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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또 Jul 15. 2023

성장

그의 동공엔 내가 없었다. 그다지 내게 궁금한 면들도 없었을 것 같다. 난 자꾸 그에게 흔해빠진 인물이 되지 않기 위해 특이하려고 했다. 그러다 보니 대개 횡설수설, 장황해지고 이상한 쪽으로 흘러가곤 했다. 둘만의 시간을 가진 적은 몇 번 없다만 그러면서도 그 순간 난 이 시간이 평생 갈 거라 생각했다.


[잊는다며.]

[못 잊겠어ㅠ]

지체 없이 답장을 눌렀다. 액정을 두드리는 엄지손가락에 힘이 들어갔다. 작심삼일. 잊을 순 없다만, 그가 질려버렸단 말들도 다 홧김에 해버린 말이다만, 더 이상 먼저 연락을 하는 일은 자제하려고 한다. 내게 관심 없는 이한테 할 말도 없을뿐더러 난 그에게 조언이나 충고를 얻고자 하는 게 아닌 일상을 공유하고 싶은 것. 서로 목적이 달랐다. 게다가 그는 성가실 만도 할 테다. 이성적인 본인과 달리 한없이 감정에 시달리는 애송이 따위 귀찮고 지겨워질 구석이 다분하다.


그를 보지 못한 채 달력이 여러 번 넘어갔다. 이쯤 되면 식을 건더기가 되지 않느냐고, 그런 질문에 으레 고개를 젓곤 했다. 되레 깊어진다면 모를까 한사코 사라지지 않는 마음이다. 귀신 마냥 들러붙어있는 그의 생각을 떨쳐내고자 빈번히 노력했다. 근데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었다.


그를 좋아하고 나서부터는 온갖 미신들을 접하게 된다. 그중, 최근 알게 된 건 소원초라는 것이다. 담배를 새로 사고서 개봉하자마자 한 개비를 뒤집어 놓은 다음, 나머지를 다 피운 뒤 그걸 제일 마지막으로 피우면서 소원을 빌 경우 이루어진다는 얘기이다. 믿거나 말거나 일 테지만 솔깃했다. 자칫 조금만 더 넘어갔더라면 피우지도 않는 담배에 처음 손을 댈 뻔했다는 말이다.


*

이번 주는 회사만 갈 경우 통 입맛이 없어 점심을 거르는 날들이 있었다. 그로 인해 아라 씨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과자를 세 개나 책상 위에 올려두었고 경은 계장님은 이래서는 안된다며 육층 휴게실로 손목을 이끌고 가 본인이 시킨 쌀국수를 나눠주었다. 목이 메었다. 사람들은 내게 꼭 실연당한 얼굴 같다고 했다. 즉, 죽상이라고. 겸연쩍었다.


“너는 너무 얼굴에 다 드러나.”

“알아요. 제 단점이에요.”

감정이 낱낱이 얼굴에 드러나는 타입인지라 숨기지를 못해 미안할 지경이었다.


떠난 수진이 간절했다. 곳곳에 수진이 묻어있었다. 본래 혼자였더라면 이런 보고픔쯤은 감당하지 않아도 될 것이었으나 한때 여럿이었기에 빈자리마다 가슴에 구멍이 송송송 뚫렸다.


[주영이는 늘 두통약을 달고 살고 밥보다 디저트를 주로 먹으며 음료수는 원샷원킬, 감정이 얼굴에 다 드러남. 가장 행복하다가도 가장 어두워질 수 있는 애. 고마웠다, 이주영.]

수진은 아침 출근길마다 전화를 걸어왔다. 이직한 회사에 적응을 못하여 자꾸 체한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밥에 진심인 아이인데 고작 세입 먹고서 깨작거리다 만다고 했다. 행복하려고 이곳을 벗어난 녀석이다. 하나 그런 말을 하다니 속이 문드러졌다.


“아직 일주일이라 그래, 금방 완벽하게 적응해 있을걸.”

“그냥 느낌이란 게 있잖아. 여기선 적응 못할 거 같은 거.”

잔뜩 풀이 죽은 수진을 어르고 달랬다. 그래도 한 달은 있어보자. 한 달 후에는 뭐든 조금씩 변화가 있지 않을까? 통화를 종료하고서 한참을 상상했다. 만일 나도 다른 회사에 갈 경우? 해낼 수 있으려나. 일의 미숙한 부분이나 사람들과의 관계나 어느 것 하나 부실하고 싶진 않은데. 욕심이었다. 줄곧 듣는 단골 멘트도 있었다.


“잘하려고 하지 마. 주영인 너무 잘하려고 해서 그래.”

잘하고자 했다. 수고했다, 잘했네 등 달콤한 칭찬들이 나를 춤추게 해서. 다음 주 화요일에 면접이 잡혔다. 프랜차이즈점을 운영하는 회사의 디자인을 맡는 업무였다. 삼 년 만에 면접이라니 다소 떨림이 생겼다. 그러나 딱히 긴장은 되지 않았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어떻게든 될 테지. 연봉 협의가 잘 되고 사람 좋은 직장이라면 좋겠다.


지훈 과장님에게 헐레벌떡 이 사실을 알렸다. 우는 척을 하더라. 두 손을 눈가에 댄 과장님이 손을 내렸을 때 너무 뽀송해서 깜짝 놀랐다. 하품이라도 해서 눈물 좀 짜네 주지 그랬냐고 투덜거렸다.


점차 바뀌어가는 일상이 낯설다. 매일 마주치던 얼굴들이 하나둘씩 사라져간다. 대체 언제부터 변화란 내게 두려움이 되어버렸을까? 이러한 불안감에 압도당하려 할 시엔 잽싸게 그가 보내주었던 메시지들을 찬찬히 되뇌어본다.


[주영이는 성장 중.]

성장할 낌새가 있나? 날이 갈수록 더더욱 피로해지고는 있다. 무릇 그는 가장 큰 위안이자 절망임이 다름없구나. 불시에 깨닫는다. 멍해진다. 부쩍 심해진 어지럼증에 도로 약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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