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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또 Jun 19. 2023

부동의 1위

난 가끔 우리가 가깝다고 착각한다. 나름 친하지 않나? 사람은 닮은 사람끼리 만나야 한단 말에 왜 그토록 섭섭했을까? 눈물까지 퐁퐁 쏟아낼 정도로 모진 문장은 아니었는데. 괜히 욱하는 마음과 뒤바꿀 수 없는 현실에 나도 냉담해지려고 했다. 다만 결과는 늘 그렇듯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든 질척거려야 한 사람 인생에서 지워지지 않을 수 있을 테니. 죽어도 누군가에게 잊히기 싫어, 그게 캄캄해서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렸다. 매사 감정적인 내가 얼마나 지겨울까? 내가 생각해도 듣기 싫을 것 같다. 괴롭혔단 표현이 퍽 어울릴 테다. 나와 정반대로 이성적인 사람이었으니까. 한데 알려주고자 하는 점은 유독 그렇다는 거다. 원래 이렇게까지 심하게 감정적으로 굴지는 않는다. 내 방식대로 제어하고 생각할 줄 안다. 그런데 그게 불가능해지는 건 왜일까? 구제불능. 나도 억울하다.


[이제 친하게 지내지 말자요. 안부를 묻기에도 어색한 사이가 되자요.]

보내지도 못할 거 공연히 적어보는 글자.


난 나의 단점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합리화하려고만 했던 거 같다. 그래서 노상 같은 말을 반복하게 만들었고 쓴소리를 들을 경우 자존감만 낮췄다. 사실상 인정하고 고치려 하면 되는 거였는데 말이다. 달라질 수 있다. 눈물이 잘 없단 사람을 닮아 울지 않을 수 있고 본인 앞날을 본인이 결정하란 조언에 진득하게 골똘할 수 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 잇따라 선택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 한편으론 그 점이 두려워 계속 회피해왔던 건 아녔으려나? 할 수 있다. 그러나,


[남이 정해주는 건 졸업!]

이 메시지에 대고서 졸업하던 때가 그립다는, 다시금 과거에 매달리는 답장을 보내버렸다. 아차, 했다. 더 이상 과거에 얽매이지 않겠단 다짐은 이토록 쉽게 물거품이 되고야 만다.

[과거가 밥 먹여주지 않아. 앞을 봐.]

또 옳은 말. 칙칙한 어제 대신 다채로운 내일을 기대해야지.


상아와 난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에선 이미지를 잘못 잡았다고 했다. 그러니 다음 회사에 가서는 누구와 가까워지려 하지 말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타인을 신경 쓰지 않는 쪽을 택하자고 했다. 물론 그게 타고난 성격상 가능할지는 의문이다만 적어도 이곳보다는 낫지 않을까 싶다. 최대한 다수와 친해지려 노력했고 그로 인해 신경 써야 할 인원이 너무 많다. 주위에 10명이 있다고 치면 10명 다 신경 쓸 수밖에 없다. 작은 변화에도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일어나지 않은 변수를 미리 걱정하고 상대는 아무 생각 없이 툭 뱉었을 말에도 의미 부여해가며 한 달을 되짚어보았다. 상아는 앞에 놓인 컵과 남은 치즈케이크 조각을 예를 들어 설명했다.


“컵 안에 치즈케이크 가루를 넣고 물을 부어. 그럼 물이랑 같이 가루가 둥둥 뜬다? 그걸 막 숟가락으로 퍼내려고 해. 근데 컵 옆면에 달라붙고 아무리 퍼올려도 조금은 남아. 그래서 어떡하지? 하다가 그냥 물을 냅다 더 들이부어. 그러면 물이 넘치면서 그 가루도 따라 밖으로 흘러내릴 거 아니야? 난 뭔가 그런 거 같아. 고민하고 걱정이 가루야. 물은 행복이고. 아무리 내가 퍼올리려 고민하고 신경 쓰고 잊으려고 노력하고 암만 그래도 안돼. 그냥 그 시간에 차라리 행복할 궁리만 하고 친구를 만나든 뭘 하든 활동적이고 생산적인 걸 하고 그래봐. 그렇게 하면 자연스레 걱정, 고민도 별거 아닌 게 되고 잊혀 있을걸.”


