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현생은 취준이다
5화 직장의 의미
충청남도 서산,
할머니네 집에 가면 달달달 큰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오래된 금성 선풍기가 있다. 파란 날개를 가진 선풍기는 오래됐지만 매년 거센 바람을 내뿜으며 뜨거워진 주방을 식힌다.
이 오래된 금성 선풍기는 젊은 시절 아빠가 첫 직장에 취직해서 월급을 받아 고향집에 들고 내려왔다.. 흙집으로 지어져 여름이면 펄펄 끓는 고향집에 선물하려는 마음으로, 그 큰 선풍기를 고이 싸서 고향에 내려오는 아빠의 모습이 그려진다.
전기기사로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셨던 아빠는 언니를 낳고 잠시 직장생활을 접었다. 엄마와 함께 슈퍼를 운영하셨는데(아빠는 아직도 이를 후회하신다. 당시 다니시던 기업이 굴지의 대기업이 된 뒤로) 아빠 일생의 가장 큰 도전적 결정이었다고 난 생각한다. 하지만 몇년이 흘러 엄마가 나를 임신하고, 내가 태어난 뒤 다시 직장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IMF가 왔다. 아빠는 다시 공부를 시작하셨고, 소방기사를 취득 해 새로 직장을 얻으셨다. 두개의 국가자격증은 아빠의 긍지이자 노력의 산물이다. 그 두개의 자격증으로 아빠는 스스로 한 가정의 가장이 됐고, 아들로서 책임감을 다했다.
내가 기억하는 아빠의 모습은 언제나 성실한 직장인이다. 매일 아침 가장 먼저 집을 나가시고는 저녁 7시가 되기 전 칼같이 퇴근을 하신다. 나는 아빠가 일을 좋아하신다고 생각했다.
언니가 중학교 때 부터 아빠는 은근슬쩍 언니에게 선생님이 될 것을 제안해 왔다. 대학생 때까지 언니는 한번도 그 제안을 귀담아 듣지 않았지만, 어째서 인지 아빠는 계속해서 선생님을 제안했다. 어느날 할머니, 엄마와 셋이서 오래된 금성 선풍기 앞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당시 초등학교에서 이름을 날리며 공부를 잘하던 나에게 할머니는 어린시절 공부를 좋아하던 아빠의 이야기를 해주셨다. 다들 예상했듯, 선생님은 아빠의 꿈이었다. 그리고 으레 많은 집안이 그러했듯이 장남이 아니었던 아빠는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공고에 진학해야했다. 입학당시 입학시험에서 수석을 차지하자 나름 아빠에게 미안했던 감정이 있으셨던 할아버지가 만세를 외치신 일화는 지금도 이야기된다.
이렇게 되면 아빠가 지금의 일을 좋아하시지 않는 것 처럼 보이지만, 사실 지금 아빠의 직업은 우리 가족 모두가 입을 모아 말하는 아빠의 천직이다. 집안에서 유일하게 유난스럽게도 신중하고 꼼꼼한 아빠에게 안전을 관리하는 직업은 천직이다. 게다가 시대를 앞서간 우리 아빠는 소확행을 추구하고 40년간 집캉스를 즐겨오셨다. 안정적이고 출퇴근이 일정하며 자신의 작은 취미인 바둑게임과 텔레비전 보기를 실천할 수 있는 지금의 직업은 정말 아빠의 천직같다.
취업을 준비하기 전 나는 정말 오랫동안 어떤 직업을 선택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이 고민이 너무나도 길어져 스트레스를 넘어 나를 갉아먹었다. 고민의 끝에서 나는 내가 그 어느 직업에도 어울리지 않다거나 그 어느 직업도 할 수 없는 무능력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내 입학팀에서 근로학생으로 근무하고 있을 때였다. 점심식사시간에 다음학기 계획에 대해 누가 물어보았다. 내가 본격적으로 취업을 준비해야겠다고 말하자, 한 교직원 선생님께서 어느 기업을 생각하고 있는지 물으셨다. 나는 고민 속에 빠져있을 때라 제가 잘할 수 있을 만한 직업을 찾고 있다고 말씀드렸다. 선생님께서는 웃으시며 "요즘 애들은 그러냐"며 "우리 때는 갈수있는데는 어디든 지원했다"라고 말하셨다. 뒤이어 "가서 배우는 거지"라고 말하시며 웃기지도 않는데 혼자 웃으셔서 그냥 따라 웃었다. 생각해보니 웃었다니 보다는 고개를 돌린거 같다. 입만 웃고 있는 것 같아서...
정말 웃기지도 않은 얘기였다.
