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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또 Sep 20. 2023

안녕하는 것들

안녕을 말한다. 내가 꿈꿔왔던 회사 생활과 어느 정도 일치하는 삼 년을 보냈는가 되돌아본다. 계속해서 뒤를 보게 되는 까닭은 아쉬움이 남았기 때문이었나. 삼 년을 한 공간에 있었음에도 짐이 별로 없었다. 마트에서 받아온 커다란 쇼핑백 안에 물건을 차곡차곡 순서대로 쌓아 넣고서 일순간 멍 때리기를 늘어진 테이프처럼 반복했다.


회사 앞 친해진 빽다방 카페 사장님과 매니저님께 인사를 드리고 빵집 사장님, 이마트 24 편의점 사장님께도 안녕을 말씀드렸다. 빵집 사장님께서는 챙겨 먹으라며 바질 페스토 샌드위치와 햄과 치즈가 돌돌 말린 빵을 선물로 주셨다. 편의점 사장님께는 내가 미친 듯이 사 먹기 시작한 이클립스 한 통을 받았다.


다신 돌아올 리 없는 자리에 앉아 하나씩 정리된 책상 위를 가만히 응시했다. 내일이면 다 까먹을 것 같다. 그렇게나 지겨웠으나 난 뭐든 중요한 걸 잘 잊어버리는 인간이니까. 이 역시 몇 달이 뭐겠는가. 바로 내일만 해도 출근하지 않는 삶에 녹아들어 감상에 빠지지 않을 거였다. 인수인계는 순조롭게 마무리되었다. 새로 오신 분의 적응력과 똑똑함 덕분이었다. 쇼룸을 정리하며 중얼거렸다.


“왠지 동생 두고서 멀리 떠나는 기분이네요.”

“어떻게 보면 맞는 말이잖아요.”

서로 마주 본 채 작게 웃었다. 어깨동무로 쏙 들어올 법한 어깨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한동안은 이직 생각을 하지 않을 계획이다. 올해도 얼마 안 남았다. 구월은 반도 남지 않았고 시월, 십일월, 십이월 하면 올해도 종료된다. 다시금 사람들이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카운트다운을 외치고 두 손 모아 제 소원을 빌고 있을 모습들이 벌써부터 눈에 훤히 그려진다.


*

십이월엔 진즉에 비행기 표를 구매해두었던 채원과의 일본 오사카 여행이 있다. 그래. 그것까지 다녀온 뒤 취업을 준비하자. 그런데 도로 취업 세상에 뛰어든다는 게 내키지 않았다. 남들 하는 거 다 해야지. 너네 집이 부자가 아닌 이상 일을 해야 하지 않겠니. 등의 음성이 왕왕 울렸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은 왜 천지에 널려있는가. 조금 더 그럴싸한 형태와 성격, 조건 등을 가지고 태어났거나 내가 스스로를 바꿨더라면 현재의 내가 좀 달랐을까.


로또 한 장을 손에 쥐고서 요행을 바라던 때가 떠오른다. 줄곧 복권가게 앞을 서성인 적도 없었으면서 엄마의 부탁에 한 장 사며 내 것도 한 두어 장 구매했었더란다. 물론 그 결과는 꽝과 오천 원 당첨으로 나뉘었다만. 어릴 적 난 평생 요행을 원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절대로 노력 없이 돈만 좇는 삶을 살진 않을 거라 어떠한 고집 같은 걸 갖고 있었다.


하지만 살아보니 달랐다. 암만 노력해도 되지 않는 것들을 맛보았고 허무와 절망은 기본 바탕이었다. 낙담하다가 말았다. 잠자코 따져보자면 그다지 운이 나쁜 인생을 살아온 건 아녔으나 여하간 그랬다. 본인이 자처하여 착실히 망해가고 있었을 수도 있겠다.


한 달 전에 올렸던 퇴직서에 마지막 최종 결재자인 사장님의 승인이 불과 이틀 전에서야 떨어졌다. 사무실 내 사람들과 인사를 했다. 눈물이 날 것 같았음에도 울진 않았다. 기어코 참아냈다. 건강 유념하란 말과 그동안 고생했단 말이 오고 갔다. 감사했습니다. 어지간히 시원섭섭한 게 아녔다. 쉼표라고 여기기로 했다. 기계도 고장 날 경우 고쳐가는 시간이 필요하듯 마음도 매한가지라고. 이상 더 했어야 한 건 없었다.


*

온갖 긍정적인 감정들은 늘 금방 눈 녹듯 사라졌으나 슬픔과 우울은 악착같이 따라붙어 허구한 날 눈물을 대롱 매달도록 했었다.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보았을 시 달라진 점이 있다면 부정적인 감정들에도 어느 정도 감정 조절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연연하지 않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원하던 바였다.


근데 왜 이리 헛헛한지 모르겠다.

본인을 더욱 철저히 외면하게 되었나.


이만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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