일리 있군. 수긍했다. 날이 굉장히 더워졌다. 푹푹 찐다. 아스팔트 위로 열기가 장난 아니다. 그 와중에 카디건을 걸쳐 입으니 아라 씨는 몸이 좋지 않냐며 걱정스레 물어왔다. 딱히 그런 건 아녔다. 몰라. 난 반팔 입는 계절이 무진장 싫다. 긴팔만 고집하고 싶으나 땀은 땀대로 많아서 그럴 수가 없다. 인제 시간이 앞으로만 간다며 징징거리지 않기로 한다. 계절이 바뀌는 건 자연의 섭리이다. 물 흐르듯 잊히는 것들과 걸러지는 것들에 관련되어 아등바등하지 않아야 한다. 필히 그래야만 성장할 수 있다. 발목을 잡는 것들을 끊어내고 한 발 한 발 성큼 내딛자.


“좋아하는 걸 더 많이 만들어야겠어요.”

“그럼 좋죠. 화가 나도 아 내가 이것 때문에 참아야지, 하는 게 생기잖아요.”

좋아하는 것들을 늘려가야겠다. 좋아하는 음악, 좋아하는 책, 좋아하는 음식, 좋아하는 옷, 액세서리, 좋아하는 영화와 드라마, 만화, 좋아하는 연예인, 사람, 좋아하는 시간대, 장소, 공간, 계절, 이런 거? 이런 것들을 하나하나 기다리고 경험하면서 소소한 만족감을 채워가야겠다. 슬프고 우울한 감정 대신 좋은 설렘들로 바꿔가야지. 작은 것들이 모여 하나의 커다란 섬이 되듯이 자그마한 행복들을 모아 더 이상 텅 빈 껍데기가 아닌 속이 꽉 찬 알맹이로 거듭나며 내면의 풍요로움을 느껴야겠다.


아, 그러고 보니 우연히 접한 어떤 글에선 좋아하는 것들을 기다리느라 살아지기도 했다고 했다.


*

애인은 내가 너무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그래서 놓고 싶지 않은 거라 했다. 그러면서도 내가 본인을 놓치면 후회할 거란다. 하이구. 콧방귀를 뀌었다. 그런데 뭐 그럴 수도 있겠다. 워낙에 선한 사람이고 분명 나중에 본인이 뜻하는 바를 이룰 것 같아서.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만 내가 너에게 너무 못된 사람이다. 상처를 받아도 괜찮다며 상처받기를 자처하는 네 모습에서 나를 발견하여 매우 불쌍하고 미안해졌다. 연민일까?


애당초 문제가 있었다.

그걸 알면서도 기어코 행한 건, 음.


백날 천날 잔잔하고 한결같은 사람이 좋다, 그런 평안하고 담백한 연애를 하고 싶다, 노래를 부르면서도 정작 실제 상황에선 다름을 추구하는 모양이다. 행복할 수 있는 길을 굳이 굳이 안 가고 돌아간다. 미친. 연거푸 욕을 내쉬었다. 하나 마음 작용이라는 게 고민해서 뭐 한담, 싶어 메밀소바에 초밥이나 먹었다.


*

솔직히 난 상당히 다루기 쉬운 사람이다. 약간의 칭찬과 우쭈쭈만 있으면 충성을 다할 것이다. 백번 못해주는 사람일지라도 가끔 잘해주면 우왕! 기뻐 날뛴다. 그리고 이 점을 아주 잘 써먹는 사람이 존재한다. 부동의 1위.


[나도 내 대가리 한대 때리고 싶다.]

[미친 새끼 아니야? 진짜 좀 때려 씌앙. 죽어 그냥ㅋㅋㅋ]

어지간히 병신이다. 쩔쩔매며 고분고분 말 잘 들으려 한다. 비록 투덜거리기도 하지만. 사실상 내 세계의 권력을 잡은 유일한 한 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하여 별거 아닌 일에 미안하다고 연신 사과한다. 반응도 일일이 다시 확인하고 곱씹어 보기도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나와 놀아주지 않을까 봐 그렇다. 애써 쿨한 척, 의기양양한 척하다가도 금세 지질해지고 페트병 마냥 쪼그라든다. 게다가 덕분에 이외의 것들은 전부 내 관심사에서 제외되었다. 대차게 욕을 먹든 말든 평판이 좋든 안 좋든 전부 같잖다. 그까짓 힘듦? 몇 번 머리 싸매고 괴로워하다 보면 금방 괜찮다. 그러나 이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하면 난 삶 자체를 부정 받는 느낌을 받는다. 목적이 오직 한곳으로 쏠린다. 그러하며 단순 친밀감인 척한다.


진짜 프라이팬으로 머리를 한대 맞고 싶다. 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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