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여기까지

by 주또

라이터로 불을 붙이려다 손가락을 데었다. 빨갛게 부풀어 오른 엄지손가락을 입가로 가져다 댄 채 호호, 불었다. 보다 못한 동생이 가까이 다가와 도로 라이터를 가져간다. 대신해서 인센스 스틱에 불을 붙였다. 금방 달달한 시나몬 향이 방안 가득 퍼졌다. 나는 이런 식으로 손이 많이 가는 타입이었다.


“아 땡큐.”

짤막한 인사를 건넨 뒤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었다. 인센스 스틱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뭉게뭉게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다시 책상 위에 얹어진 라이터를 집어 들었다. 라이터 하나도 제대로 켜지 못하는데. 당신은 얼마나 많이 라이터 휠을 돌렸을까. 담배를 입술에 물고 타오르는 끝을 응시하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당신이 내뱉는 연기마다 한숨이 뒤섞여 있을지 궁금했다. 하지만 물을 수 있는 질문이라는 건 애당초 존재하지를 않았다. 이것이 바로 당신과 나 사이의 간극이다. 받아들여야 하는 법. 포기하고 체념할 줄도 아는 법. 내겐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오늘은 저녁 7시 정도에 구월동에 갈 예정이다. 본래 계획에 없던 약속이 잡혀버렸다. 소개팅이었다. 주선자에겐 미안한 말이다만 별생각 없이 승낙한 거였다. 당신을 잊고 싶었다. 영영 지워버리고 싶었다. 더는 당신의 걸음마다 눈길을 쫓지 않고 당신의 음성에 끼고 있던 에어팟을 빼는 일이 없기를 바랐다. 당신을 더 잘 보고 싶어 안경을 착용하는 짓마저 우스웠다. 평소 시력이 0.1임에도 불구하고 안경을 잘 끼지 않았다. 그런데 당신을 마음에 품고 나서 새로운 안경도 구매하고 간간이 당신을 또렷하게 담고 싶을 때마다 꺼내는 편이다.


사실상 당신은 어디에나 있었다. 존재하지 않음에도 존재했다. 내가 아주아주 힘이 들 때 눈을 감으면 당신이 어느덧 옆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곤 한다. 그러면 눈을 뜨지 않는다. 최대한 눈꺼풀을 무겁게 내려 말아 쥔 주먹에 힘을 주고서 깊이, 깊이, 더더욱 깊이 빠져들 수 있도록 온 신경을 집중하곤 한다. 잠시 잠깐 조심스레 그 어깨에 얼굴을 기울여보기까지 한다. 마다 하지 않는 당신 자체가 환영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만들어 괴롭지만 개의치 않다. 통증은 살아있음을 알려준다. 통증이 있어 사랑이라는 점을 부정할 수 없다. 당신은 이토록 절절한 내 마음을 알게 될 시 긍정하지 않을 것이 훤하다만.


인센스 스틱이 툭 하고 부러졌다. 매캐한 연기와 함께 당신이 사라진다. 이만 자리에서 일어나 나갈 채비를 해야겠다. 요 근래 사랑에 관한 글을 쓰지 않으려 했더니 단 한 글자도 쓸 수가 없었다. 어처구니없다. 내 인생에서 사랑이 뭐라고. 사랑 빼면 그리도 할 말이 없더냐. 세수를 하고 양치를 했다. 따뜻한 물줄기를 온몸에 흘려보내며 쓸데없는 상념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노력했다.


뽀송해진 상태로 새 옷을 입고 나와 화장대 앞에 앉았다. 머리카락을 말렸다. 뚝뚝 머리카락이 끊겼다. 굉장히 상한 모양이었다. 화장을 마치고 거울 속에 비친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당신에게 예쁘기 위해 구입했던 화장품으로 온통 칠해진 내 얼굴. 눈빛에 이따금 당신이 보이기도 했다. 난 당신의 눈빛이 참 좋았다. 모든 걸 얼어붙게 만들 만큼의 강렬한 눈빛. 쉽사리 범접할 수 없게 만드는 그런 눈빛. 그런 눈빛을 가진 당신이 웃어줄 때면 세상 전부를 가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억만장자가 부럽지 않았다. 그저 값을 지불해서라도 그 반달 눈웃음을 오래도록 감상하고픈 심정이었다.


옷장을 열었다. 옷을 골랐다.

당신이라면 어떠한 옷을 좋게 반응해 주려나, 생각하며 골랐다.


*

“생각도 많고, 스트레스 받으면 잘 풀지도 못해요.”

“겉으로는 안 그래 보이는데요. 무척 밝아 보이세요.”

