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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쥬드 Mar 29. 2021

데스크탑도, 노트북도, 태블릿도 필요해

하지만 다 살 돈은 없어  feat.서피스북2

나 노트북이 필요해. 아니 데스크탑도. 기왕이면 태블릿도.

2년 전 여름, 불현듯 노트북이 필요해졌다. 기존에 쓰던 노트북을 형이 가져갔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사실 물건이 필요한 데는 이유가 필요 없다. 그럴듯한 이유는 얼마든 지어낼 수 있기에.


그 당시 나는 디자인 에이전시에 다니고 있었다. 직업 특성상 ppt 작업을 많이 하고, 일러와 포토샵을 쓰기도 했으며, 가끔 3D 작업도 하고, 가끔 손그림으로 도식을 그리기도 했다. 또 클라이언트를 만나는 일이 많아 자주 노트북을 들고 다녔고, 집(주로 주말)에서 작업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뭐야, 나 데스크탑, 노트북, 태블릿이 다 있어야겠는데?


때마침(어쩌면 오래전부터) 눈에 들어오던 노트북이 있었다. 마이크로 소프트의 '서피스북'이었는데, 성능도 괜찮으면서 휴대가 가능하고, 모니터 터치까지 된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무엇보다 물건에 있어서 만큼은 '홍대병'이 강했던 나에게 희소가치가 가장 큰 점수를 줬다. 2년 반이 지난 지금도 나와 같은 노트북을 쓰는 사람은 1명밖에 못 봤으니 성공한 셈이다.

가장 문제 되는 건 가격(이것저것 다 치면 300만 원을 살짝 넘는)이었는데, 눈에 밟힌 물건은 기어코 손에 넣고 나서야 눈길을 거두는 나를 잘 알기에 일단 사고 봤다. 인생, 이러려고 사는 거지.



2 in 1 노트북 중 이만한 게 없다.

감격스러운 첫 개봉의 순간. 2018년 6월 29일이었다.

'맥북'이 아닌 윈도우 기반 노트북 중에서는 가장 '감성'적인 외형을 가지고 있다. 그 당시 치기 어린 질투로 '나 애플 싫어!'라며 애플 제품은 거들떠도 안 보던(지금은 아이폰 유저다) 나로서는 꽤나 콧대가 높아지는 디자인이었다. 특히 힌지 부분의 독특한 방식은 이제껏 본 적 없는 묘한 만족감을 주기도 했다. 맥북 특유의 무광 마감을 따라한 듯한 알루미늄 바디는 시크함을 더해준다. 정직하게 박혀있는 창문 모양의 윈도우 로고는 삼성이나 엘쥐 로고에서 볼 수 없는 재미를 주기도 한다.


이 제품의 가장 큰 특징은 '노트북 대가리(?)가 뜯어진다는 것'이다. 탈착 버튼을 누르고 잠시 뒤면 '딸깍' 소리와 함께 모니터 부분을 분리할 수 있다. 컴퓨터를 실행하는데 필요한 대부분의 부품은 모니터 부분에 들어있기 때문에, 분리해도 작동이 멈추거나 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모니터만 단독으로 태블릿처럼 사용할 수 있다. 그대로 시크하게 서피스 펜을 꺼내 물고 진지한 척 끄적이면 그걸로 바로 IT 풍운아가 될 수 있다는 소리다.

뜯어지는 대가리(?) . 어깨 한번 으쓱하고 싶다면 사람 많은 곳에서 무심한 척 분리해보자.


모니터를 분리한 뒤 뒤집어서 다시 부착하면, 모니터 중심의 제품이 된다. 테이블에 세워두고 넷플릭스를 즐기기 좋다. 완전히 눕히면 스튜디오 모드로, 힌지 덕에 생긴 경사로 편하게 그림을 그릴 수 있다. 15인치의 넓은 화면 덕에 편리하게 그림을 그릴 수 있고, 세로로 돌리면 인터넷 서핑에 최적화된 화면을 만날 수 있다.


성능도 꽤 좋은 편에 해당되는 노트북이다 보니, 집에서는 데스크탑 대용으로 활용하기에 무리가 없다. 특히 함께 나온 '서피스 독'을 활용하면 손쉽게 데스크탑 환경을 구축할 수 있다. 서피스 독에 모니터, 마우스, 랜선을 미리 연결시켜 둔 뒤, 서비스북에 연결만 시켜주면 끝. 연결과 동시에 모니터, 마우스, 키보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충전까지 가능하다. 즉, 충전기만 꽂으면 노트북을 데스크탑처럼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이다. 물론 서피스 독은 별매 상품이며, 가격이 호락호락하지는 않다.


한마디로 '기능과 감성'을 모두 잡은 윈도우 기반의 노트북이다. 맥북이 아닌 노트북 중, 가장 스타벅스에 어울린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장점만 존재하지는 않는다.

몇 가지 사용하면서 겪은 재밌는 에피소드들을 보면,


1. 서피스북은 3:2 비율의 모니터를 가지고 있다. A4의 사이즈와 비율을 최대한 따라가서 필기의 강점을 살렸다고 하는데, 그러다 보니 해상도가 처음 보는 비율로 된다. 초기엔 다양한 프로그램에 해당 비율이 잘 적용되지 않아 네이버 카페를 하루 종일 돌아보며 세팅했었다.


