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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쥬드 Dec 22. 2021

난 슬플 때 손톱을 깎는다

어디에서든..  feat. 행켈 휴대용 손톱깎이

손톱깎이, 돈주고 사본 적 있나요?


우리집 손톱깎이는 항상 TV 서랍장 속 양철로 된 과자 상자에 면봉 등과 함께 놓여있었다. 그곳에 없으면 마법의 주문 '엄마~'를 외쳤다. 그러면 어디선가 휙 하고 나타나곤 했다.

가만 생각해보면 손톱깎이는 참 재미있는 도구이다. 어느 집이든 무조건 하나쯤 있는 제품이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한달에 한번 정도는 사용한다. 인생으로 따지면 굉장히 많은 사용량을 가지는 제품인 것이다. 헌데 나는 아직까지 한번도 '손톱깎이 자랑'하는 사람을 본적이 없다.


그래서 손톱깎이를 제대로 사보기로 했다. 손톱깎이를 자랑하는 사람이 돼보고 싶었다. 어쩐지 사소한 것에도 세심한 감각을 가진 멋진 사람이 될 것만 같았다. 기왕이면 독특하고 멋지면서 실용적인 친구로 구입해보고자 몇가지 나의 니즈를 나열해보았다.


1. 일반적인 디자인은 아닌, 조금 색다른 방식이면 좋겠다.
2. 기왕이면 휴대가 용이해, 손 가시를 어디서든 바로 자를 수 있으면 좋겠다.
3. 손톱 조각이 밖으로 튀어나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뒤로 틈틈이 여러 손톱깎이를 살펴보았고, 해당 조건에 부합하는 한 친구를 만날 수 있었다. 부엌 칼의 명품으로 알려진 독일 '행켈' 사의 손톱깎이였다.


쌍둥이 칼 행켈의 기술력이 접목된 손톱깎이

칼을 전문으로 만드는 회사의 손톱깎이라니 일단 믿음이 생겼다. 심지어 독일의 기술력. 남들에게 자랑할만한 포인트로는 합격이었다. 쌍둥이 로고도 왠지 모르게 감성적이다.

행켈사의 손톱깎이는 꽤 여러종류가 있었는데, 그 중 '휴대성'에 집중한 제품을 골랐다. 접으면 납작해지는 형태로 작동 방식도 기존의 손톱깎이와는 어딘가 달라보였다. 가격이 꽤 나가는(손톱깎이치고) 편이었지만, 바로 구매를 해보았다. 그렇게 손톱깎이를 처음 돈내고 사보았다.

틴케이스를 열어보니 손톱깎이와 가죽 파우치가 등장했다. 행켈의 손톱깎이는 굉장히 얇은 두께를 자랑한다. 0.4cm의 두께는 필통에 넣어도 전혀 부담되지 않는 수준의 두께. 길이도 6cm로 손가락에 덧대는 부목 정도 느낌이다. (어릴적 농구하느라 손가락 인대 좀 늘어나보신 분들이라면 친근할 것이다.) 주머니에 넣으면 깜빡하고 세탁기에 들어가기 딱 좋은 사이즈이니 주머니에는 넣지 않도록 하자.

좋은 제품은 사용 설명서가 없이도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이라고 생각한다. 요 손톱깎이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사용에 대한 인지 구조가 잘 설계되어있다.

손톱깎이 상단부 중앙에 6개의 홈이 파져있다. 보통 이런 홈의 기능은 미끄러지지 않게 접촉 면적을 늘려주는 역할을 한다. 즉, 손가락을 대고 밀거나 당겨야하는 시그널로 무의식중에 판단이 선다. 엄지손가락을 대고 아래로 내리면 어렵지 않게 밀려내려가는 상판을 볼 수 있다.


내리고나면 아래 탄성있는 지랫대에 의해 상판이 위로 튀어오른다. 상판과 연결된 아랫날이 벌어지면서 익히 알고 있는 손톱깍이의 형태가 보인다. 여기서 상판이 2단계로 분리되는데, 아래 상판을 살짝 위로 밀어넣어 겹치도록하면 지랫대의 힘을 받는 손톱깍이가 완성된다. 아래 움짤을 보면 이해가 훨씬 쉽다.

사이즈가 작다고 성능까지 자그마하지는 않다. 행켈의 칼처럼이나 날카로운 이빨은 손톱을 부드럽게 잘라준다.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것은 '소리'. 기존 손톱깎이는 딱! 딱! 소리를 내는 반면 이 친구는 거의 소리가 나지 않는다. 어느정도 수준이냐면 회사에서 몰래 손톱을 깎을 수 있을 정도.

상판 뒤쪽으로는 네일 케어가 가능한 거친 면이 존재한다. 크기는 작아도 있을만한 것은 다 있는 셈. 사용을 마친 뒤 상판을 당겨서 아래로 고정시킨다. 그러면 다시금 작은 막대기로 돌아가 있다.


이 손톱깎이를 필통에 넣어서 들고 다닌다. 가죽 파우치에 넣어서 손상되지도 않고, 작고 얇은 덕에 필통에서 부피를 차지하지도 않는다. 거슬리는 손가시를 바로바로 짤라주니 삶의 질이 몇배는 향상된 듯 하다. 갑작스레 손톱깎이를 필요로하는 친구에게 슬며시 건낼때는 왠지 모를 우쭐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끝으로 묘사의 대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속 행켈 손톱깎이 묘사 글귀로 끝내려 한다. 구구절절 써내려가고 다각도로 찍은 나의 글과 사진보다 이 짧은 글이 더욱 이 제품을 매력적으로 소개해준다. 글의 힘이란 참으로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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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봐요. 이게 하나입니다. 그리고 둘. 그다음이 셋. 봐요, 손톱깎이가 되었죠?"


"호오." 하고 나는 말했다. 과연 그것은 훌륭한 손톱깎이로 변신해 있었다. 그는 손톱깎이를 다시 원래의 금속편으로 돌려놓은 다음 내게 건냈다. -중략- "행켈 제품, 평생을 쓸 수 있죠. 여행 다닐 때도 아주 편리합니다. 녹슬지 않고, 날도 아주 단단해요. 개 발톱도 깎을 수 있어요."


- 무라카미 하루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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