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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쥬드 Jun 17. 2023

'무인양품'이라는 브랜드

브랜드 디깅 #2. 무인양품

1. 무인양품 선정 이유

해외 브랜드를 대상으로 디깅을 진행해야하는 과제를 받고, 국내 브랜드와는 다르게 바로 하나의 브랜드가 떠올랐다. 내가 가장 많이 구매한 제품들의 브랜드이며, 가장 자주 방문하는 매장인 ‘무인양품’이다.

무인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워낙 많고, 브랜드 철학에 대해서는 익히 알려져 있으니, 보다 나의 생활과 무인양품에 포커싱하여 디깅해보면 재미있겠다 생각이 들었다.   


2. 나의 삶 속에 무인양품

집을 둘러보니, 무인양품 제품의 종류만 40개가 넘었다. 중복되는 상품은 제외한 종류만 40종이다. 여기서 놀라운 점은 그 상품의 카테고리가 다양하다는 것. 책장, 물품을 담는 바구니, 라탄 바구니, 빨래통은 물론 시디플레이어, 선풍기, 디퓨저, 면봉, 양말 등 무인양품의 제품들은 나의 라이프스타일을 관장하고 있었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무인양품에 물들여졌는가?


1) 첫 만남

집에 설치한 무인양품 CD 플레이어.

처음 무인양품을 알게 된 것은 ‘후카사미 나오토’를 통해서이다. 산업디자인을 전공하던 시절, 그가 디자인한 CD플레이어를 보게 되었다. 환풍기처럼 전원 선을 당기면 돌아가는 CD. 간결하고 직관적인 디자인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 제품을 실제로 볼 수 있는 무인양품 매장에 방문해보고 덜컥 브랜드와 사랑에 빠졌다.


2) 매장이 주는 분위기

무인양품 도쿄점(위)과 무인양품 신촌점(아래). 다른 나라에 위치한 매장임에도 동일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무인양품의 매장은 어디를 가나 똑같다. 나무로 된 진열대에 차분히 담겨있는 무채색의 제품들. 넉넉한 핏의 무지 옷을 입고 돌아다니며 정리하는 직원들. 불쾌하지 않은 아로마 향기와 향토적이면서도 리듬감있는 음악이 반겨준다. 제품들은 하나같이 눈에 띄지 않았지만 디테일을 가지고 있었고, 사용해보지 않아도 좋은 품질이 느껴졌다. 이내 무인양품은 나의 놀이동산이자 휴식처가 되었다.


3) 분위기를 훔쳐오다.

한때 나의 취미는 무인양품 매장에 들러 새로나온 물건이 없는지 샅샅이 살펴보는 것이었다. 접이식 가위를 발견했을 땐 두세개씩 구매해서 지인들에게 선물했었고, 납작해지는 스테이플러를 발견하고는 탄성을 내뱉었다. 그렇게 하나 둘 구매하기 시작한 제품들이 쌓여 지금의 나의 집을 만들었고, 나는 그런 집을 사랑하게 되었다. 결국 나는 무인양품의 ‘분위기’를 나의 집으로, 나의 생활 속으로 훔쳐오고 싶은 마음에 무인양품을 뻔질나게 드나들었던 것.

모두 집에서 제 역할을 하고 있는 무인양품 제품들.

그렇게 무인양품은 나의 삶속으로 투영됐다. 그렇다고 집이 무인양품 매장처럼 꾸며진 것은 아니다. 무인양품의 제품들은 자신을 결코 드러내지 않는다. 스스로의 존재감을 뿜는 게 아니라, 내용물을 받쳐주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면서 전체적인 분위기를 잡아준다. 무인양품이 추구하는 바대로, 이것으로 충분했다.   


2. 무인양품의 분위기

무인양품은 1980년 백화점 브랜드, 세이유의 PB 브랜드로 출발했다. 지금은 전세계에 32개국에 1,132개 매장을 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이다. 무인양품과 비슷한류의 제품은 넘쳐나고, 똑같이 생긴 그러나 훨씬 저렴한 짝퉁들이 시장에 판을 친다. 그럼에도 여전히 무인양품은 연간 3,000억 엔 이상의 수익을 창출해내고 있다. 브랜드가 없는(무인) 제품이지만 오히려 어느 브랜드보다 더욱 견고한 팬덤을 구축했다.