2. 서피스 펜을 쓰는데, 자석 형식의 충전 단자를 사용하고 있어서 '지터링(선을 그으면 자글자글하게 그어지는 현상)' 현상이 너무 심했다. 지금은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로 어느 정도 잡히긴 했지만, 초반엔 안경닦이를 손 밑에 깔아 두고 필기를 했다.


3. 산지 일주일 된 날, 모니터 분리가 먹통이 됐다. 뿐만 아니라 키보드 자체 모든 버튼이 먹통이었다. 충전기를 꼽지 않아도 충전 중으로 표기가 되고 있는 걸 보니, 키보드를 그냥 충전 단자 정도로 이해하고 있는 듯했다. 문제는 USB 포트가 키보드 부분에 있어서, 공장 초기화도 불가능했다. MS에 전화해서 하라는 모든 방식은 다해봤지만 돌아오지 않았다. 남은 방법은 리퍼를 받는 것 뿐. 모든 걸 포기하고 리퍼를 보내려 하는 월요일 아침, 기적적으로 분리 버튼이 작동하면서 다시 원상태로 돌릴 수 있게 됐다. 그 일 이후로 지금까지, 분리를 할 때마다 마음이 콩닥거린다.


4. 서피스북은 서피스펜을 모니터 옆면에 부착할 수 있도록 자석 처리가 되어있다. 산지 3일째 되던 날, 서피스 펜을 보니 부착 부분에 묘한 철심 같은 게 튀어나와있는 게 아닌가? 아니나 다를까 서피스 펜과 닿는 노트북 옆면에는 이미 여러 흠집이 나 있었다. 당장 구매한 대리점에 문의하니 펜은 새 걸로 교체해 주었지만, 노트북은 교체해주지 않았다. 결국 나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마음으로, 핸드폰 보호필름을 잘라서 서피스북 옆면에 붙여두었고, 아직까지 떼지 않고 않다.


모두 초창기 있었던 해프닝이다. 아직까지도 잘 사용하고 있는 노트북이지만 누군가에게 사라고 추천하지 못한 이유는 이런 에피소드들에서 내가 느꼈던 절망감이 너무나 컸던 탓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단점들.

1. 태블릿으로도 쓸 수 있지만, 배터리가 심각하게 빨리단다 = 노트북 대가리만 들고 외부를 나갈 수 없다.

2. 데스크탑 대용으로 쓸 만큼 성능이 좋지만, 그렇다고 데스크탑만큼 좋지는 않다. = 내/외장 그래픽카드가 나눠져 있고, 배터리 효율로 인한 쓰로틀링*이 꽤 빈번하다.

3. 노트북으로 들고나갈 수는 있지만, 노트북이라기엔 무게가 상당하다. = 15인치 기준 1.9kg

4. 아무래도 '변신(?)'이 가능한 제품이다 보니, 자잘한 오류가 자주 발생한다.

*쓰로틀링 : 기기에 어느정도 과부화가 걸리면 자동으로 성능을 저하시키면서 렉이 걸리는 현상


이 모든 단점을 무릅쓰고, 2년 반이 지난 지금도 잘 사용하고 있긴 하다. 게임도 하고, 가끔 그림도 그리고, 영화도 보면서 작업도 하는, 말 그대로 올인원 기기로 충분히 잘 쓰고 있다. 물론 그 당시 비용은 내 주머니 사정에 비해 터무니없었고, 일주일 만에 분리가 안 되는 기괴한 오류가 발생했을 땐 MS를 죽어라 저주했으며(MS는 수리가 없다. 고장 나면 무조건 리퍼. 그런데 리퍼 상품 상태가 안 좋기로 유명하다..), 어쩌다 들고 밖에 나간 날에는 그 자리에서 쿨 거래로 팔아버리고 싶을 만큼 무겁기도 했지만 말이다.

다시 처음 샀을 때로 돌아간다면, 고민이 될 것이다. 하지만 조금 고민해봐도 대안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불만족스러우면서도 만족스러운, 애증의 노트북이다.



서피스북2 총평 : 남들 추천은 못하겠지만, 나는 살 것이다.

(혹 서피스북 3를 사려고 하신다면, 크게 달라진 게 없으니 참고해도 좋을 듯합니다.)


추천)

- 제품으로 남들의 시선을 훔치고 싶다면

- 윈도우 기반의 노트북을 써야겠으나, 맘 속으론 맥북을 흠모하고 있다면

- 데스크탑도, 태블릿도, 노트북도 없지만 전부 구매하기 귀찮다면! (세 개를 사는 게 더 쌀지도 모른다)

- 집에 두고 쓸 일이 많지만, 가끔 들고는 나가야 하는 성능 좋은 컴퓨터가 필요하다면

- 돈은 많고, 노트북이 필요하다면


비추천)

- 노트북처럼 매일매일 들고나갈 테야!

- 태블릿처럼 필기도 하고 그림도 그려야지!

- 어휴, 이것 저것 알아보고 설정하고 귀찮아 (MS의 대부분의 문제는, 고객이 직접 해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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