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평화를 외치다.
-후 –후 –하
길게 들이마신다. 쭉 내뱉는다. 오늘도 나의 심호흡은 계속된다.
임신을 하고 라마즈 호흡법을 연습할 때만 해도 출산하면 쓸 일이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아이가 밖으로 나오는 순간부터 라마즈 호흡법의 진면목이 제대로 발휘되는 순간이다.
초보엄마의 계속되는 허둥지둥, 그런 엄마와 손발을 맞춰야 하는 아기의 짜증 섞인 울음소리.
사랑스러운 아이임은 틀림없지만 힘에 부칠 때면 심호흡을 하며 감정을 가다듬는다.
그리고 아이들이 클수록 한 마디 더 덧 부쳐 진다.
-후 –후 –하 나미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두 손을 간절히 모으게 된다. 마음의 평화를 얻게 해 주세요.
부처님을 믿는 건 아니지만 어린 시절 사찰에 있는 부처님을 보면 마음이 안정되곤 했다.
(사찰이란 곳이 자연과 함께 공존하는 곳이기에 더욱 그런 마음이 들었으리라.)
육아란 감정의 바닥을 보는 일.
제어하지 못하면 이곳에서 살아남기 힘들다.
부풀어 오르는 감정 덩어리를 끌어안고 살기엔 내가 가진 그릇의 크기가 종지그릇이다.
살기 위해 스스로를 컨트롤해야 한다.
육아를 하며 스스로를 제어하는 일이 가장 어렵다는 걸 깨달은 여자.
이곳에는 나의 감정에 공감해주는 이가 없다.
그래서 더 외롭고 투지가 타오른다.
그 공간에 적응하기 위해 오늘도 심호흡으로 그분을 찾는다.
우리 집에 함께 사는 세 남자.
이들은 나의 활력소 이자 밑바닥을 볼 수 있는 기폭제이기도 하다.
그들이 주는 따뜻한 온기는 매일의 힘이 되지만 쓰리 콤보로 날리는 황당함과 쓰라림은 함께 공감해 줄 수 있는 딸 하나 낳지 못한 자책으로 이어진다.
오늘도 어김없이 게임에 빠져있는 가을이.
정해진 시간 9시가 되면 신데렐라처럼 휴대폰을 내려놓으며 허망한 표정을 짓는 그를 자주 볼 수 있다.
하지만 9시가 되도록 그 약속이 잘 지켜지지 않는 날이 있다.
“잠깐만, 잠깐이면 돼.” “10분만”
이래놓고 20~30분은 속절없이 흘러가고 그들의 잠잘 시간은 뒤로 미루어지기 일쑤다.
여기서 잠깐 심호흡하고 동생을 향해 시선이 가 닿는다.
엄마의 뜨거운 눈빛을 모를 리 없다.
해맑은 동생 단풍이는
“형 끌 때 끌게”
라는 말과 함께 영상을 보며 낄낄대기 바쁘다.
-후 –후 –하 나미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스스로를 타이르며 심호흡을 하고 좋은 말로 다독여 본다.
“엄마가 기본적인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일정 마치는 시간을 8시 30분으로 앞당길 수밖에 없다고 했지. 우리 빨리 끄고 잘 준비하자”
가을 : “잠깐이면 돼, 이 판 만 깨고”
단풍 : “이 영상까지만 보고”
거기에 아빠까지 가세한다.
“그래 하던 거까지만 하고 꺼. 애들이 다 그렇지 뭐 딱 시간 맞춰서 끄는 애들이 얼마
돼? 저렇게 남자의 마음을 몰라. “
나의 트리거의 방아쇠가 당겨졌다.
이제 그들은 불지옥을 맛보게 될 것이다.
“당장 안 꺼!? 잠깐만 잠깐만 하지 말랬지 너희들이 시간 얘기해 놓고 지킨 적 있어?
내일부터는 8시 30분 되면 잠잘 준비 해 “
“그리고 내가 애들 잠자는 시간은 지켜줘야 한다고 했어 안 했어 시간이 늦어지면 아침에 일어나지도 못하고 커디션도 엉망이란 말이야”
끝날 거 같지 않은 잔소리를 랩처럼 토해내는 엄마를 피해 아이들은 속속들이 휴대폰을 내려놓고 화장실로 대피한다.
남편도 슬그머니 그 뒤를 쫓는다.
그래 놓고 화장실 앞에서
“엄마 마녀 됐어”
“마녀 쫓아오기 전에 빨리 양치해.”
“그래 마녀 더 폭발하기 전에 얼른 잠 잘 준비하자”
저 럴 땐 3명의 합이 찰떡궁합이다.
그들이 마녀 품평회를 하는 동안 안 들리는 척 애써 마음을 가다듬으며 물 한 모금을 마셔본다.
에피소드#2
오늘도 어김없이 맞붙은 가을과 단풍.
3살 터울이면 안 싸울 만도 하건 만.
이들이 안 싸우는 날은 하루도 찾아보기 힘들다.
둘째 단풍이는 유치원에서는 양보도 잘하고 친구들하고 그렇게 잘 지낸다는데 그 스트레스를 집에서 푸는
건지 형에게 양보란 사치인 모양이다.
그들에게 싸우는 이유는 참 단순하다.
“이거 한 번 내가 해줬으니까 너도 양보해”
“싫어 내가 하고 싶은 거 더 할 거야.”
보통 어깃장을 놓은 건 단풍이. 어리다는 걸 알지만 어디하고 싶은 대로만 할 수 있으랴.
그에 응수하며 가을이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지고 큰소리에 취약한 단풍이는 미약한 힘으로 형을 한 대 친다.
가을이는 많이 참았다는 듯
“나도 때릴 거야”
하며 전쟁이 시작된다.
심호흡으로 진정시키며 단호한 말을 덧붙여 보지만 지금 그들에게 들릴 리가 없다.
결국 엄마의 불호령으로 사건이 일단락되고.
그들의 친화를 위해 마련한 간식타임에 그들의 2차 대전은 발발한다.
먹을 거에 진심인 가을이
“이거 내 몫이야 나 혼자 먹을 거야”
“같이 먹어. 나도 그거 먹고 싶단 말이야.”
언제나 안 먹는 다고 해 놓고 형이 먹고 있으면 내놓으라는 당당함.
먹는 것에 양보란 없는 가을이는 흥분한다.
“네가 다른 거 먹는다고 해놓고 왜 내 거 뺏어 먹는데 싫어 못줘”
단풍이는 눈시울을 붉히며 먹고 싶다는 눈짓을 내보인다.
그러면 나는 심호흡과 함께 빠른 대안을 찾으려고 애쓴다.
“콩 한쪽이라고 나누어 먹어야 하는 거야 동생 조금만 나누어 주면 엄마가 다른 간식도 더 줄게.”
하지만 가을이는 마음이 상했는지 엄마의 말이 합리적으로 들리지 않는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듯.
결국에 갖은 타협과 협박으로 엄마의 감정은 또 한 번 큰 물결이 일렁인다.
폭발하고 나면 조금만 더 참을 걸 하고 내공이 부족한 나를 후회하곤 한다.
하지만 어디 로봇에게 감정의 대미지 수치를 주입한 것처럼 사람 마음이 그리 움직일까.
어제 보다는 오늘 하루 덜 화 내고 규칙의 방법을 모색하면서 스스로의 마음을 다독여 본다.
이 또한 감정을 공부하는 감정의 일환이라는 걸 아니까.
-후 –후 –하 감정이 파동이 크지 않았던 혼자만의 시간을 그리워하며 사이보그 엄마를 꿈꾸어 본다.
사진 출처-픽사 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