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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또 Nov 06. 2023

우리가 살아온 삶은 너무도 달라서 아팠다

바람 소리가 엄청나다. 집안에 있음에도 강도를 짐작할 수 있을 정도이다. 이토록 성큼 추워진 날씨에 넌 후드티 한 장을 달랑 입고서 건대에 갔다. 오늘 하루 종일 네 기분이 어땠을지 지레 짐작해 본다. 우리는 비교 가능한 세상을 살고 있다. 네가 살아온 인생과 내가 살아온 인생을 비교하며 우리는 달라서, 다르기 때문에 더는 안 될 거란 결말을 써내려다가 말았다. 이유는 즉 내가 너를 얼마만큼 사랑하게 되었는지에 관하여 깨닫게 된 데에 있다.


만약 너와 헤어져도 잘 살 수 있을 거라 자부했던 스스로가 거만했다. 너를 잃는다면 너를 만나기 전의 나로 돌아갈 것이다. 매일을 불안에 떨며 살던 나로 돌아간다는 의미이다. 친구들은 내가 널 만나 불안이 한결 덜해진 것 같다며 안도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로 그 말에 전적인 동의를 했다. 널 만나 많이 변했다. 아니 솔직히 내가 변한 것보다는 널 만나고 있어 지탱하고 있다. 난 그대로이나 네가 날 받치고 있는 덕에 남들이 보기엔 내가 가까스로 똑바로 서는 데에 성공한 것이라 착각하는 거다. 난 너의 그런 수고스러움을 안다. 그렇기에 네가 빠져나간 세상이 어느 정도 흔들리게 될지 가늠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어제는 너로 인해 울었다. 엊그제도 너로 인하여 한바탕했다. 눈물범벅된 얼굴을 거칠게 소매로 닦아내고 있노라면 네가 그렇게나 미울 수가 없었다. 사랑만으론 안되는 벽을 다시금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내가 사는 악몽에 네가 등장하였다. 내가 너를 끌어들인 것 같았다. 날 만나지 않았더라면 넌 미움받을 일도 없었을 거였다. 우리는 정반대의 성격이었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반대의 성격과 정반대의 삶을 살아왔단 점에서는 확연한 차이가 돋보인다.


난 우리가 살아온 삶이 서로를 부둥켜안을 수 없으리란 절망감에 빠졌다. 네게 실망하고 나에게 실망하며 결국엔 우리 둘에게 실망하였다. 너와 함께인 내가 이상하고 낯설어 관계를 끊어내고팠다. 이상을 건너가기엔 무리라는 판단이 섰다. 서로가 상처가 된다. 상처를 주기 위해 시작한 사랑은 아니었는데. 적당히 하고 싶냔 네 말에 흔들린 것도 같다. 적당히 사랑하고 적당히 만나다가 헤어지면 우린 적당한 추억을 갖고 마무리될 수 있을 테지.


되려 그게 우리가 사는 세상에 있어 좋은 영향력을 끼칠 수도 있다. 스물 후반이 되어서야 겨우겨우 맞이하게 된 제대로, 란 연애에서 널 만나 뭐든 처음 겪어보고 그를 바탕으로 다음 사람을 만나 다른 사랑을 좀 더 유연하게 할 수도 있는 거였다. 적당히라면 그럴 수 있다. 아무렇지 않은 사람이 되어 아무렇잖을 수 있다. 한데 적당히를 넘어섰구나를 인지하며 얘기가 달라진다. 당장 헤어진다면 도무지 멀쩡할 수 없는 노릇이란 얘기이다. 그간 네가 만난 사람들을 그려냈다. 그리지 않으려 해도 너의 말과 행동에서 그들과의 사랑을 찾아낼 수 있었고 상상할 수 있었다.


우리는 왜 다른 삶을 살아온 걸까? 원래 우리는 달랐단 너의 말이 꽤나 후벼팠다. 비교를 하기 시작하는 찰나부터 불행해지기 시작하는 것일 텐데 난 이미 그러고 있었고 울고 있었다. 오만가지 상상력을 불러일으켰다. 역시나 날 가장 불행하게 만드는 건 내 잘난 상상력일 수도 있겠다. 우리가 우리가 아닌 너와 나로, 각자로 분리된다면 어떨까? 다시는 볼 수 없는 사이가 되면 어떨까? 서로가 없던 시절로 돌아간다면 어떨까? 우연히 같은 공간에서 마주치면 겸연쩍은 미소를 건넬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눈을 감는다.


오늘 사는 세상이 너무 시리다. 아직은 너와 남이 될 준비가 되지 않았음을 느낀다. 네게 전화를 건다. 들려오는 작은 웃음소리에 나마저도 볼링핀처럼 와르르 무너져내리고 만다. 우리의 다른 삶을 잘 반죽하여 비슷하게 닮아가고자 한다. 양보를 하며 나눠 갖는다. 부딪혀도 피하거나 굴속으로 숨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게 오래오래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허황된 꿈이라면 꿈이겠다만 계속해서 눈을 감겠다. 우리가 우리가 아닐 거란 잠시만으로도 이토록 서글플 수가 있다니. 때가 아니다. 이별할 수 없다. 서툰 포옹에 다쳐도 네가 성장해가는 모습을 옆에서 바라볼 수 있는 날이 이어지기를 바라겠다.


다시는 날 슬프게 만들지 말아 달라고.

네게 풀썩 안겨 투정 부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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