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동 한 그릇

by 주또

송도 커넬워크에 위치한 우동 가게에 들렀다. 한 2년 전쯤인가. 눈만 마주쳐도 생글생글 웃어주던 이와 처음 방문했던 곳이었다. 그 사람과는 이제 더 이상 연락을 하지 않게 되었지만 종종 지인들에게 이 맛을 추천해 주고는 했다. 몇 번 회사 선임을 데리고 온 적도 있었다. 가게 내부는 변함이 없었다. 따뜻한 분위기가 여전했다. 추위로 움츠러들었던 몸을 펴고 패딩을 벗어 의자에 걸어두었다. 닭고기가 들어간 우동을 시켰다.


동행한 소연 팀장님이 단무지 통에 든 단무지를 집어 그릇에 덜어주었다. 한 개를 입안에 넣었다. 이곳에서 단무지는 처음 먹어보는데 보통 단무지와는 살짝 다른 맛이었다. 취향에 맞아 자꾸 손이 갔다. 어느덧 우동 두 그릇이 나왔다. 노상 그렇듯 국물을 먼저 맛보았다. 후루룩. 목 넘김 동시에 속 안이 뜨끈해졌다. “으아.” 나도 모르게 괴상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소연 팀장님도 덩달아 국물 맛을 보고는 빙긋 웃었다. 본격적으로 젓가락을 들고서 먹기 시작했다. 닭고기에서는 불향이 났다.


“너는 그 사람이 네가 좋아하는 걸 알았으면 좋겠어?”

소연 팀장님이 운을 뗐다.

“네. 아무래도 혼자서만 알고 간직하기에는 아까운 마음이니까요.”

“오, 멋진데.”

진심이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내뱉은 말이었다만, 속에서 우러나온 대답이었다.


소연 팀장님은 몇 달 전부터 내가 마음에 품게 된 이에 관하여 알고 있었다. 그를 좋아하게 된 것은 대략 한 4개월 정도. 작년 11월 그즈음에 진행되었다. 소연 팀장님에게는 그 달하고, 다음 달 단둘이서 소품을 사러 이케아에 가며 토로하게 되었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좋아하는 사람에 관해 이야기하기까지 얼마나 머뭇거렸는지. 오죽하면 말을 빙빙 돌려 첫사랑 시절부터 거슬러 올라가 얘기하고 있었다. 그러다 중간에 일생 두 번째로 사랑했던 인물도 밝히게 되었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 소연 팀장님이라면 알아줄 것 같았다. 내가 느끼는 혼란과 묵직함을 이해해 줄 듯한 확신을 받았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함부로 발설하지 않을 것 같단 신뢰가 있었다. 그래서 고백했다. 나는 전에 이러한 사람을 사랑해서 이렇게까지 했으며 그 후로 그 사람을 잊게 해준 사람은 이 사람이었고 지금은 이 사람을 마음에 품게 되었다고. 어쩌면 소연 팀장님에게 확신을 가졌을뿐더러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때로는 감정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한결 나아지는 경우가 있다. 그렇게 그 후로 나는 소연 팀장님과 감정을 나누는 사이로 발전했다. 소연 팀장님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만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너는 우러러볼 수 있는 사람을 좋아하나 봐.”

당시 소연 팀장님에게 들었던 말. 반론할 수 없었다. 정곡을 찌르는 말이었다.

“그런가 봐요.”

내 취향을, 그간 얼마나 고민해왔는지.


그날 소연 팀장님과의 대화를 통해 깨닫게 되었다. 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우러러볼 수 있는 존재였구나. 그러고 보니 아라 씨에게도 살짝 내비친 적이 있었다.


“전 저보다 한 단계 위에 있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잘 되지도 않고, 가능성도 없어서 괴로워요. 게다가 누군가를 한번 마음에 들이게 되면 온 세상이 그 사람이게 되어 고통스러워요. 이루어질 리가 없는데.”

말을 하면서 입안이 썼다. 감기약 따위를 물고 있는 듯했다.

“좋은 거죠. 자신 보다 높은 사람을 좋아하면 본받을 점이라도 있지. 본인보다 나은 점 하나 없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보다는 나은 거예요.”

