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연. 나는 네가 보고 싶다. 네 이름 석 자를 발음하는 것조차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우리가 처음 만난 건 초등학교 사학년 때쯤인가 그랬다. 나는 너와 너무 친해지고 싶어서 네 주변을 알짱거렸다. 심지어 다른 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먼저 다가가 말을 건네고 시답잖은 농담과 간식거리 따위를 손에 쥐여줬다. 이유는 없었다. 그냥 너랑 가까워지면 내 인생이 한결 재밌어질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우리는 그러다 같은 반이 된 적이 있었다. 오학년이었나. 육학년이었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반 배정을 확인하고서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우리는 삽시간에 친해졌다. 그 안엔 나의 무수한 노력이 깃들어져 있었다. 너와 난 모든 걸 함께 했다.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마주 보고 있는 동이어서 창문을 열면 네가 아래에서 손을 흔들기도 했다. 매일 등하굣길을 같이 했다.
당시 헤어스타일과 안경 그리고 옷차림새가 비슷하여 쌍둥이냐는 소리도 자주 들었다. 좋았다. 그래서 난 더욱더 너를 따라 하기도 했다. 가방도 너와 같은 브랜드로 바꾸고 입고 있는 티셔츠 또한 너와 최대한 비슷한 걸로 맞췄다. 가족이고 싶었다. 진짜 우리가 쌍둥이였으면 좋겠다는 말을 더러 했던 적이 있었다. 물론 너는 질색을 하며 “꺼져.”라 했다만.
*
네가 방과 후 컴퓨터를 신청해서 나도 했다. 네가 바이올린을 배우고 싶다 해서 나도 했다. 쉬는 날 없이 너네 집을 들락날락했다. 그곳에서 밥도 먹고 서로 소설을 이어 쓰기도 하고 좋아하는 연예인 뮤직비디오를 찾아보기도 했다. 너네 집이 우리 집보다 편했다. 너희 집 비밀번호를 내가 생성하는 모든 계정 비밀번호로 설정했다. 너 역시 사용하는 비밀번호였다. 너의 이름 앞 성을 나열하고 뒤에 너의 집 현관 키 비밀번호를 연결하고. 고로 우리의 비밀번호는 동일했다.
너희 아버지도 정말 친절한 분이셨다. 셋이서도 쿵작이 잘 맞아 여기저기를 가기도 하고 맛있는 걸 먹기도 하며 장난도 마구 쳤다. 행복했다. 너와 친해질 경우 따분한 내 인생이 재밌어질 거란 예상에 걸맞게 너와 보내는 시간은 지루할 틈이 없었다. 하루하루가 아쉬웠다.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오면 고작 코앞인 거리임에도 멀게 느껴져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네가 울면서 전화를 했다. 나는 슬리퍼를 신고서 뛰쳐나갔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에 분했다. 기껏해야 “괜찮아.”라는 말로 너를 달랠 뿐. 네 마른 등을 매만지며 다짐했다.
네가 하자는 건 다 할 거라고. 형제 없는 네게, 때로는 언니가 때로는 동생이 되어줄 거라고. 네가 기댈 수 있는 존재가 되어줄 거라고.
너를 데리고 살고 싶었다.
다행스럽게도 너는 오래 슬퍼하지 않았다.
그게 진실이었는지는 모르겠다.
*
하지만 진짜 불행은 우리가 졸업하고 나서 찾아왔다. 같은 중학교를 입학하게 되어 있었으나 너는 고모 댁에 가서 지내게 되었다. 고모 댁은 서울이었다. 즉 “너는 이사를 간다. 이곳을 떠난다.” 몰아치는 슬픔에 익사할 듯했다. 반 배치 고사만 보고 학교를 나가지 않는 너를 보고서 울었다. “꼭 연락 잘해야 돼. 알았지?” 약속을 받아내고서 너를 보냈다. 텅 빈 너네 집 앞 현관에서 쭈그려앉아 울었다. 우리가 매일 같이 시간을 보내던 그네에 앉아 울었다. 울었다. 울다가 울다가 하다 보면 네가 다시 돌아올 듯했다. 떼쓰면 된다고 어느 정도 믿고 있던 나이었기에 이럴 경우 하늘이 어떻게든 도와줄 거라 생각했다.
초반에 너는 연락이 잘 되었다. 여름까진 잘 되었던 것 같다. 우리는 하루가 멀다 하고서 전화기를 붙잡고 살았다. 엄마한테 매번 혼났다. 그래도 말을 듣지 않았다. 참으로 밥을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서 너와 통화만 했던 것 같다. 네가 온 날도 있었다. 베란다 창문 아래로 손을 흔들었다. 너희 아버지와 너는 여전했다. 뛸 듯이 기뻤다. 너 하나 왔다고 이리 기쁠 수 있나. 묵혀있던 우울이 죄다 달아나버렸다. “그래. 이렇게 연락을 할 수 있고 만날 수 있으니까. 우린 어른이 되어서 더 자주 만나면 돼.” 착각했다.
완벽한 착각이었다. 여름이 지나고 너는 사라졌다. 전화를 받지 않았다. 네게 무슨 일이 생긴 건지 두려웠다. 네가 죽었을까 봐 무서웠다. 당장이고 달려가고팠으나 고모 댁 주소를 알 수 없었다. 멍청하게 전화기만 붙잡고 있었다. 네게 무수한 연락을 했다. 문자도 하고 전화도 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절망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눈물이 마를 새 없었다. 무엇도 즐겁지 않았다. 망설이다가 네 사촌동생에게 연락을 해봤다. 네가 아주 잘 지내고 있다 했다. 믿을 수 없었다. “연락 달라고 해줘.”
연락이 오지를 않았다.
내가 무얼 잘못했을까?
*
몇 번의 계절이 바뀌었다.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번호를 바꿔 네게 전화를 걸어봤다. 신호음이 이어졌다. 손바닥 안엔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그리고 기적이었을까. 거짓말처럼 네가 받았다. “여보세요?” 감정이 북받쳤다. 살아있었구나. 나는 네가 죽은 줄 알았단 말이야. 하고팠던 말이 많았으나 하지 못했다. “나야.”하는 순간 네가 우렁차게 웃더니 “꺄악!” 소리를 지르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 뒤로 다시 걸어보았지만 받지 않았다.
뭐였을까.
중학교 일학년의 우린, 자라나 어엿한 성인이 되었다. 그동안 나는 가끔가다 네게 메시지를 보내보았다. 사라지지 않는 1이 야속했다.
나는 여전히 네 생각을 한다.
무진장 힘든 날엔 너와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본다.
동그란 얼굴
크고 짙은 쌍꺼풀을 가진 눈
동그란 코
도톰한 입술
나의 모든 비밀번호는 아직도 그대로이다.
새연. 네가 간 후로 바이올린을 그만두었다고. 지금은 다 까먹어서 아예 손도 대지 못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너를 원망하지 않는다. 나는 너를 미워할 수 없다. 무조건적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는 사람. 그게 너였다.
만일 네가 있었더라면 내가 조금은 덜 힘들었을까.
*
네가 그렇게 날 떠난 후로 난 이별이 어려워.
또 보자는 말을 믿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