“그래서 자주 아파요.”

역시나 소개팅은 지루했다. 상대도 영 별로였다. 대화 코드가 잘 맞기는 했다만 일말의 설렘조차 존재하지를 않았다. 그냥 놀고 가자는 심산으로 나도 편하게 임했다. 하루 보고 말 사이라는 건 정말 간단하다. 굳이 머리를 굴리지 않아도 되어 어쩌면 길게 봐온 이들보다 고민을 말하기 쉽다. 어차피 이 사람에게도 나라는 인물에 대한 여파가 오래가지 않을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인 것일까.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내가 아픈 부분까지 털어놓았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당신을 떠올려냈다.


최근 들어 내가 들어오는 소개팅을 마다하지 않고서 모조리 참석하는 이유. 얼른 당신을 잊어야 한다는 조급함이, 바로 그 까닭이었다. 서둘러 비워내야 했다. 당신으로 인해 완전히 붕괴되지 않으려면 내 마음을 앗아갈 다른 이를 어서 만나 당신 따윈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담대히 말할 수 있는 처지가 되어야 했다. 아이러니했다. 백 마디 대화를 나눈 이보다 열 마디도 나눠보지 못한 당신이 여운 깊다는 점이. 사고 회로가 정지되었다. 어떠한 말도 덧붙이지 못한 채로 망연해졌다. 이번 소개팅도 망한 거였다.


당신과 단둘이 공간에 남는 사건이 발생했었다. 다시는 오지 않을 듯한 기회였는데 난 단 한마디도 붙이지 못했다. 이런 스스로가 끔찍이도 싫었다. 그야 할 수 있는 말이 없었으니까. 그럴 수도 있지. 그렇지만 상대가 당신이었는데? 이걸 어떻게 용서해야 하지. 본인을 나무라며 올라탄 차에서 창문에 이마를 박고 싶은 걸 가까스로 참아냈다. 입술을 깨물었다. 핏방울이 고였다. 금세 비릿한 피 맛이 입안을 훑었다. 역겨웠다. 애초에 자랑할 수 없는 마음을 피어나도록 가만두는 게 아니었다.


“둘이 있었는데. 아무 말도 못 했어요. 쳐다도 보지 못했어요. 어떻게 얻은 기회였는데. 단둘뿐이었는데.”

고장 난 카세트처럼 이 말만 되풀이했다.

“어떤 말을 하고 싶었는데?”

이 질문에도 명확한 답을 하지 못했다.

“모르겠어요. 딱히 그런 건 없었어요.”

아니 실은 있었다. 당신이 너무 멋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반짝반짝 빛이 난다고. 그래서 당신을 계속 주시하게 된다고. 오지랖인 건 아는데 당신이 조금 더 따뜻하게 입고 다녔으면 좋겠다고. 건강하라고. 가벼운 감기조차 걸리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말하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영원히 이런 말을 할 수 없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 시간을 되돌려도, 아까의 시간으로 돌아간다 하여도 입도 벙긋하지 못할 거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무력했다. 당신을 향한 내 사랑은 아무런 힘도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이 상당히 애달팠다.


당신이 다른 누군가에게 격하게 고개를 끄덕여주는 일을 보는 것도. 당신이 나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보이는 해맑은 웃음도. 당신이 나를 제외한 세상 전부에게 상냥한 것 같은 기분도. 미치도록 부러운 당신의 누군가에게 일어나는 질투심도. 점차 당신의 행복만을 바라던 마음이 변질되어 탐내서는 안되는 당신의 심장마저 탐이 났다. 정신을 차려야 했다. 일어나야 했다. 단념하여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밸런타인데이에 초콜릿 줘볼까요?]

[줘어 줘어]

마지막을 정했다. 밸런타인데이로 골랐다. 초콜릿을 주고 끝을 내기로 마음먹었다. 마음먹은 대로 늘 되는 일이 없어 불안했다만 이번엔 다를 거라 애써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그렇다면 어떤 초콜릿을 줘야 하지. 깊은 고민에 빠졌다. 부담 갖지만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

밸런타인데이 당일이었다. 준비한 초콜릿을 쇼핑백 안에 집어넣었다. 동시에 전할 말을 되뇌었다. 11일 날 상아를 만나서도 맹연습이었다. 맛있게 먹으라는 간단한 인사말이었는데 당신 앞에서 한다고 생각하면 자꾸만 혀가 꼬였다. 심지어는 미리 구입한 초콜릿 상자를 정성스레 물티슈로 닦기까지 했다. 한참 동안 그 지랄을 하고 있으니 보다 못한 상아가 한 소리 했다.