“그럴까요?”

대꾸하는 내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그리고 누군가를 그렇게나 많이 좋아할 수 있다는 건, 아직 순수해서 그런 거예요. 난 오히려 그럴 수 있다는 게 부러운데.”

이 또한 그럴까요? 초점을 잃은 눈으로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역시나 누군가를 많이 좋아하고 싶지 않았다. 더군다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속이 쓰렸다. 위약을 찾았다.


*

본래 가려고 했던 카페는 문을 닫았다. 추위를 이기지 못해 덜덜 떨며 그냥 눈앞에 보이는 아무 카페나 무작정 들어갔다. 아늑한 분위기의 카페였다. 차가운 두 볼이 따뜻한 공기와 만나 빨갛게 홍조를 띠었다. 소연 팀장님은 내부를 둘러보며 꼭 유럽에 온 것 같다고 중얼거렸다. “그렇네요.” 맞장구를 치곤 짐을 내려놓았다. 캐머마일 티와 소금 빵, 누네띠네 스콘을 시켰다. 남길 것 같았다만 개의치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주전자에 담긴 티가 나왔다. 찻잔에 따라 한 모금 마셨다. 덩달아 소연 팀장님이 주전자를 덥석 쥐었다가 “앗, 뜨거워!” 놀랬다. 얕게 웃었다. 모양새가 귀여웠다.


난 소연 팀장님이 귀엽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그저 가만있을 뿐인데도 귀여워 계속해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나보다 한 8살은 더 많은 사람인데 귀엽다고 해도 될까, 실례인가 싶으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다.


“왜 웃어?”

“팀장님이 너무 귀여워요. 진짜로.”

어떤 때는 소연 팀장님의 두 볼을 쥐고서 콱 터뜨려버리고 싶단 생각까지 하게 된다.


*

“사람에게 크게 데인 적이 있었다면서. 무슨 일이었는지 말해줄 수 있어?”

“음,”

소연 팀장님의 눈매가 깊어졌다. 내게 다시금 그날을 회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동공이 커졌다. 공허해졌다.

“지금 당장 말해주지 않아도 돼. 나중에 하고 싶어질 때까지 기다릴게.”

소연 팀장님이 손사래를 쳤다. 일순간 눈빛이 일렁거렸다. 금세 흐릿해지는 시야를 바로잡았다. 결심했다. 솔직하게 얘기하자. 내가 가진 상처와 한사코 잊고픈 그날을 정면으로 마주하자.


“한 3년 전이었나요.”

우울의 절정을 달리고 있던 시기에 만난 이들이 있었다. 내가 가장 힘이 들 때 손 내밀어 준 이들. 그들은 다정했다. 나의 멍든 가슴을 어루만졌다. 보이지 않는 곳에 난 생채기에 약을 펴 발라주었다. 그런 그들을 굳게 믿었다. 당시 난 애정에 몹시 목말라있었기에 타인에 대한 의존도가 꽤나 높았다. 꼭 나에 대한 정답이 타인에게 있는 것처럼 굴었다. 그래서 더더욱 그들이 말하는 대로 행동하려 하며 마음을 달리 먹으려 노력했다. 그들의 사랑에 부응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그들은 전부 가짜였다. 날 사랑하지 않았다. 날 이용하고자 벌인 한편의 연극이었다. 이걸 알아차린 후 난 도망쳤다. 그들에게서 멀리멀리 도망치고자 굴을 파고 안으로 들어갔다. 방안에 틀어박혀 한동안 나오지 않았다.


사람으로부터 오는 공포를 처음 느꼈다. 그들이 내게 보여준 것들은 뭐지? 뭐였더라. 일종의 사기극 비슷한 거였을까. 사람의 마음은 이용당하기 쉽다. 나약해 빠진 인간일수록 상당히 그렇다. 절박함은 때론 약점이 된다. 나를 알려준다는 것은 미끼가 되기를 자처하는 짓이다. 그때 배웠다. 배워서 괴로웠다. 고통스러웠다. 너무 늦게 알았음을 자책했다. 잃어버린 것들을 되돌려 받을 순 없는 노릇인데. 잠만 잤다. 꿈이었을 거야. 깨고 나면 모두 원상태로 복구되었을 테지. 그렇지만 그러지 않았다. 난 그들에게서 멀리 도망쳐온 만큼 멀리 가있었다. 돌아갈 수 없는 날들이었다.


