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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또 Sep 08. 2023

네 사랑이 무겁게 느껴지는 날에는

모처럼 가로로 기다랗게 누워 쓸모없는 상념을 떨쳐내지 못한 채 고요히 침잠하는 중이었다. 볕이 유독 따가웠다. 가을바람이 불어와 코끝을 간지럽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서 햇빛은 기승을 부린다. 온몸에서 올해 여름보다 더 많은 양의 땀을 분비하고 있다. 입고 있는 하얀색 반팔 티셔츠가 온통 땀에 젖어 축축해졌다. 피부와 달라붙어 여간 찝찝한 게 아녔다. 얼른 샤워를 하고서 개운함을 만끽하고 싶었다.


누군가 불쑥 떠오르는 찰나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좋아한단 노래를 들었다. 당사자는 그 노래를 듣고서 어떤 이를 떠올렸을 거라 짐작할 수 없었다. 하나 난 영락없이 당신을 주인공 삼아 감정이입을 자처했다. 잘 지내자, 란 말에 오늘부터 잘 지낼 수 있을 거라 자신 있게 대답할 순 없었다. 족히 다섯 가지는 되어 보이는 약들을 앞에 놓고서 물컵에 물을 따랐다. 달콤한 자상함에 취해 주변 상황을 눈 가리고 아웅하고 싶었다. 묵직해진 어깨를 투닥투닥 두드렸다. 이미 지난 얘기이다.

네 사랑이 무겁게 느껴지는 날에는 난 네 맘 한번 들여다본 적 없는 척 한사코 시치미를 뚝 떼고서 달아날 궁리를 한다. 이를 여러 번 말로 내뱉기도 하고 심각해지기도 했으나 정작 실천에 옮기진 못했다. 모르는 사이 너마저 내게 가벼운 인간은 아닌듯했다. 그래서 더 날카로워졌다. 가까워지려 할수록 낱낱이 파고들어야 했다. 실컷 곤두세워진 신경을 잠재워 무신경해지려 했다. 그럴수록 삐뚤어진 나의 태도와 말투는 네게 거듭 상처를 남겼을 거라 헤아려졌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네가 나를 너무너무 싫어하게 될 상황을 맞이하게 될까 봐 두려웠다. 한데 또 한편으론 네가 날 너무너무 좋아하게 될까 봐 무서워지기도 했다. 이토록 모순적일 수가 있으려나. 근래에 난 나의 모순적인 태도를 끊임없이 되짚어보고 되새겨가며 반성을 하는 참이었다. 생각해 보면 난 얽매이지 않았던 거 같다. 깊어지면 도망가는 축이라 머물러있는 건 과거임에도 좀처럼 진득한 관계를 맺지 않았다. 무거워질 경우 잇따라 자리 잡는 책임감이란 걸 감당할 자신이 부족했던 것도 같다.

네가 예,를 말할 때엔 아니요,로 답했고 아니요,를 꺼냈을 시엔 예,를 외쳤다. 다녀오란 네 말에 선뜻 알겠다고 하지 못했다. 그 말의 무게를 알았다. 다녀오다, 다녀와, 다녀올게, 안에 기어들어가 눈을 빼꼼 내밀고 있는 기대감과 기다림을 알았다. 다녀와,라고 하면 누군가를 기다리겠단 얘기이고 다녀올게,라고 하면 누군가에게 기다림을 쥐여주는 짓이라 여겼다. 누군가를 오래 생각하는 일이 불편했다.


퇴사 일에 가까워졌다. 벌써 다음 주 수요일이 마지막 출근 날이다. 어제 짐을 챙겨 집으로 가져왔다. 버릴 건 버렸다. 휴지통에 채워져가는 것들을 응시하며 왠지 모를 씁쓸함을 느꼈다. 모든 건 끝이 났다. 길다고 할 수도 있고 짧다고 할 수도 있는 3년 3개월이란 시간이 허무하게 마무리되었다. 미운 게 없었다. 모자란 나만 남았다. 고쳐야지. 잊지 않아야지. 잊지 않아야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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