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셋의 자화상
[시 경험 쓰기] 서정주 '자화상'
서정주_자화상
자화상
서정주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 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 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하는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크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믈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드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찬란히 티워 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詩)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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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주 시인의 아버지가 종이었다면, 우리 엄마는 시각장애인이셨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엄마가 다니는 직장은 호텔이거나 안마시술소. 한국으로 출장 와 고단해진 몸을 회복하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 또는 직장에서 야근을 하거나 만성피로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엄마의 손님이었다. 밝은 시간보다 해 질 무렵부터 아침까지가 손님이 더욱 많았다.
엄마 대신 언니와 내 옆을 지켜주셨던 분은 아버지가 아니라 젊은 시절부터 너무 고생을 많이 하셔서 허리가 폴더폰처럼 굽어버린 외할머니셨다. 외할머니는 큰아들에 이어 막내딸까지 눈이 멀었을 때 눈에서 피눈물을 흘리셨으리라. 그리고 시각장애가 있는 사람을 만나 양가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결혼을 했으나 결국 이혼하고야 만 막내딸의 어린 자식들이 자다가도 눈에 밟히셨으리라.
스물 세 해 동안 시인을 키운 것은 팔할이 바람이었다. 마흔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어머니다. 어머니의 내리사랑은 가도가도 끝이 없었다. 사춘기만 지나면, 성인만 되면 홀가분해질 줄 알았던 자식 돌봄은 자식이 결혼을 하고 다시 자식을 낳을 때까지 이어졌다. 우리 외할머니가 언니와 나를 거두어 주셨듯이, 시어머님께서 나의 두 딸을 돌보아주셨다. 나와 남편은 직장에 두 손 두 발이 묶여 있었고…… 시어머님 없이는 코로나로 인한 숱한 학사변동과 사방의 위협으로부터 우리 아이들을 지킬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어머니들을 지켜준 분은 바로 하늘의 아버지였다. 낙타무릎을 닮은 외할머니도, 앞이 안 보이시는 우리 어머니도, 손녀들을 위해 부산아지매에서 일산아지매가 되신 시어머님도 언제나 자식을 위해 하늘의 아버지를 부르곤 하셨다.
혹시 하나님을 모르셨더라도 필시 하늘을 우러러보며 온 우주의 기운을 모아 손이 닳도록 자식들의 안녕을 위해 기도하고 또 기도하셨으리라.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 우리 어머니들의 기도가 별과 같이 반짝이기를, 그리고 그 별들 속에 나의 별도 함께하기를 조용히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