“후로는 사람 만나는 게 무섭더라고요.”

누가 나를 알까 무섭고. 또다시 누가 나를 속일까 두렵고.

“그 일로 인해 오래 간직했던 꿈도 버렸어요, 그냥 미친 듯이 취업 준비에 몰두했어요.”

그러다 이 회사에 오게 되었고요.

“힘들었을 텐데 잘 버텨줬네.”

소연 팀장님이 작아진 나의 등을 토닥였다. 입술을 앙, 다물었다.


힘들었나?

힘들었던가.


속이 울렁거렸다.

금방이라도 토를 할 것 같은 거북함이 밀려왔다.


*

주차장에 도착했다. “태워다 줄게.” 소연 팀장님의 친절에 기뻐하며 조수석 문을 열었다. 시간은 어느새 10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팀장님 덕분에 엄청 웃었더니 폐가 아플 지경이었다. 팀장님은 늘 내게 “넌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는 것 같아.”란 말을 했다. 난 반대로 팀장님에게 그런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팀장님 앞에서의 난 더할 나위 없이 투명해졌고 무방비해졌다. 경계하지 않고서 속내를 줄줄 읊었다. 감정에 있어 솔직해졌다. 이러다 보니 팀장님과 있는 시간이 당연 즐거울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가능한 긴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었다. 모쪼록 내가 열이 날 때마다 물수건을 얹어주던 이들은 얼마 못 가 쉬이 남이 되는 쪽이었다. 하나, 팀장님은 다를 거라며 안심하고 싶었다.


모든 관계가 불안했다. 이 행복이 별안간 사라질 듯하여서. 한여름 밤의 꿈과 같은 상황이 될듯하여서. 이 회사를 다니며 건강은 악화되었다만 소중한 인연을 여럿 만날 수 있었다. 사회에서는 절대 이러한 인연을 맺지 못할 거라 냉정하려 했는데, 그러한 마음을 죄다 녹여준 인물들이 있었다. 내가 가진 상처를 잊게 하고 내가 가진 그대로를 인정하며 나의 변화를 응원하고 걱정하는 어른들. 감사하다. 그리고 이 인연의 끈을 놓고 싶지 않아 욕심이 생긴다.


“꾸준히 연락하면 되지. 회사를 나간다고 해서 끝이 아니야.”

“매일 보지 못하잖아요.”

“난 아직 전 회사 사람들 만나. 자주는 못 봐도 간간이 만나고 그래.”

눈시울이 붉어졌다.

“괜찮아. 주영아 다 괜찮아.”

뭐든 시간이 해결해 줘.


난 여태 타인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생활 속 영향을 많이 받는다. 미리 일어날 불행을 대비하고자 오늘의 운세를 확인한다. 타로 카드 등으로 하루를 점쳐본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꿈자리마저 불길하다. 하루가 시작되기 전부터 지레 겁을 먹는다. 한껏 젖은 눈으로 심호흡을 일삼는다. 두 손을 가리고서 태어나지 않았을 시절을 상상해 본다.


나는 성장하고 있을까?


옆에서 들려오는 소연 팀장님의 음성이 아득해졌다. 도로 위로 즐비한 차들이 바쁘게 지나갔다. 새로운 향수를 사야겠다. 한 해가 끝났다. 한 번도 칠해진 적 없는 향으로 칠해질 필요를 느꼈다. 한 살 한 살 더 먹을수록 흐려지는 잔상과 잔향들로부터 안녕, 이었다. 그가 보고 싶었다. 나를 속인 이들과 나를 아껴주는 이들. 나를 사랑했던 이들과 내가 사랑한 이들.


[일년회사생활 고생고생 많아써]


연연하지 않으려 할수록 깊이, 얽매이는 것들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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