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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다 Nov 30. 2023

나도 남이 해주는 밥이 제일 맛있다.

소식좌의 한탄입니다.

"엄마, 이거 엄마가 한 거 아니지?"

"응? 응.. 반찬가게에서 시킨 거야. 맛있지 않아? 원래 대량으로 끓인 게 더 맛있는 법이야

집에서는 이런 깊은 맛을 낼 수가 없거든."

식탁 앞에 놓인 닭볶음탕.

이 음식은 가을이가 평소에 좋아하던 음식이다.

독감 이후 입맛을 잃은 아이를 위해 내 딴에는 생각에서 반찬가게에서 주문한 음식이다.

하지만 가을이는

'그건 네 생각이고' 하는 눈빛으로 날 쳐다보더니 수저를 놓는다.

"맛없어, 안 먹을래. 엄마가 한 게 더 맛있어. "

엄마 음식을 맛있다고 해주니 기쁜 말 이긴 한데 현재 나의 상태는

내 음식이 더 맛있다는 기쁨보다는 나의 피곤함이 한층 높은 우위를 차지하는 상태다.

"그냥 이번에만 먹어, 다음에는 직접 해줄게."

대충 넘어가려는 찰나 옆에서 눈치 없는 남편도 한 마디 덧붙인다.

"나도 여기별로다. 당신이 한 게 더 맛있어"


으구,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나 가지. 

한층 나의 화를 돋우는 남편의 철없는 소리에 나의 마음에서는 분출할 수 없는 말들이

비트를 이루어 춤을 춘다.

'나도 너희들 별로거든, 주는 대로 감사히 먹을 줄 모르고 말이야 비평가야 뭐야, 

너희들 아프면 그 뒷심부름이며 음식까지 얼마나 힘든 줄 알아. 나도 힘들거든.'

감정을 최대한 억누르며, 응축된 한 마디.

"배가 부르지, 주는 대로 감사히 먹어라." 


나는 11년 차 주부다.

그럼 여기서 음식을 잘하냐고 물으신다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아니요"라고 대답할 것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긴 세월인데 나의 음식실력은 11년 전과 크게 다름이 없다.

할 수 있는 몇 가지 음식의 돌려 막기는 필수요, 반찬 없으면 구워 먹는 고기가 진리로다.

아이들의 이유식을 시작하며 난 스스로를 파악했다.

아 노력해도 늘지 않는 게 있구나.

그게 음식이로구나.

많이 먹어 본 놈이 음식도 잘한다고 나는 먹는 것에도 별 흥미가 없다.

소식좌까지는 아니더라도 왜 하루 3끼나 정성 들여 밥을 먹어야 하는지

돌아서면 밥하고 치우면 밥하고 하루를 모조리 먹는 시간에 투자해야 하는지 11년이 

지난 현재도 이해할 수 없는 것투성이다.


그런 나와 둘째 단풍이는 닮아 있다.

우리는 주말 아침 느지막이 아침 겸 점심을 먹으며 만족해한다.

하지만 남편과 첫째 가을이는 아침을 늦게 먹었어도 점심을 꼭 챙겨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들이다.

나와 단풍이는 이들이 점심을 먹자고 하면

놀란 토끼눈으로 묻는다.

"먹은 지 얼마 안 됐는데 또 먹어?"

"점심 먹어야지"

"대단하다"

단풍이와 나는 점심을 또  챙겨 먹는 게 스트레스다.

간단히 군것질은 하면 좋겠지만 가을이와 남편은 밥돌이들이다.

스파게티, 라면, 피자, 빵 이런 종류는 그냥 간식이다.

이들은 간식과 밥은 별개라고 주장한다.

그런 단풍이와 나에게 저들은 별종중에 별종 이해 할 수 없는 먹보들일뿐이다.

하지만 나는 엄마이자 아내이기에 

저들의 점심 또한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냉장고 열어 스캔 후 내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최소한의 음식을 쥐어짜 내본다.


예전에는 반찬가게나 레토르트음식을 내가 한 것처럼 주어도 잘 먹던 이들이

언제부터인지 귀신같이 알아채고 얘기한다.

"이거 엄마가 한 거 아니지?"

"이거 당신이 하던 맛이 아닌데?"

좀 적당히 융통성 있게 넘어가 주면 좋으련만

10년 세월 동안 내 손맛에 길들여지긴 했나 보다.

하지만 나도 쉬고 싶을 때가 있다.

음식 만들기 지칠 때가 있단 말이다.

그럴 때 배달음식과, 배달 반찬이 나를 위로해 주었는데

가을이의 비만관리 때문에 배달음식과는 멀어지는 중이다.

또한 배달반찬은 유별난 두 부자께서 질리셨는지 잘 드시질 않는다.


얼마 전 믿었던 단풍이마저  응축된 한 마디로 나를 황당하게 만들었다.

여름방학이었고 그저 아이의 혼잣말이었다.

"학교 빨리 가고 싶다. 급식 먹게"

이런 말은 왜 이렇게 선명하게 잘 들리는지.

평소에 엄마가 해주는 밥이 제일 맛있다고 하는 착한 아이였는데

그 말에 귀여워서 웃음이 나면서도 진심 마상(마음의 상처)을 입었다.

누군 못하고 싶겠냐마는 안 느는 걸 어쩌란 말인가?

응용이 안되는데 어떻게 하란 말인가?

먹는 거, 만드는 게 재미없는데, 매일 해야 하는 마음을 그 누구 알아준단 말인가?

소질 없는 일에 매일 매달려 머리를 쥐어 짜낸다.

아, 오늘은 뭐 해 먹지?

어느새 내 인생의 최대의 난제, 숙제가 되었다.

다른 집 아이들은 밑반찬에 먹고 김치만 줘도 잘 먹는다는데

왜 우리 집에는 그런 아이들이 없는 것인가?


한탄을 하면서도 오늘도  어김없이 나는 고민을 한다.

오늘의 숙제를 끝마치기 위해서.

오늘은 뭐해먹지?

그리고 매일 돌림노래처럼 남편과 아이들에게 외친다.

'나도 평가할 수 있고 맛있는 게 뭔지 알거든, 남이 해주는 음식이 제일 맛있다는 것도 알고

크면 알게 될까? 세끼의 고생을, 아니 모를 수도 있겠다. 남편을 보면...'

속엔 맛은 숨기고 강한 팩트를 날린다.

"주는 대로 감사히 먹어라."


사진출처-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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