“염병.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건데?”

글쎄다. 생긋 웃었다. 이렇게까지 하고 싶어서? 마음 같아서는 초콜릿 한 상자가 뭐야. 열 상자. 아니 한 트럭은 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건 상당한 부담감을 안겨줄 것 같기에 참는 거다. 참아서 이 정도인 거다. 암 그렇고말고. 택시에 올라타면서도 속으로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맛있게 드세요. 맛있게 드세요. 당신이 어떠한 표정을 지을지 도무지 감이 안 잡혔다. 전날 꿈에 나온 당신이 냉랭한 표정으로 나를 마주해서 더더욱 움츠러들었다. 그 눈빛에 주눅 들지 않고서 또박또박 제 할 말을 전해야 하는 것인데. 어찌 되었든 간에 오늘로써 짝사랑 청산할 거였다. 당신에게 초콜릿을 주고 나면 다 없던 일이 될 거였다. 나도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을 만나 행복할 작정이었다. 쇼핑백 끈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친한 위 과장님이 새해 맞아 정해주었던 나의 목표를 떠올려냈다.


[안정적인 사랑을 시작하기.]

내친김에 카카오톡을 열어 메시지를 다시금 확인해 보았다. 아주 만족스러운 목표다. 소연 팀장님 앞에서 혼란 가득한 얼굴로 당신 이름을 거론하던 시절도 끝이다. 몰래 화장실 가서 눈물을 훔치던 날들도, 밤새 우느라 퉁퉁 부은 눈으로 아침을 맞이하는 일도, 오늘로써 다 지난 추억이 된다. 메모장을 열었다. 이렇게 적었다.


[훗날 당신쯤은 가뿐히 잊었습니다. 웃겨요. 나도 이다지 행복할 수 있는 거였는데. 왜 그리 당신에게 맹목적이었는지. 그래도 당신을 만나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무료했던 일상에 등장해 주어 감사했어요. 한동안 시끌벅적한 삶이었습니다.]

심호흡을 했다. 저만치 당신의 얼굴이 보였다. 차츰 가까워졌다. 눈물이 차오를 것만 같았다. 발바닥에 힘을 주어 한걸음 한걸음 내디뎠다. 이어서는 잰걸음이 되었다. 당신을 불러 세웠다. 당신은 영문을 모르겠단 얼굴로 나를 마주했다. 나를 내려다보는 당신의 키가 대충 몇 센티미터쯤 되겠네, 가늠했다. 손을 뻗었다. 마침내 반짝이는 초콜릿 상자가 당신의 시야에 들어섰다.


“밸런타인데이 초콜릿이에요.”

아, 당신은 탄성을 내뱉었다. 손이 달달 떨렸다. 목소리도 마찬가지였다.

“맛있게 드세요.”

“감사합니다.”

당신은 애매하게 웃었다. 반은 웃은 것 같고 반은 웃지 않은 것 같았다. 냅다 뒤를 돌았다. 씩씩하게 걸어갔다. 쿵쾅거리는 심장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했다. 입을 다물었다. 성공. 됐다. 끝났다. 손바닥 안이 축축했다. 바지춤에 쓰윽 닦았다. 당신이 보이지 않을 즈음 되자 다리에 힘이 풀렸다. 울고 싶어졌다. 당신이 마냥 기뻐하지만은 않은 듯하단 판단에서였다. 근데 그런 게 뭐가 중요하다고. 어차피 이제 잊을 사람인데. 좋아했건 안 했건 뭐가 중요하다고.


애초에 그런 걸 기대하고서 저지른 행동은 아니었지 않나?


속내가 시끄러웠다. 우두커니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았다. 이미 사라진 형체가 보이지 않았다. 잘못 내린 정류장이었다, 당신은. 그러니 이제 본래 가려던 길을 가야 한다. 이후로 당신이 초콜릿을 맛있게 먹었는지 혹은 먹지 않았는지 버렸는지 다른 사람을 줘버렸는지. 한사코 궁금해하지 않아야 한다. 사랑했고 사랑했으니 그걸로 된 거다.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정면엔 당신의 잔상이 자욱했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했다. 고로 나의 사랑은 집착이었을까.


안녕, 내 사랑.

이제 다시는 내 꿈속에 난입하지 말아요. 머릿속도 안되어요.

내가 아무리 당신의 동선을 눈으로 쫓는다 한들 일일이 반응해 주지 마세요.


[쉽게 지울 수 있어요.]

거짓말.

[어려서 그래요. 내가 당신을 사랑한 일은.]

내 사랑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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