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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또 Jan 02. 2024

새로 맞이 한 해에도 우리는 우리를 발음한다

새로운 해가 밝았다. [새해 복 많이 받아] 저마다 꾹꾹 눌러쓴 마음을 전송한다. 가나다순으로 나열되어 있는 사람들 사이로 몇 명을 택한다. 그 안엔 줄곧 연락을 해오던 인물 혹은 자연스레 연락이 끊긴 이들이 섞여있다. 분명 오랜만에 안부를 묻고픈 마음에 누른 이름도 존재할 터였다. 작년과 올해의 시작, 주고받는 이름이 다르다. 몇 명은 여전히 고정이었고 몇 명은 새로 추가되었고, 몇 명은 제외되었다. 사람과 사람 관계란 이토록 예측 불가이다. 평생 가자, 했던 관계도 오늘날 새해 메시지 한 줄 보내지 못할 정도로 멀어져 있다. 아쉽거나 슬프지 않다. 한 편의 씁쓸함은 이따금씩이다.


작년의 나는 뒤를 향해 달리느라 온 힘을 다 썼다. 시간이 흐르는 게 두려웠다. 나이를 먹게 될 경우 이제 너와는 놀지 않을 거란 누군가의 농담에 나이란 것이 그런 건가? 한참을 얽매었다. 더불어 늙어갈 나의 모습이 짐작되지 않아 무서웠고, 주변의 나잇값 타령이라든가, 그 나이에 걸맞은 인물이 되어 있지 않을까 막막했다. 또한 내가 상상한 조건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되려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인간이 되려나, 도달해 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자꾸만 과거에 살았다. 제일 첫 번째 까닭은 그랬다. 두 번째로는 기억해 줬으면 하는, 혹은 기억하고자 하는 날로부터 멀어져 희미해질까 봐 그랬다. 달력이 넘어가는 것을 손톱 깨물며 지켜보았다. 하나, 이젠 그렇지 않다. 오히려 시간의 흐름에 나를 맡긴다. 만남과 헤어짐에 연연하지 않고 누군가에게 대단하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아울러 무언가를 기억하고자 안간힘을 쓰지 않는다. 경직된 인간은 위태롭다. 내내 불안에 살았던 해를 그만 고이 접어 침대 밑에 숨겨둔다. 다신 꺼내보지 않을 작정이다만, 지난날을 아로새겨 반성할 점은 반성하겠다.


점점 난 어릴 적 동경하며 품어왔던 모습과는 정반대로 간다. 무언가를 잃어가며 얻기도 한다. 얻지 못할 걸 걱정하느라 뒷걸음질 치고 버려야 함이 확연함에도 손에 꼭 쥔 채 놓지 못했던 것들. 체념하는 법을 배운 것도 같다. 현실과 타협을 시도하긴 하나, 매번 굴복하는 쪽에 가깝다. 그래도 다르다, 할 점은 일어선다는 거다. 주저앉아 울기만 했던 골방 안에서 나와 걷는다. 우선순위가 정리된다. 이전에 중요했던 점들이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영원한 감동이 없듯. 지인은 이런 말을 했다. 영원한 건 없다만 평생은 있을 수 있다고. 난 아직 그 말 뜻을 헤아리지 못했다.


어제와 다른 오늘. 오늘과 다른 내일. 똑같은 상황. 변치 않는 주변 환경 속. 틀을 깨야 정체되어 있지 않을 터이다. 옛 적엔 낭만이라고 하면, 휘황찬란한 장면들을 꿈꿨다. 그러나 현재를 살고 있는 나는 그저 사랑하는 사람들과 마주 앉아 따뜻한 밥 한 끼 먹는 것,이라 적는다. 새해엔 내가 부디 낭만에 취해 살았으면 한다. 말라붙은 침 자국 같은 세상 속에서 현실에 너무 스며들지 않아야 한다. 한데 그게 어렵긴 하다. 나도 이젠 누군가에게 현실을 알아야 한다며 표정을 일그러뜨리기 때문이다. 더러워진 빈손을 모래성 안에 숨겼다. 파도가 몰려와 모래성을 무너뜨리고 휩쓸어간다.


새로 맞이한 해엔 몸과 마음이 건강히 하자. 깨끗한 물을 찾아야 한다. 무게를 덜어 가벼워져야 한다. 우리는 우리를 가두지 않고 품을 수 있어야 한다. 이마까지 끌어올린 이불 안에서 좋은 꿈을 꾼다.


동그란 입 더 커다랗게, 더 자주 웃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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