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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또 Jul 29. 2023

암암리

암암리에 먹지 못할 아이스크림이 생겼고 편의점 앞 동일한 디자인의 테이블과 의자가 서글퍼졌다. 곱창집 근처는 얼씬도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카페 두 곳을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하기로 했다. 제일 아끼는 소품과 이모티콘 캐릭터를 정하게 되었다. 그릭 요거트는 아직도 시도를 못했다. 아마 평생 입에 대는 일은 없을 작정이다. 뭐든 간에 목매어서는 안 된단 일침을 듣는다. 쿨해야 한단 말이 꼭 내가 그에 관한 마음을 간파하고서 날리는 충고인 양 들려 싫어진다.


“너 정말 세세하게 적잖아. 당연 본인인 거 알겠다.”

“에이 어차피 내 글 읽을 시간 없는 사람이야. 나에게 관심도 쥐뿔 없을뿐더러 워낙에 바쁜 인간인지라.”

홧김에 담배를 구매했다가 버렸다. 비흡연자이기에 종류를 외우고 있을 리 없었다. 어떤 걸 원하냐는 아르바이트생의 천진한 얼굴에 냉큼 앞에 놓인 걸 가리켰더란다. 한 개비 입에 문 채 멍 때렸다. 멀찍이서 그가 잔소리를 늘여놓을 낌새가 보였다. 환영이고 환청이었다. 망가지는 건 네 선택이겠다만 난 이런 사람 싫어해. 어느덧 이명처럼 달고 산다. 불을 붙이지 않았다. 그대로 전부 구겨 쓰레기통에 버렸다.


나이가 든다는 게 두려워졌다. 내가 여기서 더 늙어간다면 그가 놀아주지 않을 거란 생각에 치우쳤다. 그는 한 평생 죽을 때까지 그렇게 화려하고 멋있을 듯했다. 반면 난 뭐가 되어야만 할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여 비틀거렸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그한테 지금보다 더 따분한 인물이 되어 조만간 잊힐 걸 예감했기 때문이었다. 감정놀음이 한계에 다다랐다. 지겹고 지쳤다.


아무 데나 쭈구려앉아 햇볕에 그을려 약간 까무잡잡해진 피부를 응시한다. 땀방울이 콧등을 타고서 미끄러졌다. 청춘은 푸를 청자에 봄 춘자를 쓴다고 한다. 만물이 푸른 봄철이란 의미를 품고 있다고. 봄날이 간다. 장마가 끝이 났단 소식을 접해들었다. 본격 여름이다.


*

온몸의 땀샘이 열린 듯 땀이 흘러내린다. 흥건해진 옷가지들을 세탁기에 넣어두고서 샤워를 하러 들어간다. 물을 틀어놓은 채 한동안 침잠한다. 한결 느슨해진 표정은 어쩐지 감정을 읽을 수 없다. 눈 밑이 한껏 더 거뭇해졌다. 죽상이란 걱정에 변명하지 않았다. 현재 제일 즐거워할 사람은 나여야 한다고 했다. 회사에선 뭐라 하는 상사도 사람도 없을뿐더러 더군다나 업무적인 면에서도 어려움이 없으니 말이다.


“근데 제가 여기에 있는 게 맞는 건지 모르겠어요.”

“틀릴 건 없지 않니?”

“것도 그렇네요.”

“심플하게 생각하면 해결된단다. 어렵게 가면 끝도 없어.”

주변의 모래를 끌어와 가운데에 깃발을 꽂았는데 바람이 불면 쓰러지고 파도가 오면 쓸려가기 일쑤였다. 주관이 없어서가 맞다. 더 좋은 커리어를 쌓아야 한단 관심사는 이쪽이 아녔다. 분야가 달랐나. 억지로 머리를 굴리고 방향을 정하려 하니 피곤함은 세배 이상 쌓였다. 그가 너도 스물 후반이니까 앞가림을 해야 한다 했었지.


발전이 없다. 한숨은 줄었다. 덩달아 웃음도 줄었다. 그렇다고 우는 건 아니다. 보고 싶어도 죽기 일보 직전은 아니었다. 사람을 모으는 힘이 있다는 얘기가 진짜 믿을만한 구석이려나. 제법 자주 듣는 소리에 고부라져 있었다. 힘을 얻고 싶었다. 위로 같은 건 필요하지 않았다. 위로가 필요한 상황과도 별개였으나 누구는 자꾸 동정했다. 그런 걸 원하는 게 아니라니까요. 퉁명스러워졌다.


