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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또 Aug 11. 2023

퇴사를 말한다

전기 자전거를 타고서 지하철을 향해 달렸다. 거듭 길을 잘못 들어 애를 먹었다. 당최 옳은 길을 찾아갈 수 없을 것만 같은 기분에 사로잡혀 진땀을 뺐다. 달리는 차에 그대로 몸을 내던지고픈 충동을 느꼈다. 이러한 위험천만한 심정은 오랜만이었기에 이럴수록 더욱더 정신을 꽉 부여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하철에 올라서도 몇 번을 잘못 내렸다. 계속해서 더 가거나 덜 가서 몸을 내렸다. 이래서는 약속 장소에 가긴커녕 집으로 돌아가는 길마저도 잃어버릴듯하여 캄캄해졌다. 정신 상태가 억수로 나빠지고 있음을 실감했다.


겨우 도착한 장소엔 이미 훨씬 늦어버린 시간으로 인하여 친구들이 먼저 기다리고 있었다. 준비된 음식 앞에 허둥거리며 짐을 내려놓았다. 다들 괜찮다며 날 다독였다. 후쿠오카에 다녀온 상아는 내게 갖갖이 과자를 담은 봉지를 쥐여주었다. 우와, 짧은 감탄과 함께 가방에 넣었다.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입으로 들어가는 건가 코로 들어가는 건가. 알 턱이 없는 다소 늦은 감이 있는 저녁이었다. 끼니를 자주 걸렀다.


사람이 무서워졌다. 담배를 처음 입에 물어보았다. 캑캑거리며 연기를 토해냈다. 머리가 띵했다. 술을 진탕 마시고 취하고픈데 그래서는 안되는 거였다. 이대로 나빠질 기미는 무궁무진했다. 반대로 좋아질 낌새는 전혀 없었다. 퇴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나름 삼 년 동안 회사 생활을 열심히 했다고 자부했다만 끝은 이토록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후였다. 마음이 거덜 나고 정신은 쇠약해졌으며 삶이 더러워졌다.


담배 냄새를 빼고서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죽은 사람과 다름없는 표정이 눈치 보였다. 슬리퍼로 인해 발등이 까져 피가 났음에도 개의치 않았다. 사람이 사람을 버릴 거란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었어야 했다. 간과했다. 좋아서 그랬다. 내가 벌여놓은 일의 형편이 이랬다. 만일 작년 겨울 무렵부터 쓴 글을 엮어 책을 낸다면 마지막엔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았다, 란 문장으로 끝맺음을 하고팠으나 죄다 망했다. 조금 쉬고 싶었다.


생일 선물이 쌓였다. 택배 박스 그대로 두었더니 엄마가 꺼내어 정리해 주었다. 멍했다. 월요일엔 부장님께 곧장 말씀드릴 작정이다. 하루빨리 퇴사를 하겠습니다. 연습 겸 되뇌었다. 여행을 갈까? 돌아오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없나.


면접을 합격했음에도 아마 가지 않을 심산이었다. 난 어느덧 미운 사람. 자초지종 설명할 여력도 없었다. 벽에 이마를 기대었다. 원만한 관계들조차 불안해졌다. 인스타그램을 내리다 발견한 あたたかいかなしみ。따뜻한 슬픔이란다. 따뜻한 슬픔이란 게 있나. 슬픔이 따뜻할 수가 있나.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

휴식이 필요했다. 냉장고를 열어 탄산수를 꺼내 마셨다. 오늘 연차를 낸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반차랑 고민했는데 갔으면 큰일 날 뻔했다. 월요일에 해야 할 말을 정리했다. 몸이 좋지 않아서 그만둬야겠습니다. 남은 연차를 모두 소진하여 1~2주 정도만 출근하도록 하겠습니다. 괜찮은가. 퇴사는 처음인지라. 협의가 될지 모르겠다. 팀에 나만 남은 상황인지라 어려울 수도 있겠다.


한데 도무지 출근을 할 처지가 되지를 않았다. 콧구멍과 입을 손바닥으로 빈틈없이 꽉 막고 있는 듯했다. 질식할 것 같은 지경에 이르렀다. 다들 안 보고 싶었다. 왜 그리 많은 사람들과 친해지려 노력했나, 후회스럽다. 나는 앞으로 인간을 믿지 않을 것이다. 하나 이런 말을 뱉고도 한 세 달쯤 흐르고 나면 망각한 채 도로 헤실거리고 있을지 모르겠다.


[주영인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내가 사랑과 나란할 자격이 없었다.


“제가 떠날까 봐 불안하죠.”

“네. 근데 떠나도 원망 안 해요.”

“안 떠난다니까요. 가스라이팅 금지.”

최근 친해진 작가님이 날 안심시키고자 했다. 이 사람과는 하루에 다섯 시간 이상 통화를 주고받았다. 일적인 얘기도 했고 사적인 얘기도 했다. 대화 주제는 다양했다. 이 사람이 어느새 일상이었다. 그런 사람이 사라져 상실감을 느끼는 것을 방지하고자 어떻게든 마음을 반만 주고 떠날 상황을 미리 짐작해 보기로 했다.


이 사람은 나에게 많은 것을 주는 참이다. 나의 세계를 넓히는 데에 일조할 사람임을 의심치 않았다. 다만 내가 이 사람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지 감이 잡히지를 않는다. 내가 줄 게 없어진다면야 이 사람도 별안간 지칠 테다. 난 지금 이 사람이 없어서는 안 된다. 이 사람이 없었더라면, 을 상상하는 행위조차 두렵다. 실컷 망가진 내가 유일하게 쉴 수 있는 안식처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다. 이렇게 인간에게 상처받아 너덜너덜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 의존하고 있단 게 혼란스러웠다. 한기가 일었다.


*

시간이 해결해 줄 거다.

지나고 보면, 한낱 해프닝 불과해질 거다.

정리를 하고 미련 없이 가자. 나아가야지.


난생처음 퇴사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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