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또 Nov 02. 2023

사랑은 정이고 행복은 만족이라면 어떻게 생각해

조촐한 반찬과 함께 혼자 밥을 먹고 드라마 한 편을 보며 빈둥거리다가 이불을 걷고 일어난 느지막한 점심. 카페에 갈 채비를 마친다. 날씨가 제법 쌀쌀해졌다. 완연한 가을이다. 당신이 살고 있는 그곳에도 가을이 왔는지 궁금해진다. 주머니 속 넣은 지갑이 무겁다. 걸을 때마다 주머니가 아래로 처진다. ‘가을 탄다’란 말이 있다. 가을엔 유독 더 슬퍼지고 울적해지며 나뒹구는 낙엽만 보아도 눈물이 글썽여진다. 호르몬 변화와 혈관 수축 등 다양한 이유가 있다고들 하던데. 모르겠다. 난 그냥 슬프고 마땅히 핑계 댈 법한 가을을 걷는 중인지라 어물쩍 넘길 수 있어 다행이다.


한 오 년 전쯤이었던가? 출간을 하던 시기. 예뻐했던 후배가 해준 말이 생생하다. “사랑은 원래 정이었대요. 행복은 만족이었고요.” 요새 들어 이 말이 자주 떠오른다. 강의실 맨 뒷자리에 앉아 쫑알거리던 녀석의 입모양이 눈에 훤하다. 사랑은 원래 정이고 행복은 만족이라면 내가 친근하고 마음이 기울었던 모든 것들을 사랑했다고 자신해도 될까. 하물며 정이라 정의할지 사랑이라 정의해야 할지 헷갈렸던 순간들이 분명 존재한다. 어떻게 보면 그때마다 고민할 필요 없었을 수도 있겠다. 정이 곧 사랑 아녔을까?


근데 난 사랑이 좀 더 무겁게 느껴진다. 정은 조금만 같이 있어도 쉽게 들고 단기간에 마주한 사이일지언정 우리 오래 본 것 같은 기분에 혹해 두터워질 순 있는데 사랑은 뭐랄까. ‘안되겠는’ 것들이 늘어간다. 예컨대 이 사람 아니면 안 되겠고 지금 보러 가지 않으면 안 되겠고 고백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찰나들이 차곡차곡 쌓여간다. ‘안 되겠는’ 찰나들 앞에 한 사람이란 주어가 붙어 사랑을 정의한다.


그리고 때론 사랑이 끝나 정이란 관계로 남기도 한다. 오래 마음에 품고 있었을수록 길어진다. 이제 얘 아녀도 될 듯한데 쉽사리 단절되지는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냥 잘 지냈으면 좋겠고 안부가 궁금해지며 간혹 시큰 따끔한 추억이지만 또다시 지극해질 기미는 없는. 이러한 경우에도 난 여전히 사랑이라 칭할지 정이라 단언할지 아리송했다. 어떠한 것들은 끝이 난 후에도 계속된다. 가령 과몰입해서 본 드라마와 매주를 기다리며 본 예능 프로그램이 끝이 날 때 이어지는 여운과 비슷하다 할 수도 있겠다. 매우 아프고 난 후의 후유증이라든가. 환상통이라든가.


그렇다면 행복은 왜 만족이었을까? 행복이란 생활 속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이란다. 행복이 무어냐 물으면 항상 입을 꾹 닫았다. 어떨 때 행복하냔 질문에 맞물린 입술을 열 수가 없었다. 행복을 잘 몰랐다. 이 점은 아마 내가 나라는 인물에 관해 무지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섣불리 나에 대해 알아가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까닭은 무심코 겨우 외면한 상처를 발견하게 될까 봐,이다. “어떤 음식을 제일 좋아해요?” 간단한 질문조차 머리를 한참 굴려야 했다.


그래서 난 날 행복하게 하는 법을 몰랐다. 어떠한 기쁨을 맞닥뜨렸을 시에도 이를 어떻게 행복감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애를 먹었다. 행복은 내게 두려움이기도 했다. 행복할 경우 조만간 불행이 찾아올듯하여 불행해졌다. 행복은 아주 잠깐의 폭죽과도 같고 쉬이 꺼져 공허만을 남기게 된다. 그렇기에 불안했다. 행복이 달아날 게 미리 걱정되어 행복을 멀리했다. 행복하려 들 때면 모른 체 눈 가리고 아웅했다. 불행과 더 친했다. 우울 속 행복 찾기가 아닌 행복 속 우울 찾기란 친구의 문장을 오래도록 골몰한다.


쓸모없는 상념을 이만 접고서 만족감을 찾고자 주변을 둘러본다. 내가 나만의 불행에 빠져 애꿎은 것들에게 불행을 전염시키진 않았는지 되돌아본다. 소소한 만족을 채워 행복을 조금씩 느끼는 연습을 해보자. 본인의 불행은 어쩌면 본인이 행복할 수 없단 강박 안에서 일어나는 걸 수도 있을 테다. 그걸 깨부숴야만 행복을 맞이할 수 있다. 벽 뒤에 숨어 달아나는 게 아닌 정면으로 돌파해야만 어떠한 것들은 비로소 대면할 수 있는 법이다.


되짚고 보니 행복이라 생각하여 거창했다. 행복을 만족으로 바꾸고 보니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닌 것도 같다. 대단하고 거창하고 특별할 필요 없이 작고 귀여운 만족감들을 모아본다. 언젠가 내가 행복을 두려움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만족을 기억하여 채워나간다. 그것들로 나를 기록한다. 오늘은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떨었다. 스타벅스에서 판매하는 하트 파이가 무척이나 맛있었다. 하트 파이와 라테의 조합이 만족스러웠다. 버스를 몇 분 기다리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타이밍이 맞아 바로 탈 수 있어서 대만족이었다. 오랜만에 본 동생의 얼굴이 좋아 보여 만족할 수 있었다.


가을이 마냥 슬프지만은 않도록 잘 즐기다가 보내주려 한다. 사실상 사계절을 전부 타는 것 같다만 계절의 변화를 세심하게 느낄 수 있는 거라 치겠다. 우리의 계절을 만끽하며 나뭇잎 따라 달라지는 마음의 상태를 보듬어주고 신경을 기울여주자. 몸도 마음도 포동포동 살이 찐다. 하늘이 높고 푸르다. 고개를 들어 바라봐줘야 할 때이다.

작가의 이전글 나와 부대끼며 살아간다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