“특히 조심해야 할 사람 있어?”

“글쎄. 콕 집어 나쁜 사람은 없지만 너무 가까이 지내는 건 좋지 않은 거 같아. 그럴수록 눈치 볼 일들만 늘어난 거 같더라고. 물론 친해져서 좋지만 적당한 거리를 두는 편이 나았을 것 같단 얘기야.”

다닥다닥 붙어있을 경우 움직이기 불편하잖아. 이 날씨에 달라붙으면 덥고. 온도도 선선해야 다가갈 맛이 나지. 달궈지면 더워. 죽음이야. 고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서 넘지 않는 쪽이 괜찮을 수도. 누군가를 궁금해하지 않고 누가 나를 궁금해하지 않는 현재가 만족스러웠다. 손잡아 도움이 되어줄 작정이 아닐 경우 관심을 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만의 울타리가 생겼다. 상당히 높고 단단하게 가꿔갈 심산이다. 아무나 있는데 아무도 없다. 웬만한 건 나쁘지 않다. 기존에 알던 사람 말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횟수가 증가했다. 합정에 도착했다.


*

5년을 알고 지냈으나 직접 대면한 적은 없던 서진님과 마침내 마주했다. 우리는 SNS로 알게 된 사이였다. 내가 첫 책을 냈던 시절. 서진님이 열심히 홍보해 준 결과 당시 팔로워 수가 대폭 늘고 나의 글과 그림을 찾아주는 이들이 늘었더란다.


초면이지만 내적 친밀감은 5년 치인 서진님은 무척이나 편안했다. 하얗고 작고 예쁘장한 사람이었다. 더불어 오밀조밀하고 귀여웠다. 간간이 안부를 묻던 자상함은 실제 더했다. 게다가 자신이 가진 아이디어를 현실화 시키고 있는 똑똑한 사람이었다. 본인의 아이디어를 주제로 한 대화를 나눌 때 그녀의 맑은 눈동자가 반짝반짝했다. 이 사람은 진정 그 일을 사랑하고 있구나, 와닿았다.


서진님은 두 가지를 얘기할 시 꼭 검지와 중지를 펼쳐 표현했다. 그러고는 작고 가느다란 손가락을 동시에 접었다 폈다, 까딱거렸다. 그 모양새가 흡사 토끼 귀 같았다. 무진장 깜찍한 나머지 푸하하, 박장대소했다. 연신 귀엽다고 주접을 떨었다. 그녀는 부끄러워했다. 발그레해진 두 볼이 그녀의 하얀 피부를 물들였다. 놀리는 맛이 있었다.


어쩌면 우린 우리가 비슷한 구석이 있는 사람이란 걸 진작 알아보았는지도 모르겠다. 어느새 본인이 가진 불안 증세와 현재의 자신이 되기까지 벌어졌던 사건들을 스스럼없이 토로했다. 무한한 공감을 보냈다. 신기하게 겹치는 사건도 존재했다.


서진님은 A부터 Z에 이르도록 이야기했다고 했다. 서서히 우리가 만남을 지속적으로 이어가며 친분을 쌓았으면 한다. 두터워지고팠다. 그리고 훗날 내가 서진님과 멀어질 계기가 발생하지 않았으면 한다. 미리 이런 것부터 걱정한다. 우리 오래 봐요. 사람과 가까워지려 하지 않는다는 그녀의 마음을 열고 싶었다. 똑똑. 열쇠가 있으려나?


햄버거를 먹었고 봉골레 파스타가 얹어진 접시는 비워졌다. 우리는 입을 모아 말했다.


“다들 우리가 여리다고만 해요. 이별에 왜 그렇게 힘들어하냐며 이상하다고 하죠. 하지만 그들은 우리가 되어본 적 없어 모르는 거야.”

서로가 서로를 속이고 미워하기 바쁜 이 지구상에, 오늘 나와 닮은 사람이 있단 발견만으로도 굉장한 위안이 되어 다가왔다.


어두웠던 세계에 등불이 탁, 켜졌다.

지하철을 탔다. 인천으로 돌아가는 길.


[언니 벌써 그리움요.]

빠른 시일 내에 그녀를 다시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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