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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다 Nov 23. 2023

엄마들의 단원평가

극한체험.

평화롭던 오후시간.

가을이가 하교를 하고 집으로 들어왔다.

가방정리를 하던 중 나를 보며 씩 웃어 보인다.

개운치 않은 음흉한 미소.

"엄마, 오늘 엄마들 숙제 있어."

"무슨 숙제?"

숙제라고 해봤자 아이들 관련 체크리스트나 사인 받아오라는 프린트겠지 생각했다.

"엄마들의 극한체험, 수학 단원평가 풀어오래."

what?


"무슨 단원평가? 그걸 왜 엄마가 풀어? 네가 아니고?"

"응 , 엄마들이 푸는 거래 수학 4단원 사각형 단원평가."

나 살다 살다 학부모를 오래 해보진 않았지만 학부모 단원평가는 처음 들어 본다.

갑자기 반발심이 올라온다.

"싫은데, 엄마 안 풀건대 그걸 왜 엄마가 풀어야 하는지 이해 못 하겠어."

"안돼 풀어야 돼, 안 푼엄마들, 엄마들 패밀리라고 따로 만들어서 부른다고 했단 말이야."

그래 조금 마음을 가라않히고 생각해 본다.

적어도 시도도 안 해보고 안 푼 엄마들 패밀리에 이름을 올릴 수는 없지 않은가.

 "시험지 줘봐."

시험지를 자세히 들여다본다.

음... 내 나이 40년, 내가 언제 이런 문제를 배웠는지 풀어봤는지 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살짝 가을이에게 물어본다.

"엄마 좀 알려줘 봐"

"안돼, 선생님이 엄마들 시험지 풀 때 절대 알려주지 말랬어."

이런 젠장


겨우 잠재웠던 화딱지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시험지를 풀어오라는 담임 선생님보다 저걸 아들이라고 키운

융통성 없는 저 자식이 더 열받는다.

그래 내가 풀고 말지 쟤가 융통성 없는 게 하루이틀이야.

"니 수학문제집이나 주고, 학원이나 가."

아이를 보내 놓고 마음을 차분히 추슬러본다.

'다른 엄마한테 전화해서 공유해 보자고 할까'

아니다 이 방법도 딱히 내키지 않는다.

고작 4학년 문제를 공유하자고 하다니 자존심이 허락지 않는다.

문제를 차분히 들여다보며 심기일전해 본다.

흠... 어렵진 않은데 헷갈린다.

일단은 문제집을 찾아보며 헷갈리는 부분들을 확인한다.

그런데 찾아봐도 알쏭달쏭 알 수 없는 문제들이 있다.


가을이가 평소 수학문제집 풀 때를 떠올려 본다.

"엄마 이거 모르겠어"

"그럼 책이나 문제집 다시 찾아봐 엄마가 박스에 있는 부분들은 외우고 정확하게 이해하고

넘어가야 한다고 했지, 이해를 제대로 못하니까 틀리는 거 아니야 스스로 찾아봐."

그렇게 말하는 엄마가 얼마나 매정하고 미웠을까?

선생님이 극한체험이라고 단원평가를 풀게 한 이유가 이거였겠구나.

풀면서 조금 라도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려보라는 마음.

문제를 풀면서 마음이 조금 차분해졌다.

그리고 미안해졌다. 어서 풀라고, 왜 틀렸냐고 몰아세우기만 했지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려 한 적이 없었다.

내가 풀어보니 안 찾아져서 답답하고 이론은 이해해도 적용이 쉽게 되지 않는다.

역지사지(易地思之 )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하라는 뜻.


역시 사람은 그 입장이 되어봐야 상대방이 이해된다는 말이 맞다.

절대 몰랐을 마음을 이 시험지 한 장으로 이해해 본다.

고작 수학 문제가 아니라 아이들의 마음을 들여다 보라는 선생님의 혜안이 담긴 선물.

다시금 매일의 공부를 하는 가을이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하기 싫은 마음, 끝내도 끝내도 할 것이 남아있는 마음, 모르겠는데 자꾸 생각해 봐야 실력이 는다는 잔소리를 듣는 마음.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이지.

부정적인 피드백, 알아주지 않는 마음을 안고 매일을 지냈을 아이에게

오늘은 감사의 말을 전해본다.

"가을아 오늘도 고생 많았어, 매일을 너만의 루틴대로 잘 살아내고 있는 너에게 항상 감사해.

모르는 문제는 이제 함께 고민해 보자."


에필로그

"엄마 수학단원평가 본거 가져왔어"

떨린다. 수능 볼 때보다 더 떨린다.

"몇 점이야?"

"95점, 하나 틀렸어."

"왜, 왜 틀린 거야?, 100점 맞은 엄마도 있어?"

"응 있어 그래도 하나 틀렸으면 잘한 거야 엄마 잘했어."

이런 위로가 되지 않는다.

"그러게 엄마가 알려달라고 했잖아!!"


주위에 엄마들에게 물어본 결과 다른 아이들은 답답해서라도 답을 가르쳐주고

같은 시험지를 아이와 함께 풀어보고  답을 확인하고 냈다는 엄마도 있었다.

냉정하게 한 문제도 안 가르쳐 준 가을이에게 다시금 분노가 차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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