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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또 Nov 13. 2023

네가 사랑한 것들을 사랑하는 마음

네가 사랑했던 것들이 질투가 난다. 과거의 너를 일찍 만났더라면 내가 너의 곳곳에 더 많은 흔적을 남길 수 있었으려나, 아쉬워진다. 네 지난 사랑은 이미 저물었단 걸 안다. 하지만 그럼에도 뾰로통해지는 마음은 어쩔 수 없는 노릇인지라 투덜거린다.


과거 인연을 거쳐 지금의 네가 완성되었다. 그들의 취향이 네게 묻어있다. 물론 이제 나로 덕지덕지 도배 되겠다만 괜스레 어려지는 거다. 너의 모습에서 예전 네 사람의 모습을 어림 짐작할 때면 세모난 눈을 뜨고서 의심을 한다. 귀엽게 토라진다며 볼을 잡아오는 너의 손길이 나쁘진 않다.


너는 나를 만나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한다. 입지 않던 스타일의 옷을 구매하고 하지 않던 커플 앱을 사용하기도 하며 선호하지 않던 음악을 듣기도 한다. 남들이 고치라 하여도 고집을 부리던 습관들을 버리고 상대의 바람을 귀담아듣는다. 삶의 태도에 반영한다. 쓰지 않던 편지를 쓰고 서툴게 선물을 준비한다.


나 또한 영락없다. 너는 내가 무언가를 행할 힘을 준다. 너와 함께라면 모든 일들이 술술 풀릴 것 같단 자신감에 빠지기도 한다. 화해를 배운다. 본래 같음 다툼을 회피하기 일쑤인 내가 너와 의견을 조율하고 소통하며 서운한 부분을 말로 설명하는 연습을 하고 사랑에 있어 갖춰야 할 예의 같은 걸 알아간다.


그간 나의 사랑은 외로웠고 고독했다. 알아주지 않는 대상의 묵묵부답은 날 절망으로 끌고 갔다. 솔직히 난 평생 쌍방인 사랑은 할 수 없으리라 단언했다. 널 만나기 이전까지는 말이다. 한데 널 만나고는 얘기가 달라진다.


넌 네가 잘 하는 것들을 알고 있다. 그림을 잘 그리고 글을 잘 쓰며 본인 음색에 맞는 노래를 부를 줄 안다. 누차 말해오는 것은 넌 사람이 말하도록 하는 능력이 있다는 거다. 그렇다면 난 너에게 어떠한 내면을 꺼내놓았는가?


사람을 경계하는 나다. 사람이 가장 미워지던 시기에 널 만나 의지한다. 우리가 우리가 되어버린 시간이 흘러간다. 하루를 더하고 하루를 더해간다. 함께한 날들이 켜켜이 쌓인다. 나는 너의 능력 말마따나 앞으로 너에게 묵힌 나의 이야기들을 꺼내놓게 될지 두려워진다.


지나간 너의 사랑이 지금의 너를 말해주듯 지나온 나의 날들이 날 말해줄듯하다. 네가 나를 다 알게 되는 날이 올까 봐, 그 시기를 늦추려는 면도 없잖아 있다. 여전히 난 한 사람에 관한 이야기들이 어떠한 누군가에겐 무기가 될 수 있단 현실이 무섭다.


그래서 그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마음에 지진이 일어나는 건 속수무책이다. 어느 날은 네게 날 알려줘도 될 것 같고 어느 날은 네가 날 알지 않았으면 좋겠다. 갈팡질팡하느라 하루가 피로하다. 이러하면서 네 과거 사랑들을 질투할 자격이 되는 걸까?


내가 가진 능력이라고는 네가 말하도록 하는 사람들 반대로, 그런 능력을 가진 네가 말을 하도록 하는 거다. 네가 사랑한 것들을 사랑하고 싶다. 단순히 열불이 난다며 입술을 댓 발 내미는 게 아닌 온전히 네 인생 통째로 사랑하려 한다.


기온이 뚝 떨어졌다. 하나둘 패딩을 입는다. 올겨울. 열이 많은 네가 추위에 식는 일이 없기를 바라며 버스에 오른다. 사람은 왔다 간다. 결코 가볍지 않다. 너도 다름없었을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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