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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싼타페 Jun 14. 2020

#10  붙잡는 작은 손

#10  붙잡는 작은 손


    늦은 밤 영주가 입원한 병원에 도착한 민준은 아직도 속내가 복잡하다.  영주의 산통으로 무사히 그 자리를 뜰 수 있었지만 우연히 듣게 된 출생의 비밀은 올라오는 내내 아픔으로 민준을 괴롭혔다.  첫 아이의 탄생, 그것은 형용할 수 없는 커다란 기쁨과 축복이었지만, 민준에겐 또 다른 아픔이 되었다.  단지 아픔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고통스러웠던 순간들이 기쁨과 함께 뒤엉켜 도저히 표현해낼 수 없는 감정의 혼돈 속으로 빠져버렸다.

    말해줄 상황도 아니었고, 말해줄 심정도 아니었기에 영주는 아무것도 모른 채 시골에서 달려 와 준 남편의 등장에 안도하면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을 뿐이다.  머릿속으로는 함께 배를 쓰다듬으며 곧 태어날 아이를 위해 기도도 해주고 고생하는 아내를 위해 파이팅을 외치라 하지만 민준의 머릿속은 혼란과 분노로 뒤엉켜 있었고, 보다 깊은 곳에서는 극단적인 단어들이 스멀스멀 기어오르고 있어 아무것도 못하고 그저 쓴 웃음만 보여줄 뿐이었다.  그런 민준의 모습이 다행히도 가식적으로 보이지는 않았는지 영주는 가까스로 밝은 웃음을 지으며 화답해주었다.  영주의 밝은 웃음이 민준에게는 또 다른 아픔으로 다가 가는지도 모른 채...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민준은 분만실로 함께 들어갔다.  아내 영주가 가쁜 숨을 내쉬며 의사와 간호사들의 신호에 맞춰 힘을 쓰곤 있지만 첫 출산이니만큼 아이는 쉽게 나오지 않았다.  영주가 힘들어 할수록 민준은 안타까움에 어쩔 줄 몰랐다.  수건으로 영주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아 주면서 조금만 더 힘을 내라고 말해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너무 답답하고 밉기까지 했다.

    두 시간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의사는 조금만 더 해보고 안 되면 수술을 해야 할 것이라 말한 것이 영주를 자극하였는지 몸 깊숙한 곳 어디에 그런 힘이 있었나 싶을 만큼 사력을 다해 힘을 주었고 아이의 머리가 산도를 통해 반쯤 나왔다.  의사와 간호사들이 분주해졌다.  얼른 힘을 더 주어 머리가 완전히 빠져야지 안 그러면 아이가 위험할 수도 있다면서 영주를 재촉한다.  힘을 다 써버렸을 텐데도 영주는 한 번만 더 라는 말에 다시 힘을 주어 아이를 세상 속으로 밀어내주었다.  마침내 아이는 의사와 간호사들의 손 위에 안착하였다.  의사는 입에 있는 이물질들을 제거하고는 아이의 두 발을 한 손으로 잡더니 거꾸로 뒤집어 등을 가볍게 두드리다가 엉덩이를 가볍게 때렸다.  동시에 아이의 입에서는 첫 울음 소리가 터지며 세상을 향한 첫 일갈을 내뱉었다.  의사는 마스크 뒤로 가볍게 웃으며 민준에게 가위를 건네주고는 탯줄을 직접 자르라고 한다.  얼결에 가위를 받아든 민준은 가위로 탯줄을 자르면 아이가 아프지 않을까 싶었지만 민준의 걱정을 알고 있는 듯 괜찮다는 간호사의 말에 안도하며 과감히 탯줄을 잘라내었다.  

    의사는 아이를 민준에게 안겨주며 첫 목욕을 시켜주라고 한다.  민준은 작은 힘에도 바스라질 것 같은 아이를 안고 조심스레 아이의 몸을 욕조에 담그고는 조심스레 물을 묻혀 주는데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져 버린다.  첫 아이를 안았다는 감격으로 울컥한 것이 아니라 탄생의 순간을 마음껏 축복해주지 못하는 못난 아빠의 모습이 미안하고 또 미안해서 울었다.  민준은 얼른 물에 젖은 손으로 눈을 닦는 척하며 눈물의 흔적을 지워내고는 다시 아이를 간호사에게 건넸다.  그리고는 영주의 손을 잡고 고생했다고 말해주었다.  영주는 지친 모습으로 가만히 웃으며 민준의 손을 꼭 잡았다.