그렇다면 무인양품의 분위기라는 것은 무엇일까? 왜 무인양품은 어느 매장이나 비슷한 느낌을 제공해줄 수 있을까? 이는 무인양품이 철저하게 지켜내고 있는 ‘구조’ 덕택이다. 지금은 잘 알려진 ‘무지그램’이라는 메뉴얼을 통해 사람이 가진 ‘노하우’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시스템’으로 브랜드를 관리한 결과이다.


1) 무지그램과 무인양품의 철학

출처. Schole 강의자료 <무인양품 플래그쉽 스토어 프로젝트>

무인양품의 철학은 위 다이어그램과 같이 구성된다. 세세한 철학들이 맞물려서 결국 ‘이것으로 충분하다’라는 가치를 고객에게 전달시킨다. 이 브랜드의 가치를 견고하게 지켜내기 위해 ‘무지그램’이라는 메뉴얼을 계속해서 업데이트하고 관리한다. 무지그램의 초석을 다진 ‘마쓰이 타다미쓰’ 회장은 그의 저서 ‘무인양품은 90%가 구조다’ 에서 피가 통하는 조직을 만들기 위해서는 개인의 재능에 기대는 것이 아닌 모든 것의 시스템화를 주장했다.


점포의 분위기는 가게 안의 레이아웃과 상품 진열 방식, 스태프의 태도, 청소 방법 등의 ‘세부 사항’이 모여서 만들어지는 것인데, 이런 ‘세부 사항’을 종종 개인 각자에게 맡기곤 합니다. 그러면 회사에서 통일하기가 어렵습니다. 매뉴얼의 필요성이 바로 여기 있습니다.  - ‘무인양품은 90%가 구조다’, p200


마쓰이 회장 말에 따르면, 이런 것 까지 규정해야해? 싶은 요소 하나하나 세세하게 규정했다고 한다. 하다못해 사람들에게 인사하는 것 까지 ‘왜, 언제, 어떻게’ 해야할지 규정했다고 하니까. 이렇게 모든게 규정되어있으면 이를 지키기 위해 에너지가 더 들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실상은 반대라는 것. 오히려 정해져 있기에 모두가 같은 기준으로 판단을 하게 되고, 이 규율 안에서 새로운 시도들이 싹튼다.


출처. Schole 강의자료 <무인양품 플래그쉽 스토어 프로젝트>
<무지그램>에서 ‘단정함’이란, “페이스UP(태그가 붙은 면이 정면을 향하게 한다), 상품의 방향(컵 등은 손잡이를 한 방향으로 둔다.), 선, 간격을 일정하게 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이 네 가지 포인트가 어떤 의미인지 사진과 함께 설명합니다. 이것을 읽은 사람은 누구나 당정함이 어떤 의미인지를 구체적으로 알게 됩니다. - ‘무인양품은 90%가 구조다’ , p67


여기에 누가 읽느냐에 따라 다르게 이해되는 모호한 말들이 아닌, 최대한 명확하게 명시해놓은 매뉴얼들은 전세계 모든 ‘무인양품’의 매장들을 동일하게 보이도록 만들어준다. 그래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무인양품을 들었을 때 사람들이 떠올리는 이미지는 동일하게 된다.


2) 무엇이 중요한가 - 디자인 철학

무인양품의 디자인은 소비자를 생각한다. 모든 제품이 그렇다. 아래 그들의 생각을 잘 읽을 수 있는 문장들을 가져왔다.

상품 이름에도 강요를 없앴습니다. 예를 들면 ‘다리 달린 매트리스’가 있습니다. 침대뿐만 아니라 소파로도 사용할 수 있는 다리 높이를 가진 제품인데, ‘○○ 베드’라고 하면 사용 방법을 강요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다리 달린 매트리스’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스틸 소재의 쓰레기통도, 쓰레기통이 아닌 ‘스틸 깡통 대·소’로 표시했습니다. 모든 면에서 파는 쪽의 사정이 아니라 사는 쪽의 논리를 우선한 상품들은 성별, 연령, 계층을 한정하지 않습니다. 사용 방법에도 강요가 없이 자유롭게 해, 어디까지나 생활의 소재라는 입장을 무너뜨리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이 상품들은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잘 활용될 수도 죽을 수도 있습니다. 고객은 그 관점에서 고르면 됩니다. - 무인양품의 생각과 말 ,p103


