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노력이 당연해서 평범해질 때

by Victor navorski

내 현생은 취준이다

3화 당연해진 노력









최근 드라마 <수수하지만 굉장해! 교열걸 코노 에츠코>를 봤다. 이시하라 사토미 주연의 드라마인데, 우선 사토미가 너무 이쁘다. 그래서 단 이틀 만에 10화를 모두 봤는데, 이후 1주일 동안 문득문득 이 드라마가 자꾸만 생각난다. 화나고 억울하고 슬플 때마다.


이 드라마는 교열이라는 업무에 대해 이야기한다. 주인공 코노 에츠코는 원래 화려하고 눈에 띄는 패션잡지 편집자를 꿈꾸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 긍정적인 여자는 원치 않았던 교열 업무도 열정을 가지고 대한다. 그러다 문득 교열 업무를 바라보는 시선 때문에 슬럼프를 겪는다. 대중들은 교열이 무엇인지 잘 알지 못한다. 교열은 책이 출판하기 전 최종으로 오탈자나 표현이 잘못된 부분을 확인하는 업무이다. 드라마는 이를 '당연해서 아무도 몰라주는 일'이라고 표현한다. 코노 에츠코 주변의 사람들을 교열일을 몰라주는 것을 넘어 쓸데없는 일로 본다. 이런 에츠코를 위로하기 위해 그의 남자친구는 교열을 반대로 당연해서 없어서는 안 되는 업무라고 말해준다.


당연한 거라는 건 그런 거다. 없어지면 티가 나지만, 막상 있으면 쓸데없는 게 된다.




나는 오늘 면접에서 화를 냈다.

분노조절을 못했다는 표현이 맞겠다.


그 이유가 바로 당연한걸 쓸데없다고 표현한 면접관 때문이었다. 나는 정말 이 생각이 너무 밉다.

밉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이유를 알고, 이해하고, 공감한다. 단지 감정적으로 너무 밉다.


저 드라마를 봐서인 것 같다. 그렇게 변명하고 싶다.

준비했던 답변이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당연한 얘기를 하고 싶었다. 내가 한 답변은 내가 학점을 잘 받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였다. 그리고 면접관은 나에게 학점은 학생이라면 누구나 다 하는 것이니 다른 경험을 이야기해달라 재차 질문했다. 갑자기 억울하고 화가 났다. 순간 방긋방긋 웃던 얼굴을 굳히고 "아, 네.. 그렇다면 없습니다."라고 대답해버렸다. 감히 지원자가 갖춰야 할 스탠스를 잃어버린 초짜 취준생에게 면접관은 남은 시간 동안 친절하게 조언을 해주었다. 00 씨의 역량을 보기 위해서였다. 다른 곳에 가면 좀 더 차별화되는 경험을 이야기해라... 이런 말들이 오른쪽 귀를 스쳐 왼쪽으로 나갔다. 면접관이 그의 대학생활을 잊어버린 게 아닌지 묻고 싶었다. 그가 "그건 졸업하려면 누구가 다 하는 거잖아요?"라고 조언했을 때다. 마음속으로 '이봐요. 4년 내내 A+만 받은 학생도, C만 받은 학생도 기준학점을 다 채우면 졸업합니다. 심지어 당신네들 때는 이렇게 다들 학점 신경 쓰지 않았잖아요!!!!!!!!!!!!!!!! 경제성장시대의 혜택을 받아서 대학시절 내내 청춘을 불태워도 취업했잖아요!!!!!!!!!!!!!!!!!!!!!!!!!!!! 말이라도 곱게 해 주라!!!!!!!!!!!!!!!!!!!'라는 말들이 입가에 맴돌았지만, 그저 표정을 굳히고 끝까지 '네', '알겠습니다.'를 반복하다 면접장을 나왔다. 집에 돌아오며 '이 회사는 내가 거른 것이다'라고 망친 면접을 스스로를 꾸역꾸역 위로했다.



나는 당연하다는 저 생각이 너무 밉다.

대학교의 수업은 대부분 상대평가다. 학교마다 사정이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누구나 다 당연하게 좋은 학점을 받을 수 없다. 게다가 요즘은 동아리니 학회니 공모전이니 인턴이니 경험을 중시한다. 학업은 기본이고 경험으로 경쟁한다. 학교생활하며 다양한 경험을 쌓는 건 힘들다. 이거 진짜 죽을 만큼 힘든데, 근데 이게 어느 순간 다들 기를 쓰고 성실하게 살아서 당연해졌다.


성실한 게, 당연해졌다. 이제는 그 어느 취업준비생도 자신이 성실하다고 어필하지 않는다. 성실하게 사는 거 그거 정말 어려운 건데..... 힘든 건데.... 이제는 높은 경쟁률이라는 등 뒤에 숨어 다들 알면서 외면하는 것만 같다. 외면하고 요구한다. 당연하게 성실하라고.


이 사실이 너무 슬프다. 그리고 그걸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가 오늘 너무 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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