     그날 밤, 민준은 장모와 교대하고 집으로 돌아와 밤새 울고 또 울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옛 기억들, 그 안에 담긴 이야기들은 마주하면 마주 할수록 아픔은 강도를 더해갔고 처음으로 ‘환장하겠다.’는 말뜻을 민준은 온 몸으로 겪게 되었다.  눈물은 나오는데, 슬픔은 가득한데 숨을 쉴 수가 없다.  배가 뒤틀리고 반쯤 벌려진 입에서는 끅끅대는 소리만 힘겹게 새어나올 뿐이다.  의자에 앉아 흐느끼던 민준은 이내 바닥에서 배를 움켜쥐고 뒹굴었다.  천천히, 그렇게 천천히 뒹굴며 고통에 젖어만 갔다.  수건은 어느 새 이제 막 샤워를 끝낸 여느 수건보다 더 축축해져 버렸다.  그토록 기대하던 아이가 태어났건만 기뻐하지 못하는 자신이 서글퍼서, 아이의 탄생을 축하해주지 못해서 더욱 미안하고 괴로웠다.  무엇보다 여느 아이와 달리 태어나자마자 눈을 뜬 아이가 자신을 씻겨주는 아빠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는 듯 했던 장면이 민준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자꾸만 떠올랐다.  괴로움에 몸부림칠수록 아이의 눈망울은 더욱 선명해져 민준에게 말을 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왜 축하한다고 말 안 해줘요?  건강하게 태어나서 고맙다고 왜 말 안 해줘요?  왜 이쁘다고 안 해줘요?  왜 사랑한다고 안 해줘요?  왜 말 안 해줘요?  왜?  왜?  민준은 아이의 질문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밤새 그저 미안하다는 말만 허공에 대고 신음하듯 내뱉을 뿐이다.

    다음 날 아침, 민준은 일찌감치 병원으로 향했다.  밤새 한숨도 자지 못했지만 혼자 있으면 스스로를 어찌할 것만 같아 겁이 나기도 했고, 아직은 아내 영주에게나 장모에게 어떤 내색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회복실에 들어선 민준이 영주와 장모에게 가볍게 인사하자 장모는 아버님 식사 챙겨야 한다면 서둘러 나갔다.  조금만 살펴봐도 밤새 울었던 흔적이 보일 텐데 서둘러 자리를 떠주니 다행이다 싶었다.

    엄마와 함께 곤히 잠든 아이의 모습이 참으로 평화롭다.  평화로움이 잠시나마 민준의 혼돈의 시간들을 멈춰 세웠다.  창문에서 쏟아져 내려오는 햇볕이 두 모자를 따사롭게 감싸주는 모습에 민준도 그 따사로움을 같이 느껴보고 싶어 살며시 아이 옆에 누워 아이를 바라보았다.  누가 아이를 천사라고 했던가.  민준은 그 이상의 표현은 없을까 생각하며 조심스레 아이의 손을 만져본다.  아이는 자신의 손을 만지고 있는 이가 아빠인줄 알기라도 하는 듯 그 자그마한 손으로 민준의 손가락을 움켜쥔다.  아이의 손이 무척이나 부드럽고 따뜻하다.  아이의 체온이 민준의 손에서 이내 온 몸으로 퍼져 나간다.  민준은 온 몸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부드러운 따스함을 느꼈다.  
    순간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표현할 수 없는 벅찬 이 감동은 무엇인가?  민준은 밤새 자신을 괴롭혔던 감정의 근원지에서 전혀 다른 성질의 감정이 올라오고 있음에 놀랐다.  자신을 아프게 하고, 미칠 것 같은 괴로움과 혼란에 빠뜨렸던 것이 지난밤의 것이라면 지금의 이 감정은 분명 빛이요, 환희요, 감사요, 희망이다.  민준의 자아정체성을 뿌리째 흔들어 대던 ‘출생의 비밀’이 비밀이 아니라 사실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아정체성의 혼돈으로 인해 무너진 자존감 역시 무너진 것이 아니라 무너졌다고 믿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밤새 불쑥불쑥 찾아와 찔러대는 자살의 충동이 민준의 손을 움켜쥔 작디작은 아이의 손에 의해 사그라진다.


    무너진 자존감과 자아정체성은 외부의 영향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영향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형성되는 것이었던가.  그 반응을 선택하는 것은 나의 몫이었던가.  사랑의 결실이 아닌 거래용으로 제작된 자신을 용납하지도 용서하지 못한 자신을 돌이켜보면 온통 어두움뿐이지만 사랑의 결실을 앞에 두고 있는 나는 혼자가 아니다.


  나는 나를 결코 용서하지 못한다.
  그런데 또 다른 한편으로는 나를 언제나 용서한다.
  나는 나 자신과 혼자가 아닌 것이다.
  - 자크 데리다


----------------------------  끝.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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