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식사만 정성을 다 합니다.

돌밥지옥에서 살아남기.

by 주다

어김없이 돌아오는 돌밥의 시간.

오늘 저녁은 뭘 먹여야 하나.

일단은 아이들에게 먹고 싶은 메뉴를 물어본다.

먹고 싶은 메뉴가 딱히 없으면 되돌아오는 건 고요한 적막뿐.

또 나만의 고민이지. 혼자서 해야 할 마감이 있는 숙제다.

우선 냉장고를 스캔하고 내 손에서 탄생할 수 있는 요리를 생각한다.

창의적인 음식은 금물.

우리 집 아이들은 알레르기가 심하고 예민한 미식가들이다.

웬만한 맛으로는 그들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TV에서 본 맛있어 보이는 음식을 정성 들여 준비해도 그들의 취향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그저 쓰레기일 뿐이다.

익숙하고 잘 먹는 메뉴들을 떠올려 본다.

삼겹살과 된장찌개는 어제 먹었고, 김치찌개, 소시지부침, 계란말이, 삼계탕, 닭볶음탕

그 들이 먹는 음식은 한정적이다.

가끔 맛 집으로 외식을 나가도 새로운 맛이 입맛에 맞아야 그 음식이 우리 집 메뉴로 등극할 수 있다.




이런 예민한 아이들의 입맛 때문에 우리 집 아이들은 할머니 집에만 가면

항상 맨밥에 김을 싸 먹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그런 아이들을 보며 시어머니는 한 마디 하신다.

“너희 집 아이들은 뭐 먹고 사니?”

글쎄요. 저의 사랑과 정성이요라고 말하고 싶었으나

“알레르기 때문에 입이 예민해서 그래요. 익숙하지 않으면 잘 안 먹기도 하고요.”

라고 알레르기 핑계를 대어 본다.

많은 어르신들은 알레르기를 그리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신다.

그 옛날에는 그래도 다 이것저것 잘 먹고 잘 컸다고.

그런 분들에게 나는 그저 유별난 엄마일 뿐이다.



나라고 유난을 떨고 싶을까.

주는 대로 군소리 없이 잘 먹는 아이를 키워 보는 게 나의 유일한 소망이다.

하지만 가을이는 유아기 때 피부로 꽤나 고생을 했다.

말이 터지고 제일 먼저 하는 말은

“엄마 간지러워”

였고 두드러기로 응급실도 여러 번. 함소아의 피부약은 그 어린 나이에 1년을 넘게 먹었다.

그래도 차도가 없어 대학병원 1년을 다니며 항생제를 복용했고, 그것도 차도가 없어 결국 유명한 알레르기 클리닉을 찾아갔다.

원인과 방법을 찾아 난류와, 유제품이 들어간 식품차단을 5살 때까지 했다.

그러면 여기서 난류와 유제품이라고 하면 보통의 사람들은 계란과 우유만 안 먹이면 되는 거 아니냐는 질문을 많이 한다.

하지만 우리가 먹는 식품들에 난류와, 유제품은 웬만하면 거의 다 들어가 있다.

그러 식품들을 제하면 집 안에 들어올 수 있는 식품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렇게 고생하길 5년.

커가면서 식품알레르기에 대한 반응은 점점 없어지기도 하지만 여전히 몸에서 밀어내는 음식들은 잘 먹으려 하지 않는다.

클리닉 의사 선생님도 말씀하시길

“ 식품이 자기 몸에 안 맞으면 스스로 음식을 밀어내기도 해요. 검사를 해보면 그런 식품들은 알레르기 반응이 대부분 있는 식품들이에요. 안 먹겠다는 음식은 강제로 먹이지 마세요.”

라며 주의를 주신다.

고생해 본 엄마로서 아이가 먹지 않겠다는 음식은 먹이지 않는 게 아이와 나의 건강에 좋다는 걸 몸으로 체득했다.

그래도 다행인 건 한 살 한 살 먹어가면서 스스로 의지와 호기심이 생기면 먹어보고 판단하는 융통성은 생기는 듯하다.



둘째 단풍이도 형만큼이나 알레르기가 심하다.

누구를 탓하겠느냐 만은 한 번 경험해 봤다고 그저 웃지요 하면서 잘 버티면 식품 알레르기는 점점 나아진다는 게 유일한 위안이다.

이 고생으로 키워온 아이들은 언제나 나에게 큰 손님이다.

두 형제는 식성도 극과 극이라 식사 준비에 꽤나 애를 먹인다.

고기파와 야채 파, 과체중대 저체중, 대식좌와 소식좌

어느 쪽에 비중을 둬야 할지 누구의 식성에 맞춰야 할지 끼니마다 큰 고민에 빠진다.

이런 생활이 지속될수록 요리는 일생일대의 최대 미션이자 시험이 된다.

오늘의 요리는 과연 부작용 없이 시험에 통과할 것인가.

손님들의 취향에 부합할 것인가.

취향을 고려하고 알레르기요소를 고민하고 영양소를 생각해야 하는 엄마란 이름 안에

수만 가지의 직업이 내재된 느낌이다.




나에게 요리는 그저 허기를 달래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는데.

엄마라는 명분아래 한 끼 식사에 많은 에너지와 시간이 소진된다.

그나마 학기 중에는 점심을 학교에서 해결하고 오기 때문에 요리에 대한 부담이 덜 하다.

하지만 겨울방학과 같은 긴긴 방학이 다가오면 두려움의 두근거림이 거세진다.

하루 세끼.

만들고 먹고, 치우기까지 최소 2시간씩 6시간.

그 외에 간식 청소 아이들 공부까지 무언가를 포기하지 않으면 하루 종일 요리에 하루를 바쳐야 한다.

그래서 겨울방학의 돌밥시기에는 협력해 취해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들을 정해야 한다.

아침과 점심 간식은 간소히, 엄마의 에너지를 최소화할 수 있는 메뉴들로 채운다.

그래야만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긴긴 방학을 유지할 힘을 비축할 수 있다.

아침은 만둣국, 라면, 죽, 수프, 시리얼, 소시지, 계란, 계란밥, 주먹밥, 김밥종류로 간단하게

점심은 패스트푸드나, 레토르트 식품, 분식도 오케이

간식은 과자, 컵라면, 젤리, 음료수, 핫 초코 등 붙박이장에 채워주고 알아서 꺼내 먹기.

저녁은 양심상 엄마의 정성이 들어간 집 밥을 준비한다.

하얀 쌀을 씻어 고슬고슬한 밥을 하고 보글보글 국을 끓이고 거기에 곁들일 반찬 1~2가지, 김치, 생선이나 고기요리, 메뉴는 한정적이지만 최대한 엄마의 손맛을 곁들여 본다.

아이들의 정서에 집 밥의 그리움이 스며들도록 엄마의 사랑과 따뜻함을 가득 담아 저녁식사만이라도 정성을 다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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