나중에 조사해보니, 발꿈치 부분이 120도인 지금의 일반적인 양말은 100년도 더 전에 영국 공장에서 처음 생산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기술로는 90도로 짜는 게 불가능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120도가 된 겁니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전, 손으로 짜던 시절부터 버선을 포함해 인간이 신는 양말은 직각이었습니다. 인간의 발 모양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입니다. 앞으로도 ‘아주 사소한 것과의 만남’을 소중히 여기려고 합니다. 한 사람이 얻을 수 있는 정보와 만날 수 있는 사람의 숫자는 정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더더욱 그 같은 만남을 어떤 의미에서는 ‘운명’이라고 생각하며, 항상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면 좋겠습니다. - 무인양품의 생각과 말, p135


가전은 크게 두가지 형태로 구분될 수 있습니다. 벽과 일체가 되는 가전과 테이블 위에 자리한 가전입니다. (중략) 벽에 가까운 것일수록 방에 녹아들 수 있게 각진 디자인으로, 사람에 가까운 것일수록 몸에 녹아들 수 있게 둥글게 디자인 했습니다. 이것이 무인양품의 디자인 철학입니다. - 매거진 B <무인양품> , p35

3. 생활용품을 넘어 집으로

1) 무지 하우스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무지하우스에 대한 고민.

무인양품의 제품들은 라이프스타일 전반을 케어한다. 그러다보니 그들의 시선은 자연스레 ‘집’으로 향했다. 2000년 초반, 무인양품과 소비자가 서로 의견을 나눌 수 있었던 ‘muji net’이라는 인터넷 플랫폼에서 나왔던 아이디어를 실현시켜 ‘muji house’를 만들어 낸 것. 소형 모듈러 주택이었던 ‘무지헛’을 시작으로 ‘나무의 집’, ‘창의 집’, ‘세로의 집’. 그리고 리노베이션 프로젝트를 통해 현재까지 집에 대한 고민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2) 무지호텔

2019년, 집에 대한 무인양품의 생각은 ‘호텔’로 퍼져나간다. 무인양품의 철학답게 ‘이것으로 충분한’ 크기의 방과 구조. 그리고 그 안을 가득 채운 무인양품의 제품들은 브랜드에서 만든 호텔의 정수를 보여준다. 브랜드 속에 파묻혀 하룻밤을 지낸다는 것은 ‘브랜드 경험’의 끝판왕 격이지 않을까.

무지 호텔에서 사용하는 일용품들은 대부분 집으로 가져갈 수 있게 되어있다. 무인양품의 과자와 슬리퍼, 조그만 에센스 오일과 어매니티들은 호텔에서의 추억을 집에서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준다.

무지호텔 긴자점.

 4. 브랜드로서의 무인양품

나의 경험과 다양한 서적을 통해 ‘무인양품’에 대해 디깅해보았다. 하나의 제품으로 알게 되었으나, 이내 삶 전체를 무인양품에 물들어버린 사람으로서, 이번 디깅은 너무나 재미있었다. 특히 마쓰이 타다미쓰의 ‘무인양품은 90%가 구조다’는 책은 많은 인사이트를 주었다.

무인양품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양질의 물건을 이름없이 판매하기 위해 세상에 나왔다. 이를 ‘이것으로 충분하다’는 슬로건으로 포장하여 현재까지 양질의 물건을 계속해서 선보이고 있다. 브랜드가 없는 브랜드. 그러나 누구보다 강력한 통일성을 가진 브랜드. 무인양품을 통해 생각해본 ‘브랜딩’의 의미는 아래와 같다.

�  ‘브랜드가 세상에 나오게 된 이유 (철학, 핵심 가치)를 얼마나 잘 유지하고 성장시키는 가 (구조)’


끝으로, 마쓰이 타다미쓰 회장의 뼈를 관통하는 말을 끝으로 글을 마친다.

회사에서는 사원들이 열심히 논쟁을 벌여 방향성을 결정하는 게 아니라, 방향은 위에서 결정하고 방향이 결정되면 사원들이 실행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을 수 있도록 몸을 가볍게 해둬야 합니다. (물론 실행을 위한 논의는 필요하지요) 그 속도와 판단력은 구조를 통해 쌓입니다. - ‘무인양품은 90%가 구조다’,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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