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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또 Jun 13. 2023

대충 쓴 글

[사랑을 의미하는 낱말을 적어보세요.]

사랑이 무얼까? 무어라 해야 가장 사랑을 완벽하게 표현해낼 수 있을까. 고민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단 5초 만에 답을 적었다.

[전부]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란 그랬다. 일상이자 세상이 되는 것. 고로 전부가 되어버리는 것. 불현듯 어디서 본 글귀가 떠올랐다. 사람을 무너지게 하는 방법은 그 사람의 전부가 된 후 사라져버리는 거라는 내용이었다. 영락없이 나의 전부였던 누군가가 떠나갔다. 가슴을 도려낸 것도 아닌데 그럼에도 살아지긴 한다는 게 신기했다.


난 이제 누군가의 이름을 편히 발음하지 못한다. 금기어 같은 게 되었다. 바닥이었다. 당시의 나는 본인 스스로의 바닥을 마주하고야 말았다. 이성을 잃었다. 감정을 통제하지 못해 어린애처럼 떼를 썼다. 반쯤 미쳐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지 말아야 할 말과 행동을 저지르고선 후회했다.


“넌 왜 맨날 화만 내냐.”

“화가 아녜요.”

“그럼 뭔데.”

“투정?”

불안을 표출하는 짓이 다반사였다. 주변 모든 사물과 사람들은 이런 날 만류하는 신호를 보내왔다. 눈치가 보였다. 이런데도 불구하고서 해피엔딩을 꿈꿔왔단 사실이 굉장히 부끄럽고 쪽팔리다. 혼자 남은 시간 멀뚱히 그 시기를 회상하고 있노라면 쥐구멍에라도 숨고파진다. 하나 만약 시간을 되돌려 그 날로 돌아간다 한들 달라지는 건 없을 것 같다. 난 똑같이 감정에 앞선 일들을 벌였을 듯하단 얘기이다. 이런 걸 보면 난 미성숙에서 벗어나긴 한참 멀었나 보다.


평일 내내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심지어 토요일엔 새벽 다섯시면 일어나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일요일 하루는 밀린 잠을 몰아서 잔다. 누구 말마따나 해가 중천에 뜬 시각에서야 겨우 몸을 일으켜 뭉그적거린다. 물 한잔 마시기조차도 귀찮아지는 근황이다만 바쁘게 살기 위해 노력한다. 나름대로의 부실한 목표를 세우고 안 하던 열정을 쏟는다.


상아는 그게 정말 너를 위한 일인지 가슴에 손을 얹고서 잘 생각해 보라 한다. 부정만 하던 난 벙어리가 되어 잠시 말을 잃기를, 달싹이기를 반복한다. 다만 끝으론 못내 수긍하고야 만다. 상아는 줄기차게 말한다.


“그냥 인정하고 받아들여.”

평생을 살아온 이곳이 왜 이리 낯설게 느껴지는지. 나를 에워싼 공기가 희박하다. 잠깐 빌려온 온기를 미련 없이 도로 돌려놓았다. 속이 아프다며 앞에 놓인 치즈 케이크는 단 한입도 먹지 못하던 기억. 성장해 나아가야 하는 게. 나중에 내가 진정한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날 경우 반가우려나?


*

애인은 불안한 눈동자로 내게 말했다.


“네가 하라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생각보다 내가 널 많이 좋아하나 봐. 이 관계에서 갑은 너야.”

안쓰러웠다. 왜 저렇게까지 하는 거지?

“내가 뭐라고 그래.”

무심코 툭 튀어나온 말. 일순간 동작을 멈췄다. 들어본 적이 있는 말이었다. 내가 뭐라고 그렇게 우니. 앞에 놓인 음식을 한 입도 먹지 못했다. 수저조차 들지 않았다. 온갖 미사여구를 총동원하여 너를 위한 것인지 나를 위한 것인지 헷갈릴 법한 말들을 마구 뱉어냈다. 애인은 그날 처음으로 내 앞에서 술을 마셨다. 붉게 물든 초조한 얼굴이 어색했다.


어떠한 행성이 생겨났다가 본래 있던 커다란 행성에 부딪혀 폭파되었다. 문득 그런 소리를 들었다.


*

“솔직히 도피처로 삼은 거잖아. 넌 갈구해야만 하나.”


그랬나?

상아가 갑갑하단 어투로 얘기했다.


나 되게 나빴다.


*

우거지 해장국을 한 그릇 싹싹 비우고서 구시렁거렸다.


“뭔가 커다란 걸 잃어버린 것 같은데.”

연이어 수진이 외쳤다.

“찾자! 뭘 잃어버렸는지.”

아라 씨도 합류했다.

“어떤 커다란 거일까요?”

묵언.


*

고백하건대 대충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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