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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또 Dec 15. 2023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없다만 울음을 참을 필요는 없다

당장 상황을 해결해 줄 순 없는 노릇이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서히 조금씩 나아질 거란 얘기를 해주고 싶다. 겪지 않아도 될 법한 일들이 기어이 네 앞에 펼쳐져 널 밤새 잠 못 이루게 만들고 새벽을 헤엄치도록 할 테지만 필히 조만간 지금 일어난 떠들썩한 일들이 한낱 안줏거리에 불과해질 거라 쓸어넘겨주고 싶다.


나날이 묵직해지는 네 마음의 무게. 너를 대신하여 짊어지고픈 심정인 걸 넌 알아주려나. 네 가슴팍에 새겨졌을 생채기들이 너무도 선명하다. 너를 아프게 하는 인물들은 단 한 명으로도 과한데 그들은 셀 수 없을 지경으로 늘어난다.


어떤 이는 그러더라. 너무 좋은 사람들만 만날 시 성장할 수 없다고. 데어도 봐야 한다고. 난 그 말에 반대한다. 소중한 네가. 내가 손 뻗어 닿아도 아까운 만큼 ‘감히’란 말이 절로 나오도록 하는 네가. 늘 좋은 사람들 주변에 둘러싸여 좋은 말만 듣고 좋은 것만 보고 느끼기를 바란다.


운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그렇다고 해서 울음을 잃어버릴 필요는 더더욱 없다. 넌 오늘도 헤실헤실 웃는다. 난 그 얼굴에서 그늘을 읽어 내렸을 경우 덩달아 까무룩 잠이 든다. 달리 무언가를 줄 수 없는 본인의 무력함을 깨닫는다. 만일 원하는 일정 기간의 기억을 지울 수 있는 약이 있다면 너와 나눠 먹고 싶다. 그리고 우리 다시는 아프지 않은 삶을 살아가자고 당부하는 거다.


오늘 나는 재취업을 위해 면접을 보았다. 벌써 퇴사를 한지 삼 개월쯤 되었다. 올해까지만 쉬어가겠다고 약속을 했던 터라 더는 질질 끌 수 없었다. 물론 돈이 바닥나는 이유도 한몫했다. 면접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이번 주 내로 결과를 알려준다고는 했는데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반응은 나쁘지 않았으나 도통 감이 오지를 않는다.


면접장을 빠져나오는 순간 문득 네 생각이 났다. 주저리주저리 떠들고픈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나 넌 매우 멀리 있고 제 일상을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까닭에 그럴 수 없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최근 들어 도로 난장판이 되어 몸에 이상 증세가 나타났다. 약국에서 약을 다섯 가지는 사서 가방에 욱여넣었다.


혼자 있고자 해도 혼자 있지 않았다. 혼자 있으면 잠식되는 건 순식간일 것이다. 솔직히 환기가 시급했다. 눈물 훔칠 곳이 마땅하지 않았다. 삼 개월을 쉬었음에도 쉰 것 같지가 않았다. 도망치고 달아나다가 막판에 와서야 돌부리에 걸려져 넘어진듯했다.


차라리 네가 아닌 아예 모르는 이와 마주 앉아 고민을 털어놓고도 싶었다. 우린 서로 너무 많은 걸 알고 있고 내가 네게 숨기는 게 없단 건 당연하다만 그래도 한편으로는 날 아주 모르고 알 리 없는 낯선 이와 가끔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 싶다. 그러며 위로를 건네진 않는 거다. 걱정을 하지도 않는 거다. 단지 들어주고 마는 거다. 내일이면 잊는 거다. 그렇게 하는 거다. 모르는 사람이니 각자의 인생이다. 술 한잔 섞여있으면 슬픔의 농도가 짙어질 것도 같다.


사람이 슬픔에 극에 달할 경우 어떨까. 나를 예로 들자면 한 날은 시한부 판정을 받은 것 마냥 손까지 덜덜 떨어가며 펑펑 울었고 다음날부터는 감정을 잃은 사람처럼 동태 눈깔이 되어 살았었다. 머릿속엔 재만 남은듯했다. 홀라당 다 타버리고 공허해졌다. 정처 없이 거리를 떠돌았다.


나는 평생 이대로 일어설 수 없을 거라 단언했었다. 하지만 차츰 시간이 지나고 완전한 회복은 불가능하다만 어느 정도 숨을 쉴 수 있는 상태에 오르게 되었다. 딱히 경험해 보지 않아도 되었을 법한 일들이었으나 그게 분명 날 성장시키는 했을 거다. 이게 좋은 영향이라고는 결코 못하겠다.


누구는 성숙해질수록 순수와는 거리가 멀어진다고 한다. 실제로 네이버에 성숙과 순수를 검색할 경우 많은 이들이 ‘성숙하면서 순수할 수도 있는 건가요?’ 질문한다. 스크롤을 눌러 읽어 내리던 중 유독 눈길이 오래 머물렀던 답변이 있었다. [순수하다는 것은 때묻지 않았다는 말이고 성숙하다는 것은 많이 성장했다는 뜻인데 때묻지 않게 성장을 하였다면 순수하면서도 성숙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아직 성숙의 단계를 오르진 못했다만 점차 순수를 잃어가는 것 같다. 맨발로 들어선 곳이 진흙탕이었다. 남을 탓하진 않는다. 어찌 보면 자처한 걸 수도 있겠단 생각을 종종 한다.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에선 백이진이 나희도에게 ‘난 맨날 잃은 것에 대해서만 생각해. 근데 넌 얻을 것에 대해서 생각하더라. 나도 이제 그렇게 해 보고 싶어.’란 대사를 했다. 대입해 보면 너도 마찬가지이다. 넌 얻을 걸 먼저 떠올려 행복 회로를 굴렸다.


반면 난 행운이 와도 불행을 먼저 짐작하느라 즐길 수 없었다. 그래서 행복할 줄을 몰랐다. 복에 겨운 소리도 자주 했다. 한때는 널 보며 행복을 연습해 볼까, 했다. 한데 그런 네가 울상이다. 행복을 배울 길을 잃는다. 또또 잃은 것 타령이다. 이러니 네가 행복해야 한다. 오죽하면 네 슬픔을 알아채지 못하고 싶단 못된 생각까지 한다. 팔베개를 하여 너를 재우고 싶다. 악몽은 잊힐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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