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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또 Jun 16. 2023

시들시들

체육공원을 두 시간 넘게 돌았다. 다리가 아파도 계속해서 걸었다. 전에 썼던 글들이나 읽으며 상념에 사로잡혔다. 이렇게 오래 걸은 건 그날 이후로 처음이었다. 그에게 울면서 전화했던 날이 으레 마지막이었다. 한 스무 살 초반까지는 많이 걸었던 것 같다. 70kg이 넘어 살을 빼려고 어디를 가든 대중교통 대신 걸어가기도 했다. 심지어는 부평에서 우리 집까지 네 시간가량 걸은 적도 있었다. 그땐 정말 다리가 결딴나는 줄 알았다. 아픔을 넘어서서 무감각해져 픽 하고 침대 위로 쓰러졌더란다.


생각할 거리가 늘어났다. 하루가 지날수록 불필요한 것들은 덜어내고 그중 남은 것들을 잘 정리해도 모자랄 판국에 여러모로 신경 써야 할 사건들이 쌓여갔다. 그로 인해 또다시 두통약을 비타민 마냥 물과 함께 꿀떡 꿀떡 삼킨다. 얼마 전 올라온 민경의 블로그 제목이 어른이 필요해,였다. 이전에 내가 썼던 문장이 떠올랐다. 대충,


[어른도 어른이 필요하다며 운다.]

식의 뉘앙스였다. 그냥 민경과 내가 비슷한 감정을 느낀 적이 있단 거에 조금 놀랐다. 그리고 어떤 식으로든 위로를 해주고 힘을 실어주고팠는데 방법을 몰라 서툰 말들만 몇 자 적어보낸 것 같다. 파랗던 하늘이 캄캄해졌다. 배드민턴을 치던 아이들과 야구를 하던 아빠와 아들, 보드를 타던 소년들, 내 뒤를 이어 걷던 사람들이 차츰 자취를 감췄다. 다들 집으로 갔을까? 집으로 갔으려나.


여전히 집이 불편하다. 집순이가 집 밖으로 나돈지 벌써 몇 달 째인지 모르겠다. 아라 씨도 그랬다. 그런지 꽤 되지 않았냐고. 방황하는 마음을 숨기려 머쓱한 태도를 보였다. 상아는 나의 말투가 바뀌었다고 했다. 눈치챈 건 상아뿐이었다. 난 알고 있었다. 스스로의 말투가 달라졌다는 점을 느끼고 있었다. 좋은 쪽으로 인지 나쁜 쪽으로 인지는, 글쎄 애매하다. 상아는 웃기다고 하는데 난 좀 싸가지 없어졌다고 여기고 있다. 평소에 ;;, 은 절대 쓰지 않던 애가 이걸 남발하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 이게 나쁘다는 건 아녔지만 사용이 잦은 사람과는 대부분 가까워지지 않는 편이었다.


여하튼 이제 대략 이주 뒤면 팀에 혼자 남는다. 오늘 수진이 부장님에게 퇴사 사실을 알렸다. 부장님은 내가 걱정이라고 하셨다. 나도 내가 걱정이라 했다. 걱정과 걱정이 만나 두 배가 되는듯했다. 그래도 걱정 말란 말에 나름 그렇게 하려고 했다. 효과가 있을지는 현재로썬 긴가민가하다. 외딴섬같이 쓸쓸하고 그럴 것 같냔 부장님의 농담에 맞다며 앓는 소리를 냈다. 물론 나도 이곳에 더 이상 오래 머물러있지 않을 수도 있다. 모두가 떠난 마당에 그 부재를 고스란히 감당해나가며 버틸 자신이 없었다. 솔직히 일이야 뭐, 그렇다 치는데 비어버린 자리들이 낯설어 견딜 수 없었다. 여태 사람이 이토록 내 삶에 큰 영향력을 미친다는 게 굉장히 불편하다. 다른 팀 친한 김대리님이 장난삼아 내게,


“요새 생각해 봤는데 너 분리불안 같아.”

라고 하셨다. 그게 내내 머릿속에 박혀 퇴근할 때 즈음엔 검색을 해보았다. 부정적인 내용이 적혀있어 그렇구나 하고 그냥 껐다. 단지 지나치듯 한 말일뿐이었음에도 신경이 쓰였다. 그리고 난 늘 그렇듯 자질구레한 것들에도 신경을 기울이는 편이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넘기려 애썼다.


뭐든 조급해졌다. 급작스레 뭘 하려 했다. 뭐만 하면 당장 진행해야 했다. 누가 보면 흡사 뭐에 쫓기는 사람인 양 보이기도 했을 것이다. 속이 시끄러워서 그랬다. 핑계인가. 최근엔 이유가 있어도 이유를 명확히 말하지 않는다. 말하는 순간 책임이 잇따를까 그렇다. 더불어 오직 하나로 귀결되기에 구태여 솔직할 필요도 없다. 이것은 한 평생 짊어질 비밀이 될 거다. 영화 속에선 비밀 하나씩 품고 산다는 게 상당히 재밌어 보였지만 현실에선 달랐다. 대개 안 좋은 쪽의 비밀이어서 그런가. 오늘은 일본어 공부를 하다가 울었다.


[이래서 사람은 닮은 사람들끼리 만나야 돼.]

라는 말이 매우 슬퍼서 울었다. 꼭 이런 식으로 그려지는 선들이 내겐 가시덩굴 같다. 찔리면 아플 걸 알면서도 자처해 끌어안고 넘어보려 바보짓을 하고 그런다. 무엇에 잘 시들해지는 까닭은 내게 현재 강렬한 누군가를 뛰어넘을 만한 거리가 되지 못해서 아닐까.


*

안정적인 사랑하기, 목표를 달성한 줄 알았던 건 안일한 생각이었다. 아니 실은 아니란 걸 알면서도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고자 온갖 거짓부렁을 늘어놓은 걸 수도 있겠다. 알 사람들은 알 테지. 그렇지만 다들 모르는 척해 주기를 바란다. 배가 고팠다. 근데 밥은 말고 단것만 찾았다.


*

기억을 되감을 수 있는 카페로 가 망연히 앉았다가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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