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여나 내가 당신을 슬프게 하거나, 불행하게 만든다면 꼭 말해주세요.] 글자를 썼다가 지웠다.
난 어릴 적부터 늘 잘 버려지고 잘 망가뜨렸다. 이쯤 되니 현명한 인간들이 날 떠나는 건가, 싶어진다. 멀쩡한 핸드폰과 컴퓨터는 내가 사용할 시 몇 개월 가지 못해 고장 났다. 장난감도 쉽게 부러졌다. 인형도 실밥이 터져 솜이 새어 나왔다. 옷도 뜯어졌다. 자상한 인간도 나와 친해지면 나빠져 있었다. 소중해지면 안 되었고 경험을 토대로 그럴 경우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다리를 떨며 입술을 잘근 물었다.
[왜 너를 탓해, 잘못한 건 다른 쪽인데. 힘내. 넌 열심히 했잖아.]
오래전 D에게서 왔던 메시지를 재차 찾아읽었다. 전부 리셋할 수 있는 버튼이 있다면 어땠을까? 깡그리 삭제하고서 아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얼마나 기쁠까? 만일 그렇다면 태어날 때부터 잘 태어나야지. 한데 그럴 방법이 있나? 태어남을 원하는 대로 결정지을 수 있나? 이번 생과는 사뭇 다른 인간으로 말이다.
문득 죽은 나의 사촌을 그려보았다. 나와 나이가 같음에도 생일이 빨라 오빠라 불렀던 사촌. 그 사촌과 자주 싸웠었다. 굉장히 어처구니없는 이유들이었기에 지금은 생각나지도 않는다. 눈이 엄청 많이 온 날 사촌의 집 앞 언덕에서 쌀 포대를 깔고 앉아 썰매를 타던 기억이 났다. 그때 밤송이를 밟아 발에 가시가 박혔었고 그 사촌의 아빠이자 나의 외삼촌인 사람이 가시를 빼줬었다. 사촌은 열네 살에 교통사고로 죽었다.
난 가끔 그 사촌의 죽음이 어쩌면 내가 맞이했어야 할 불행이 그곳으로 간 것은 아니었을까, 미안해지고는 했다. 만일 사촌이 살아있었더라면 나와 같은 나이가 되어 어엿한 사회인이 되어 있었을 테지. 그의 부모를 마주하게 될 시 고개가 숙여졌다. 외숙모와 외삼촌도 나를 보며 사촌이 살아있었더라면 내 나이쯤 되었을 것을, 할까 봐.
신도 좋고 예쁜 건 곁에 두고 싶어 나쁜 것들은 내버려두고서 착한 것들 먼저 데려가는 건가. 종종 신을 이해하려 애써보는데 역부족이었다. 영락없는 슬픔과 악한 것들이 천지에 깔려있었다. 악몽에 시달렸다. 내가 꾸는 악몽을 살게 될 것 같아 두려워졌다. 이 미친 세상 속 그 무엇에게도 지지 말자고. 고장 난 카세트처럼 되뇌었다.
“너무 소중한 걸 보면 깨트릴까 봐 두려워진다던데, 난 요즘 당신을 보면 그런 감정이 가끔 들기도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