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면

by Victor navorski



내 현생은 취준이다

7화 아침에 눈을 뜨면








영화 <힘내세요, 병헌씨>가 생각나는 일상이다.

이 영화는 한 방송국이 신인감독의 영화 준비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내용이다. 인간극장 같은 내용을 기대하지만, 예상과 달리 신인 영화감독 지망생 병헌씨는 게으르고 나태하기 짝이 없다. 사실은 모두 나태한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성실하기를 과하게 요구하는 우리 사회를 꼬집은 작품으로 꽤 인기가 많은 독립영화이다.


네이버에 이 영화를 검색하면, 영화 내용 소개에 다음과 같은 글이 뜬다.


'병헌씨는 매일 술만 마시고, 잠에서 깨어 한글파일을 여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무려 8시간 이상, 어렵게 노트북 앞에 앉아도 1시간 넘게 영화 제목의 폰트를 고치기 일쑤. 그러다 밤이 되면 술집행. 아직 데뷔 못한 PD 범수와 아직 데뷔 못한 촬영기사 승보와 아직 대표작이 없는 배우 영현까지, 병헌씨는 앞가림 못하는 영화인 친구들과 허구한 날 티격태격 술만 퍼마신다. '








- 요즘 내 일상이 딱 이렇다.

게으르고 나태해서 입만 열면, 죽어서 나태지옥(신과함께 참조)에 갈 거란 말만 반복한다. 반성하는 듯하지만, 그런 말을 내뱉으면서도 소파에 누워 유튜브만 뒤적거린다.


나의 게으름은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닌데, 어느 정도냐면,

방금 소개한 <힘내세요, 병헌씨>라는 영화를 알게 되어 보고 싶다고 얘기한 지 벌써 4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보지 않았다. 그 시간 동안 병헌 씨는 영화감독 이병헌이 되어 영화 <스물>을 만들었고, 최근에는 <바람바람바람>이 개봉했다. 게으르고 나태함의 표본이었던 병헌씨도 이렇게 나아가는데 나는 여전히 이 영화조차 보지 않고 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취업공고가 뜨기 시작했다.

아직 뭐 준비한 것도 없는데 갑자기 취업 시즌이 또, 시작했다. 8월의 마지막 주가 되면서 취업 공고가 파도처럼 밀려오고 있다. 아마 2주 정도가 지나면 다시 파도처럼 밀려갈 것이 분명하다.


아침에 눈을 뜨고 핸드폰을 확인하면 밤 사이 뜬 공고을 알리는 알람들이 우수수 화면에 떠 있다.

00님의 관심 기업이 공채를 시작했습니다.


마음이 급격하게 초조해진다. 그런데 시간을 확인하니 이미 해 질 녘이 다가오고 있다. 나는 여전히 게으르게 살고 있는데 갑자기 경종을 울린다. 이제 더이상은 안돼!!!!



- 내일은 진짜 일찍 일어나야지

늦은 오후, 눈을 뜨자마자 공고들을 확인하고 매번 다짐하는 말이다. 내일은 진짜. 내일부터는 진짜 일찍 일어나야지. 그런데 오늘도 여전히 나는 새벽에 자소서를 쓰고 있다.


자소서를 쓰면서 오늘 했던 예능을 돌려보고 있다. 예능을 돌려보면서 자소서를 위해 기업 검색을 한다. 분명 기업 검색을 하려고 켰던 창인데 어느 순간 실시간 검색어를 모두 훑어내리고 있다. 모두 훑고 나니 해가 뜨면서 잠이 몰려온다. 자소서 창을 확인해보니 그래도 한 질문을 썼군 하고 꺼버린다. 분명 내일 확인하면 개발새발이라 지워버릴게 분명하다.


내일은 진짜 일찍 일어나서 맨 정신에 잘 써봐야지. 아침에는 인적성 문제를 풀고, 오후에는 인강을 듣고, 저녁이 되기 전까지 자소서를 써야지 꼭. 그리고 11시에 잠에 들어야지 다짐을 하고 눈을 감는다.


일어나면 또다시 아침과 오후를 뛰어넘은 저녁이다. '인적성, 인강은 오늘도 글렀어 xx'하며 그냥 더 자버린다.




한 마디로 내 일상은 '병헌씨'이다. 병헌씨의 삶에서 술과 친구들만 없을 뿐.






일상이 이렇다 보니 마음이 조급하다.

아침마다 뜨는 알람과 하루하루 줄어가는 8월의 날짜가 나를 조급하게 만든다. 그런데 또, 이 놈의 몸은 여전히 게으르고 나태해서 그 몸과 마음의 괴리감 사이에 짜증과 예민이 솟구친다.


글쎄, 오늘은 나가려는데 텀블러 뚜껑이 안 보여서 대뜸 소리를 질렀다. 아무도 없는 주방에 뚜껑 어디 있냐고.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 늦게 나가게 되었으면서도 고작 텀블러 뚜껑 하나가 나를 더 늦게 나가게 만든다고 고래고래 화를 낸 것이다.


나는 게으르고 나태하고 비겁하기까지 하다.


가족들에게도 나는 폭탄이다.

퇴근 후 집에 들어오면 취업준비생 자식이 폭탄이 되어있다. 말 한마디라도 건네면 '빵' 터져버린다.

취업준비생은 오늘도 아침 일찍 일어나 해야지 했던 모든 일을 하지 못하고 자책감에 빠져있는데,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온 가족을 보니 자괴감이 하늘을 찌른다. 그리고 가족들의 퇴근이 마치 하루의 끝을 알리는 알람처럼 느껴진다. 너는, 오늘 하루도 종 쳤다고. 그래서 폭탄처럼 가족들에게 짜증을 내고 다닌다.


그렇게 짜증을 내고 나면 자기 전 다짐이 하나 더 늘어난다.

일찍 일어나야지

인적성 공부해야지

인강 들어야지

자소서 써야지

짜증내지 말아야지


그리고 다음날 저녁에 일어나 이 모든 다짐을 다시 내일로 미룬다. ^^






취업준비에 무엇이 가장 어렵느냐 누군가 묻는다면, 나는 바로 멘탈관리라고 대답할 거다.


취업준비를 시작하고 부터 아침을 개운하게 맞이 한 적이 없다. 일찍 일어나면 일찍 일어난대로, 늦게 일어나면 늦게 일어난대로 불안하다.


무언가를 해야함은 아는데 무엇을 해야할 지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답이 정해진 문제가 없어서 그저 계속 허공 속 보이지 않는 목표를 향해 발길질을 하는 기분이다. 그러면서도 그 헛발질을 멈추지 못하는 하루하루다. 어느날은 자소서가 완벽한데 어느날은 이상하다. 누군가는 괜찮다 하고 누군가는 이상하다 한다. 그냥 계속 수정을 해나가는 일상의 아침이 개운 할리 없다.


그래서 쉽게 나태해진다. 보람이 전혀없는 일상에 쉽게 무기력해진다. 이 무기력은 뫼비우스의 띠 처럼 돌고돌아 자괴감과 불안을 넘어 재차 더 깊은 무기력으로 빠져든다.


그래서 더 사람들을 만나려 노력한다. 다 잘하고 있어, 잘 되고 있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나 처럼 불안하고 힘들어하고 닿지 않는 무언가를 향해 발길질을 하는 친구들을 만난다.


너도그래? 나도그래.


하며, 서로의 불안은 잠시라도 잠식시켜준다. 다들 그래 하며. 우리가 원하는 취업이 모두가 그래야하는 평범함을 목표로 하기에, 그 과정 조차 평범함에 안도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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