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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또 Sep 19. 2023

너는 내가 동경하는 것들의 원본

끊임없이 발전하는 널 보며 항상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넌 지칠 줄도 몰랐다. 졸린 눈 비비면서도 제 할 일을 했다. 꾸벅 졸고 마는 건 네게 방해 거리도 아녔을 테다. 난 노상 물러서기 일쑤였다. 틈만 나면 밀려오는 불안감에 못 이겨 뛰쳐나가고 잘못 없는 일에도 고개 숙여 반성하고 뒷걸음질 치기 참 잘했다.


요컨대 난 널 동경했던 것도 같다. 본인의 멋짐을 알고 응용해 먹는 네 태도가 구태여 설명할 것 없이 부러웠다. 그래서 난 네 옆에 서서 널 빼닮으려 노력했다. 네가 하는 말투와 몸짓, 습관, 취향까지 눈여겨보았다. 가령 원본이 너라면 난 복사본. 진짜를 엇비슷하게 흉내 낸 짝퉁쯤 되려 했던 거 같다. 네 수고를 전혀 알지도 못하면서 왈가왈부하는 것들이 전부 망해버렸으면 했다. 그런 애들에게 보는 눈 없이 자상한 네 무지함이 석연찮았다.

나의 불행은 일종의 단편집일 줄 알았으나 기나긴 장편소설로 이어졌다. 슬프기 싫어도 내내 슬플듯하여 이번 생은 이렇게 슬프다가 죽겠구나, 체념했다. 더 이상 네가 나한테 힘이 되지 않을 때. 사랑에 눈멀었던 자가 사랑을 무력하다 결론짓게 되었을 때. 비로소 우리가 끝이 나는 거라 확신했다. 그날이 오게 될 거란 예상을 오래도록 곱씹으며 나름대로의 대비책을 세웠다.


자고로 난 네가 강해져 내 것 같지 않을 경우 내 것 같기도 했다. 이토록 쉽게 정의 내릴 수 없는 점들 천지이다. 이 와중에 너마저 그러면 안 되었다. 그럼에도 성실히 사랑한단 건 무얼까. 밤잠 설쳐가며 고뇌했다.


사람들은 네모난 엘리베이터 내부에서 본능적으로 꼭짓점을 찾아 선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을 시 안정감을 느끼기 때문이란다. 한데 난 달랐다. 내가 서야 할 곳이 있다면 너의 옆에 두 발바닥을 붙이고 싶었고 최대한 밀착되어 옴짝달싹 못하는 처지에 놓이고 싶었다. 네가 나의 안정이었다. 그 누가 탐내어도 내 온정은 네 한정이었다. 다만 넌 한 번도 바란 적이 없었다는 게 이따금 마음을 아프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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