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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또 Aug 14. 2023

퇴사를 말했다

어쩌면 난 사람을 외롭게 만드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무한한 애정을 줄 수 있는 듯 굴면서도 막상 다가가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서 항상 한발 뒤로 빠져있는 사람이었던 거 같다. 난 잡으려 할 경우 미꾸라지처럼 몸을 비틀어 잽싸게 도망쳤다.


이미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봐온 몇몇 외엔 너무 깊어지지 않는 새로운 관계를 거듭 추구한 적도 허다했다. 그래서 늘 주변엔 사람이 붐볐으나 얼마 못가 내가 지쳤다. 한 사람에게 집중하지 못하고 여럿한테 마음을 쪼개어 조금씩 나누었다. 갈증 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그중 내게 유달리 노력해 주는 사람에게만 마음을 차츰 열었다. 언제나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본인이 다가가기만 했단 생각은 큰 오만이었음을 이번 사건을 계기로 깨달았다. 하물며 빈번히 들었던 칭찬도 그렇다. 사람을 모으는 힘이 있단 말은 따지고 보니 내가 모은 것이 아닌 그들이 모여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알 수 없는 사람이란 말도 종종 들었던 것 같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는 사람인지 어떤 걸 좋아하고 어떤 감정을 품고 있는 사람인지. 죄다 일부러 작정하고서 그런 건 아녔다. 스스로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으므로 그런 말을 들을 시엔 되려 어리둥절했다.


나는 무엇인가. 아마 베일을 한 겹 깔고 살게 된 건 스물 초반 쌓이게 된 경험을 기반으로 비롯되었을 테다. 두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날 깨닫는 일이 이토록 괴로움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간 회피해 왔던 것이 아닐까. 상당히 부족한 인간이었다. 부끄러워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다. 후회로 푹 젖어있었다.


“나도 외롭게 만들 거예요?”

확신을 줄 수 없었다.


*

퇴사를 말했다. 돌아온 대답은 대체 인력을 뽑기 전까지 있어야 한단 거였다. 최대 한 달. 갑갑했다. 앞에 놓인 아메리카노를 연신 들이키며 마른 목을 축였다. 당장이라도 나가고팠다. 한 달이란 시간을 어떻게 버텨야 하나. 고역이었다. 부장님은 망고주스가 떫다고 여러 번 반복하셨다. 제 입안도 그렇습니다. 냅다 죽상을 지었다.


부장님은 너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더는 아프지 않을 거라 하셨다. 것도 맞는 말이다만 지금 건강상 문제라는 건 약간의 거짓말인지라 양심이 콕콕 찔렸다. 그리고 그걸 알아보신 부장님께선 계속해서 옳은 말씀만 하셨다. 아. 먼 산을 응시했다. 첫 퇴사를 경험하게 되는 거였다. 이러한 점을 빠삭하게 인지하지 못해 예상과 틀어졌다.


난 그냥 나만 남은 우리 팀이 사라질 줄 알았지. 영원히 과거 속으로. 팀원이 있을 때 찍었던 폴라로이드 사진을 떼어 가방 안에 넣었다. 연차도 많이 남았다. 그걸 이래저래 알맞게 사용해야겠다. 여러모로 착잡해지는 심정을 가리는 법을 몰라 이마를 짚었다.


*

“불안한 게 정상인 거야.”

“에 진짜요?”

“나이를 먹으면 주변이 안정화되고 안정감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지? 아니거든. 20대엔 20대에 맞는 고민이 있고 30대엔 30대에 맞는, 40대, 50대도 똑같아. 다만 그 과정을 겪으면서도 자신을 알고 자신만의 주관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건 중요하지. 난 그래서 요새 나에게 가장 집중하고 있어.”

교수님을 만나 뵈었다.

“그리고 일어날 일들은 일어나게 되어있어. 지나갈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오히려 그게 터닝포인트가 될 수도 있는 노릇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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