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현생은 취준이다.
8화 내 꿈의 크기는 내가 아는 것이 전부
학교에서 취업박람회가 열렸다. 학교 체육관에 내노라하는 기업들의 설명부스가 세워졌다. 각 부스마다 엄청난 인기의 차이를 볼 수 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법한 기업들에는 자리가 꽉 차 기다리는 학생까지있지만 쉴틈없이 다른 학생들이 몰려온다. 하지만 반면 이름을 들으면 초록창을 뒤져보는 기업 앞에는 한산 하다 못해 지나가다 눈이라도 마주칠까 미안해질 정도다.
하지만 막상 상담을 받아보면 놀란다. 대부분 몰랐지만 우리나라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는 초대기업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우리가 쉽게 마주치치 못하는 기업과 직군들인데, 예를 들어 완제품의 부품을 만드는 기업이거나, 화학, 제약, 건설과 같이 기업이름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분야이다.
하지만 어쩌다 이런 설명을 듣고도 절대 이 기업들은 일순위 기업이 되지 않는다. 좋은 건 알지만, 그게 여튼 그렇다. 익숙하지 않아서 무슨 일을 하는지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아서, 그 곳에서 일하는 내가 그려지지 않는다.
내가 취린이(취업을 처음시작한 어린이 단계)였을 때이다. 사회의 때가 묻지 않아서 인지 자신감과 꿈에 가득 차있었다. 꿈꿔왔던 화려해 보이고 재미있어 보이는 산업의 직군만을 선택하던 시기이다.
나는 어릴적부터 TV홀릭이었다. 점차 엄청난 헤비왓쳐로 성장했는데, 이 누적된 시간들이 나에게 화려하고 재미있어 보이는 직군 카테고리를 만들어 주었다. 그 당시 내가 꿈꾼다고 했던 직업들은 사실 내가 알고있는 직업 중 일부에 불과했다. 화면 속에서. 만화 속에서 봐왔던 모습에 익숙하게 나를 대입시켰다. 그렇게 나에게 꿈 이라는 것이 주어졌고, 나는 오랫동안 그 꿈을 목표로 공부하고 경험을 쌓아왔다.
어느덧 취린이를 벗어나 세상에 수많은 기업과 직무를 알아가고 있는 지금은 그 꿈의 후보지가 얼마나 빈약했는지 깨달아 가고 있다.
세상에는 수천 수만가지의 일이 있다. 문과학생들이 지원하는 영업직군만 해도 기업마다 하는 일이, 다루는 일이, 일하는 환경이 다르니 사실상 같지만 다르다. 좀 더 벗어나 마케팅이 된다면 더 다양해진다.
그럼에도 아직 우리는 영업이라면 으레 '사장님 우리제품 사주세요'를 생각한다. 그리고 사주세요하는 건 언제나 익숙한 물건들이다. 생활에서 주로 사용되는. 나 역시도 아직 이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조금 억울하다.
(나는 비뚤어지다 못해 물구나무를 서서 산다고 할 정도로 불만이 많다.)
내가 높은 경쟁률에서 허우적 거리고 있는 이유가 마치 내게 주어진 꿈의 선택권이 너무 좁아서 인 것만 같다. 헤비와쳐로 지낸지 2n년이 지나니 그 한계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여전히 내가 꿈꾸는 직장인의 모습은 '익숙하다'. 더 슬프게도 이제는 꿈꾸는 모습이 아닌 아무 직장인이라도 되어보고 싶지만, 모습이 그려지지가 않으니 자소서를 쓰기가 쉽지 않다.
어느날은 내가 꾸는 꿈이 진짜 내가 꾸는 꿈인가와 같은 철학적 질문을 던지기에 이르렀다. 모두가 같은 모습을, 비슷한 꿈을 꾸는 건 확실이 이상하지 않은가. 결국 또 자연스럽게 사회를 탓한다. 이게 다! 군대식으로 키워진 탓이라고! 평범이란 감옥 안에서 자라버린 탓이라고!
취업시즌이 본격적으로 시작해 매일 같이 자소서를 써나가고 있다. 다음 주 부터는 이제 마감일이 하루 건너 하루씩 예정되어있다. 자소서를 쓰기 위해서는 우선 공고를 보고 공고에 뜬 직무를 선택해야한다. 물론 그 전에 어느 기업의 공고를 봐야할 지 정해야하는데,
나는 여전히 취린이임을 느낀다.
여전히 내가 아는 곳, 그려지는 직무를 선택한다.
분명 다들 그럴걸 알면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