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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또 Aug 20. 2023

버리지 않던 것들

담배를 대여섯 개비 정도 피워봤으나 별다른 증상은 딱히 없었다. 직접 구매한 건 아녔다. 주변 흡연자들을 쫄래쫄래 따라다니며 그들이 입에 물 때 하나 얻어 불을 붙여보았던 것이다. 그냥 입에 물고 불을 붙임과 동시에 흡입하란 설명을 곧잘 따라 했다. 코로 연기를 뱉을 경우 머리가 아플 수도 있다 하여 입으로 내쉬었다.


그러다 어느새 여섯 번째에는 코로 내쉬고 있어 친구 중 한 명이 깜짝 놀라기도 했다. 담뱃재를 터는 법도 몰라 담배를 꺼버리는 실수까지 벌였다. 이건 알려주는 대로 하려 해도 잘 되지를 않아 여러 번 진땀을 뺐다. 다시 또 누군가의 뒤를 따라나서려는 날 제지하며 영은이가 말했다.


“야 네가 사서 제대로 피울 거 아니면 시작하지 마. 골초 될 거 아니라면 하지 말란 얘기야.”

도로 자리에 엉덩이를 붙였다. 제 발로 편의점에 가 담배 주세요, 한마디 하지 못한 채 돌아올 길이 눈에 훤히 보였다. 늘 이런 레퍼토리였다. 제대로 하라 하면 덜컥 겁부터 나서 어떻게 그만둬야 할지 궁리했다. 회피 성향이 무척이나 강했다. 그래서 사람들과의 관계도 사랑의 타이밍에도 일에 관련되어서도 주춤거리고 막 피어오를 조짐이 보일 시 뒤돌아 냅다 뛰었다.


잡으려 하면 더 멀리 달아나고 달아나면 다가가는 청개구리 같은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그런 연유로 인하여 건강한 관계는 성인이 된 이후로 꾸준히 이어질 수가 없었다. 어쩌면 이와 동일한 심보로 짝사랑만 그리 오래도록 끌어왔는지도 모르겠다.


*

버리지 못하던 것들을 버렸다. 다 쓴 바이레도 핸드크림을 서랍 속 깊이 처박아두었었는데 목요일엔 주저 없이 꺼내어 쓰레기통에 넣었다. 두 팔이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톰과 제리의 주인공 톰의 열쇠고리도 냉큼 던져 넣었다. 아울러 모니터에 덕지덕지 붙여져있던 포스트잇도 매한가지였다. 버리지 않던 것들이 성가셨다. 버리지 못했다,라고 말하기에도 우스운 것들이란 걸 깨달았다.


퇴사 일자는 한 달 뒤로 잡혔다. 사직서도 별거 아니더라. 간단히 입사 일자와 퇴사 일자를 적고 사유에 개인 사유라고 적으면 완성이었다. 원망할 점들은 없었다. 모두 자신의 업보라 생각하며 이곳에서 벌어진 전부를 잊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럼에도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친절하려 했던 건 진심인지라 씁쓸해졌다. 물론 이게 화근이었을 수도 있겠다만.


더 이상 보고픈 얼굴들이 하루 종일 시야를 가리지도 않고 그림자처럼 따라붙지도 않는다.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감정은 오로지 불안만 날뛰고 있었다. 다소 피곤해 보이는 행색과 나날이 불편해지는 건강으로 인해 살이 조금 빠졌을 뿐이었다. 어떻게 살아야지, 가 아닌 어떻게든 살아야지,로 봉착했다.


반성을 하고 또 하고 또 하다 보니 훌쩍 날이 저물어 있었다. 매일이 반성과 불안으로 뒤덮였다. 술도 제법 이젠 몸에 받는 느낌이다. 다만 이마저 늘려간다 하면은 완전히 망가진 나를 목격하게 될까 피해야 하는 쪽이 옳았다.


*

뿔테안경 너머로 보이는 눈매가 선했다. 아니 선했나. 열망이 가득해 보이기도 했다. 경계하는 눈초리로 마주 보았다. 안경이 퍽 잘 어울렸다. 갈증이 계속되었다. 남색 반팔 셔츠. 더위는 한풀 꺾였다.


“원래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은 내가 가진 방패를 내려놓는 것이기 때문에, 사소한 거에도 상처받고 그러는 거예요.”

손바닥 안이 갈라졌다. 가을이 오려는 징조였다. 생일 선물로 받은 핸드크림을 개봉해야겠다.


*

배는 자꾸 고팠고 체중은 4킬로그램 정도 감량되었다. 암만 음식물을 섭취한다 한들 허기진 마음을 채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의심을 버리지 못했다. 달아난 본인은 아직도 감감무소식이었다. 사실상 자아를 잃어버린 일은 한참 되었다. 하지만 그동안 회피하려고만 했다. 왜냐 마주하려 할 시엔 반드시 고통이 잇따를 테니까.


“본인이 하고 싶은 게 뭔지. 그것을 통해 이루고픈 바가 무엇인지. 내가 지금 무엇 때문에 상처받았고 부족한 면은 무엇이었는지. 어떻게 치유해나아가야 할지. 고민하고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야 하는데 도망가기만 하잖아요.”

고통을 피하려고만 했다. 난 단 한 발자국도 행복과 가까워지려 노력하지 않았다. 그럴 수 없다고 단정 지었기 때문이었다. 희망이 소망이 되는 일은 한 끗 차이었다.


누군가는 이미 나를 다 아는 듯 굴었고 그러도록 자처한 건 나였으나 이제 와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무도 모르는 내가 되었어야 했다. 때로는 나에 대한 정보가 누군가한테 무기가 되기도 했다. 극소수의 인원도 언제 남이 될지 알 턱이 없었다.


지난 몇 년을 궁금했던 그가 왜 매번 자신에 관해 궁금해하지 말라 하였는가,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더는 궁금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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