합니다.

힘든 시간을 견디고 고생해 온 모든 분들의 앞에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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