아빠의 얘기로 돌아가보면, 지금 아빠의 직업은 아빠의 천직이다. 그렇지만, 이 직업이 처음부터 아빠에게 천직처럼 꼭 들어맞았을까?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빠는 전기기사로 40년을 전기기사이자 소방기사로 20년을 넘게 일해오셨다. 매일 같이 출근을 하고 같은 일을 반복하셨다. 안전관리 담당자인 아빠는 만연의 사태를 대비해 긴 휴가를 가져보시지도 못했다. 그렇게 아빠가 직장 안에서 그 직무의 일을 해온 그 긴 시간 동안, 어느새 그 직무에 맞게 아빠가 변화한 것은 아닌지 생각이 든다.
이렇게 보면, 웃기지도 않던 교직원 선생님의 조언이 마치 띵언(명언)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반발심으로 의문을 가졌다.
아빠는 왜 원치도 않는 일을 이렇게 오랬동안 하면서 천직이 될정도로 일했을까.
아빠의 금성 선풍기가 생각났다. 이게 다 그 금성 선풍기 때문이다.
아니, 덕분이다.
나에게 직업의 의미는 자아실현이다.
취업특강 당시 한 인사담당자가 유투브 영상을 보여주었다. '밀레니얼 세대는 뭐가 문제인건가요?'라는 질문에 대한 전문가의 답볍이었다. 그는 밀레니얼 세대들이 자꾸만 직장을 쉽게 그만두고, 자아실현이라던지 영향력을 가지고 싶다던지 하는 말을 내뱉는다고 했다.
그리고 그 이유가
1. 인내심이 없어서
2. 원인은 부모들의 잘못된 교육방식
3. sns와 같은 잦은 미디어 노출
4. 그래서 자존감이 과하게 높아야 하는 인간으로 셋팅되어있기 때문이란다.
아.... 물론 인내심이 없다. 나는 벼락부자를 꿈꾸고 영앤리치가 목표인 사람인데, 이것만으로도 내가 얼마나 어쩌다 얻어걸리는 행운만을 바라는지 표현된다.
하지만 내가 인내심이 없는 이유는 단 한가지다.
난, 금성선풍기를 살 수가 없다.
내가 생각하는 밀레니얼 세대의 문제는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패배감이다. 한 신문기사가 이를 정확히 짚어 냈다. 우리 세대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부모보다 못 사는 세대의 출현이란다. 그동안 모든 세대들이 부모보다 성공하여, 보다 더 좋은 환경을 얻어 부모와 자신의 자녀들을 돌볼 수 있는 날을 꿈 꿀 수 있었다면, 우리 세대는 처음으로 이 꿈을 시작조차 할 수 없는 세대인 것이다. 우리는 고작 해야 부모님 만큼이라도 잘 살고 싶다고 기도한다.
이건 진짜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다.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부모님 만큼만 살기를 기도했다. 마음 한켠으로 그게 얼마나 어려운지 매번 생각했고 이 마음이 부모님을 향한 존경심으로 나타나 가장 존경하는 인물에 부모님을 적은 효녀가 되기도 했다.
이게 다 경제불황 때문이다. 고속성장 시대를 살았던 분들은 이해를 못하겠지만, 우리는 패배자들이다, 시작부터. 더 높은 꿈을 꾸기에는 너무 현실적이다. 많은 가능성을 꿈꿨던 그리고 이뤄낸 분들에게 일년 이년은 고작 이었지만, 적은 가능성을 두고 싸우는 우리에게 일년 이년은 평생을 좌우하는 느낌이다. 애초에 지금보다 잘살기를 기도하지 않아서 지금만큼만 살 수 있기를 기도한다.
이게 왜 원하는 직무를 찾고 영향력을 운운하고 자아실현을 언급하는지 덧붙이자면, 고작 기도해볼 수 있는게 그것뿐이라서 그런다. 어차피 평생을 챗바퀴를 도는 직장인으로 살다 죽을 것 같아서 아, 아닌 중 하나라도 얻어보자고 자아실현을 꼽아 봤다.
사실 이 자아실현이 엄청나게 대단한 일처럼 고귀하게 생각했지만, 알고보니 이건 나에게 가장 쉽고 간단한 일이다. 나 혼자서 해낼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사회가, 경제가 아무리 x같아도, 부자는 못되더라도, 자아실현을 할 수 있으니까!! 그 멋진 한마디처럼 "모든 것은 마음먹기 달렸다"
자아를 찾아 직무를 고르고 자아를 찾아 재취업을 위해 퇴사하는 우리을 비난하지 말아주세요...... 그거 진짜 그 작은거 하나 바래보고 있는 거니까.......
그래서, 사실 저라는 이 밀레니얼은 아직도 멍청하게 나에게 맞는 직무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또 실업률이 올랐네요.
설마 어느 인사팀이 이 글을 어쩌다 보진 않겠죠? :)
충성입니다. 어디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