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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또 Aug 10. 2023

막차

내내 고민하고 망설이다가 겨우겨우 용기 내 말을 붙였다. 할 말이 있다고 잠깐 시간이 되냐는 물음이었다. 이 한마디 하기 전까지 무진장 긴장되어 금방이라도 토를 할 것 같았다. 그간 내 불안이었다. 상대는 무안할 정도로 단칼에 거절했다. 바빠서 여유가 없단 얘기였으나 사실상 변명거리에 불과하단 걸 알았다. 자리에 스르륵 도로 앉았다. 기운이 빠졌다. 머리가 띵했다.


우리는 가까웠다가 멀어졌다. 함께 집을 간 적이 여러 번이었고 밥을 먹은 횟수만 해도 수차례였다. 고민을 공유하기도 했고 격려를 하기도 했다. 웃기도 했고 울기도 했다. 한데 무엇이 그 사람의 마음에서 날 완전히 닫아버렸을까. 눈앞이 캄캄해졌다. 빈번히 흐릿해지는 시야를 가까스로 바로잡았다. 꾸역꾸역 제 할 일을 이어서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커다란 짐을 들고서 정류장에 섰다. 눈물이 후드득 떨어져 부끄러웠다. 그런데 때마침 난데없는 빗방울이 쏟아지더라. 조금씩도 아녔다. 땅을 죄다 푹 적실 지경이었다. 심지어 무지무지 굵은 빗방울이었다. 맞으면 구멍 뚫리겠네. 실없는 농담 섞인 소리를 하며 훌쩍였다. 기대를 해서 안 되는 거라고 했다. 나랑 대화를 해줄 거란 기대를 했기에 이처럼 실망감도 있는 거라고 했다. 맞다.


내가 무얼 잘못했을까? 섭섭하게 했을까? 벌써 고민을 한지는 한 달가량 되었으나 답이 나오지 않았다. 이토록 한마디 언질도 없이 멀어질 이유라면 꽤나 커다란 잘못 아니었을까. 우리는 얄팍했나. 어떠한 까닭이든 간에 설명해 준다면 난 무조건적으로 고치려들 텐데. 내 성격상 상대에게 먼저 말을 꺼낸 것이 얼마나 용기 있는 행위였는지 상대도 알 거다. 게다가 내가 쩔쩔매고 있을 거란 사실마저 모를 리 만무하다.


이러한 것들에 마음이 자주 쪼개지는 날이면 세상이 이대로 멸망해버렸으면 좋겠다고 읊조렸다. 생일이 왜 하필 오늘일까. 생일이 아니었으면 좋겠으나 생일이다. 불평하였다. 점심을 굶고서 옥상으로 올라갔다. 화단을 밟으며 걸었다. 뚜벅뚜벅. 운동화 밑창에서 일정한 소리가 났다. 눈이 아리며 귀가 먹먹할 수준으로 두통이 몰려왔다. 버릇처럼 달아나고팠다. 용기를 낼수록 망가졌다. 오늘은 세 번째 용기를 낸 날이었다. 나는 죄인이 되었다. 작아지고 작아져 이내 곧 공중으로 분해될 것 같았다.


*

일본인 니카이도 리나는 두 달 전 우리 회사에 온 주재원이다. 한국말이 나보다 능통하다. 리나와는 급속도로 친해졌다. 난 리나가 타지에 와 외롭지는 않을지 간간이 그녀를 살피고 안부를 물었다. 그러다 리나가 비상구 계단에서 마주쳤을 때 답답하다는 듯 외쳤다.


“우리 언제 반말할 거야!”

순간 웃음이 빵 터졌다. 나는 지금 당장부터 그러자고 하고 그 계기로 인해 부쩍 가까워졌다. 리나는 맑고 깨끗한 사람다웠다. 뒤편에 딴 맘을 품고 있지 않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나중엔 그녀와 그녀의 가족들을 보러 일본에 가기로 했다. 이런 말을 해주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른다.


어제는 나도 힘들었고 리나도 힘들었다. 처음으로 함께 퇴근을 같이 했다. 리나는 눈물을 흘렸다. 난 그런 그녀를 보며 내가 더 감싸줘야겠단 결의를 다졌다. 다만 내가 그녀의 회사 적응기에 걸림돌이 되진 않을까 염려되었다. 생일에 마주한 리나는 내게 작은 편지를 쥐여주었다. 그녀만큼이나 새하얀 봉투와 편지지. 맨 마지막 줄에 쓰인 문장을 한참이나 부여잡았다.


[いつもありがとう!これからもだいすきだよ]

해석하자면, 항상 고마워! 앞으로도 좋아해.


나도 좋아해. 너와의 우정이 영원할 거라 믿고 싶어.


*

“우리가 필요 없다고 느꼈어. 항상 언니는 우리한테 무엇을 하자, 어디 가자, 뭐 먹자, 한 적이 없었으니까. 우리가 먼저 약속을 잡아야 놀았으니까. 그리고 본인이 손해 볼만한 얘기는 하지를 않잖아.”

어안이 벙벙했다. 애당초 필요 없는 관계라 했더라면 이다지도 불안에 떨지 않았을 터이다. 하나 제대로 말한 적 없으니 오해를 살만하기도 했다. 난 늘 모든 관계에 있어 이런 편이었다. 나서서 무언가를 제안하지 않았다. 그저 누가 어디를 가자면 군말 없이 가고 무엇을 하자 하면 또 군말 없이 했다. 그게 편한 것보다는 내가 무언가를 하자 했을 시 상대가 꺼려 할까 봐 하는 우려에서였다.


본인이 손해 볼 법한 얘기도 하지 않는 게 아녔다. 손해,라고 하기에는 난 나 아닌 다른 누가 엮인 얘기라 하면은 조심스러워 섣불리 꺼내지 않는 쪽이었던 거다. 과거에 어떠한 사건을 통해 난 다소 방어적인 태세를 취하기 일쑤였다. 은근 마음을 다 여는 데 오래 걸렸고 그런 나를 알아채는 사람은 몇 없었다.


만일 이 아이가 정녕 필요 없었다면 난 관계를 회복하고자 고뇌하지도 용기를 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왜냐 굳이 그런 일에 시간과 감정 소모를 들이고 싶지 않았을 테니까. 하나 이 아이는 내게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고 내게 아주아주 중요한 존재였다.


이 아이의 이름이 다신 내 글에 등장하지 않게 될 수도 있겠단 생각에 속이 타들어갔다. 이름을 적는다는 건 그 사람과 오래 보고프단 의미를 품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무나 함부로 적거나 채워 넣기 형식으로 적는 게 결코 아녔다. 자고로 글은 평생 남는다. 즉 평생을 기억하고 기록하겠다. 우리가 평생 과거에만 머물러 있게 될듯하여 애달파졌다. 늦었단 대답에 머리 위론 세계가 붕괴되고 온갖 것들이 죄다 와르르 쏟아져내렸다.


이미 지나버린 시간과 마음은 되돌아오지 않았다. 막차를 놓친 상태로 한참을 정체되어 있었다. 미안했다.


진심이 형태가 될 수 있다면 꺼내어 보여주고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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