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미지근함
처음엔, 새벽녘의 감성이 좋았었다. 감성이 자라나던 시절이라 그랬던 걸까, 소음 하나 없는 어둑한 사위의 공기를 마음에 들어했다. 지금도 간간히 고생하는 내 수면장애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잠들지 않는 시간의 친구는 라디오였고 책이었으며 영화였다. 동이 트지 않기를 고대하며, 대만과 홍콩을 거쳐 일본의 로맨스 영화를 섭렵하기 시작했다.
냉정과 열정 사이를 처음 봤던 시절 역시 그때 쯤으로 기억한다. 영화에 대한 첫 감상은 두오모 성당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언젠가는 저기를 꼭 가봐야지"라는 다짐이었다. 아쉽게도 아직까지 이탈리아는 가보지 못했지만, 애절한 첼로 선율이 선사하는 '냉정과 열정 사이'의 OST를 찾아들으며 영화에서 묘사한 상황을 그려보곤 한다.
개인적으로 '냉정과 열정 사이'를 영화사적으로 대단한 작품이라 평가하진 않는다. 그러나 소위 일본의 "ただいま - おかえり(다녀왔어 - 어서와)" 클리셰의 정점이라곤 생각한다. 첫 글을 기획하며 어떤 생각을 소개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하던 차, 우리의 삶이 무언가 영화의 제목과 같은, 냉정과 열정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것은 아닐까 하는 기시감이 들었다.
냉정과 열정사이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서로 사랑했던 연인이 부득이한 사정으로 헤어지게 되고, 여러 사건들을 거치며 서로에게 쌓인 오해를 풀고 이해하며 서로를 보듬는 사랑으로 나아가는 그런, 2000년대 초반의 동아시아적 로맨스물이다. 멀리 돌고 돌아서 많은 부분들에 대해 때론 열정적으로 때론 냉정하게 상대와 호흡하지만, 결국 사랑이란 결말은 너무나도 미지근한, 매일 집에 돌아올 때의 따뜻함을 기대하는 것이라 주장한다.
그럼에도 영화는 우리에게 한 가지 생각거리를 던진다. 인간 생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사랑'이 냉정과 같은 차가움도 열정과 같은 뜨거움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라면, 인간의 삶 역시 그런 것은 아닐까 하는 것 말이다.
슈퍼주니어 규현과 함께 한 먹을텐데에서 성시경은 발라드가 비주류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예전에는 헤어지면 끝이었지만, 이젠 SNS의 발달로 몇번만 찾아보면 다 알 수 있는데 이제 다시 못본다고, 애절함을 노래하는 발라드가 힘을 얻긴 힘들다." 사랑 영화도 그렇다. 독보적 분위기를 연출했던 이현승 감독의 시월애나, 아직도 그 아름다움이 회자되는 왕가위 감독의 사랑 영화들까지 사랑 자체가 주는 절절함에 많은 이들이 공감했다. 그리고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아련함 혹은 그리움을 가진 채 일반적인 삶으로 수렴한다는 결말 말이다.
반면 현대의 영화는 플롯을 쌓아가며 절정에 이르는 절절함보단, 강렬한 시퀀스에 기반한다. 이는 비단 발라드나 영화 뿐 아니라 문화 전반에서 나타난다. 음악에서는 첫 소절이 가장 중요하다며 초반 임팩트를 중시한다거나, 드라마는 1화부터 빠른 전개를 몰아치는 형태로 변한 것 등 말이다. 과거의 영화들이 냉정도 열정도 아닌, 미지근한 상태 어딘가를 표현하고자 헀다면, 최근에는 어떻게 하면 냉정혹은 열정으로 가득차 있게 만들지를 고민하는 듯 하다.
우리의 삶이 미지근했다면, 현실을 통해 세상을 가공해서 보여주는 미디어의 모습이 냉정 혹은 열정으로 가득차 있지는 않았을거다. 어느새, 미지근함은 우리에게 낯선 관념이 되어가는 중이다.
'(2) 갓생과 도파민' 으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