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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또 Sep 14. 2023

무한한 애틋함

퇴사를 하기 전 인수인계를 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얼른 날 대체할 인력이 나타나기를 고대했다. 왜냐하면 내가 나간 뒤 새로운 사람이 입사할 시 당혹스러울듯해서였다. 본인을 제대로 인수인계해 줄 사람이 0명이니 당연히 적응을 하기에 어려울 거란 판단이 섰다. 그리하여 어서 새로운 사람이 와 내 손으로 직접 인수인계를 하고 작은 것이라도 더 알려주고 가고 싶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나의 퇴사를 일주일 정도 앞두고서 입사 결정이 지어졌다.


그분은 나보다 세 살 어린 사람이었다. 같은 여성이었고 어쩌다 보니 같은 대학을 나온 사람이란 사실을 후에 알게 되었다. 전공한 과는 달랐으나 어찌 되었든 간에 한 층을 두고 같은 건물을 사용했더란다. 물론 내가 졸업을 한 후였다. 마주칠 일은 없었다. 그 사람은 강단 있어 보였다. 겪어본 시간이 얼마 되지는 않았다만 아무래도 인수인계를 하느라 대화를 많이 하고 함께 붙어있다 보니 자연스레 정이 들기도 했다.


처음엔 내가 너무 허둥거렸다. 인생 첫 퇴사인 만큼 인수인계조차 처음이어서 어색했다. 인수인계서는 진작에 완성해놓았는데 이걸 말로 전하자니 진땀을 뺐다. 첫날 인수인계를 마치고서 전화를 걸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녔음을 토로했을 적에는 돌아오는 대답에 힘을 얻곤 했다.


“그래도 누군가에게 본인이 알고 있는 걸 알려줌으로써 내가 얼마나 알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거예요.”

내가 이걸 이 정도 알고 있었구나. 새삼스레 깨달아지기도 했다. 생각보다 알고 있는 내용들이 많았다. 삼 년이란 세월이 헛되지는 않았던 거 같다. 다른 회사에 가서는 내가 쌓아온 역량을 어떤 식으로 활용하고 능수능란해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그래도 결코 무용하진 않을듯하다. 새로운 사람은 혼자 남겨지는 거에 약간의 걱정을 내비쳤다. 그럴 때마다 난 안심 시키고자 언제든 연락하란 말을 했다.


“모르는 게 생기거나 궁금한 게 생기면 아무 때나 카카오톡 보내요. 전화를 해도 되고. 대신 저 백수라 아홉 시엔 자고 있을 수도 있으니 이후에 해요. 진짜로.”

하나 별 걱정은 없었다. 난 이 사람이 잘 해낼 거라 믿음이 있었다. 이 역시 복이 아닐까, 읊조렸다. 안도하고 나갈 수 있다는 건 일종의 행운임이 틀림없었다.


*

“넌 어땠니, 이 회사 다니면서?”

부장님과 마지막 회식을 하고서 돌아가는 길. 퇴사를 이틀 앞둔 시점에서 깨달은 바가 있다면 그래도 지겨운 이 회사 안에서 참 많은 배움과 얻음이 있었다.


난생처음 직장이란 곳에 입사하여 꽤 많은 사람들 사이 사회생활을 해봤고 실무적으로 필요한 업무를 익히고 나름대로의 역량을 키웠다. 당시에는 의미 없다 생각했던 발표 자료마저 되돌아보니 나쁠 거 하나 없었다.


일본계 기업 특성상 한국과는 낯선 문화 차이도 접할 수 있었던 거 같다. 다양한 카테고리를 소유한 회사에서 무궁무진한 디자인을 해볼 수 있었으며 커가는 과정에서 숱한 사람들과 가까워도 보았고 멀어져도 보았다.


지금 와 나의 어린 마음과 미성숙함, 어른스럽지 못한 장면들을 반성한다.


*

미련은 없었다. 짐을 챙겨 집으로 가져왔다. 삼 년은 무엇이었나. 의외로 짐이 없어 민망할 지경이었다. 버릴 걸 쓰레기통에 넣었다. 한 달이란 시간을 전과 후로 나눠 분별해 보자면 미련과 후회 가득함과 남김 없음으로 결론 내릴 수 있겠다. 헛헛해진 마음이야 별 수 없겠다만 되돌아갈 수 없어 목매지 않기로 했다.


미운 건 없었다. 부족했던 나만이 날 들여다보게 했다. 잊지 않아야지. 잊지 않아야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는 거였다. 다소 간결하게 마무리되는 기간들이 허무하긴 하다. 그럼에도 괜찮아, 고갯짓을 했다.


때마침 시청하던 하트시그널 4에서는 후신이 사람들에게 왜 꽃을 보면 예쁘다는 생각이 드는 걸까, 식의 질문을 한다. 그리고 뒤를 이어 지민이 지니까, 란 답을 내놓는다. 삶도 그렇다. 지나갈 걸 알아서 치열하고 열정을 다 쏟아부을 때도 있으며 불안감에 휩싸일 때도 있는 법이다.


우리는 다 피고 진다. 피는 시기도 저마다 다 다르고 지는 시기 또한 마찬가지이다. 하나 모두의 삶이 결국에는 아름답고 황홀했으며 찬란했다는 문장으로 귀결되기를 바란다. 화려하진 않았어도 하루를 허투루 거를 날은 없었다.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던 일상들과 오래도록 온 힘을 다해 사랑했던 모든 것들에게 무한한 애틋함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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