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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싼타페 Jun 28. 2020

천사의 눈물

나눔 100일째

    오늘이 벌써 거리에서 생활하는 이들에게 빵과 커피를 나눈 지 100일째다.  처음엔 코로나로 인해 도시가 봉쇄되어 가게 문들을 닫는 바람에 노숙자들이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해 종종 강도로 돌변한다는 소식을 듣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집 주위에 있는 몇몇 노숙자들에게라도 빵 한 조각 나눠주자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빵 한 조각이지만 배고픔으로 인해 강도로 돌변해야만 하는 절박함이 조금이라도 수그러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시작한 것이다.  


    한 달이면 봉쇄된 도시가 다시 활기찬 모습으로 돌아오겠지 하는 생각에 가볍게 시작한 것이 여전히 봉쇄는 풀릴 기미가 없고 오히려 확진자만 늘어가는 상황에 그만 두기도 미안해서 지속한 것이 100일이나 되어 버렸다.  덕분에 누군가를 꾸준히 돕는다는 것이 참 많이 어렵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한국의 그들과는 많이 다른 모습들을 보게 되어 브라질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부분도 있었다.  이제는 그만 두고 싶어도 혹시라도 기다릴까 걱정이 되기도 하고 그들의 밝은 미소를 외면할 자신도 없다.  봉쇄가 완전히 풀리든지 내가 이사를 가든지 해야 끝낼 수 있을 듯하다.     


    100일 기념으로 신께서 내게 이벤트를 열어 주셨나보다.  지난 번 브런치에 올린 ‘누군가에게 천사’라는 글에서 언급한, 그러니까 내게 천사라고 불러준 그 여인을 오랜 만에 만났다.  하필 바로 앞에서 빵을 다 나눠주는 바람에 커피만 겨우 내밀며 미안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미안해하는 내게 오히려 두 손을 맞잡은 채 밝은 미소로 화답하며 괜찮다고 말을 건네주었다.  커피를 따르다보니 자연스레 그녀의 발이 내 시야에 들어온다.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건가.  그녀의 바지가 많이 훼손되어 있었고 추위를 막아보려는지 찢어진 천들을 모아 칭칭 감아 놓았다.  주변에 의류 공장들이 많아 매일 같이 부스러기 천 조각들이 많이 나온다.  그런 천들 가운데 제법 길고 넓은 것들을 골라 다리와 발을 감싸며 버티고 있었나 보다.  매듭이 여러 개나 있는 것을 보니 그리 넓지 않은 것들인가 보다.


    순간 시야가 흐려졌다.  며칠 전 즐겨 입던 청바지가 자꾸 터져서 새로 바지를 하나 사야겠는데 가게들이 영업을 안 한다고 투덜대던 내 모습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부끄러웠다.  바지가 그거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도 투덜거린 내가 반찬 투정이나 부리는 어린아이 같다는 생각에 한 없이 부끄러웠다.  울컥하는 마음에 되지도 않는 포어와 손짓 발짓을 섞어가며 잠간만 여기서 기다리라고 했다.  집에 아내가 안 입는 바지가 생각났고 얼추 맞을 것 같아 그거라도 가져다 줄 셈이었다.  그녀는 여전히 밝게 웃으며 내 어눌한 포어를 따라하며 알았다는 표시를 한다.  


    핸드폰을 가져오지 않은 것이 아쉬웠다.  혹시라도 내가 표적이 될까하는 두려움에 일체의 값나가는 것들은 가지고 나오질 않았는데 오늘따라 핸드폰의 번역 앱이 이리도 필요할 줄이야.  아쉬움을 뒤로 하고 얼른 집으로 가 아내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해주고는 건네주는 바지 두 벌을 비닐 봉투에 담아 되돌아갔다.  


    당연히 그녀가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그녀는 그 자리에 자신의 온기만을 조금 남겨둔 채 어디론가 가버렸다.  알아들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아니면 내 말을 믿지도 않았던 건가.  바지 두 벌이 담긴 비닐 봉투를 들고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내내 아쉽다.     


    정장도 아닌 청바지야 터지면 꿰매면 되는 것을, 일부러 찢어진 것도 입는데, 다른 바지 입다가 봉쇄가 풀려 가게 문을 열면 그때 사도 되는 것을, 지금 당장 사 입고 싶은 마음에 닫힌 가게 탓을 하며 투정부린 나는 아직 내 입에 맞는 반찬을 달라고 투정이나 부릴 줄 아는 어린 아이였던가.  대체 가능한 것들을 수없이 가지고 있으면서도 감사할 줄 모르고 누릴 줄도 모른 채 당장 망가진 장남감에 눈물부터 흘리는 철부지였던가.  생활수준을 논할 수조차 없는 그녀도 그토록 밝은 미소를 가지고 있는데 많은 것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런 미소조차 짓지 못하는 욕심쟁이였던가.  그녀가 나를 천사라고 불러주었다고 진짜 천사가 된양 우쭐해져 있었나보다.  


    그녀가 천사라고 불러준 초라하고 욕심 많은 어린 아이가 부끄러움을 배워 눈물을 흘린다.  날마다 알콩달콩 싸울 수 있는 아내가 있그만 놀고 공부 좀 하라고 소리 지를 수 있는 아이들이 있으며 그런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 있고 먹을 양식이 냉장고에 가득 있어 감사하고 행복하여 눈물 흘린다.  그녀와 더불어 몇 안 되는 이들이지만 그들에게 작은 것이나마 나누었다는 것이 눈물로 변하여 내 가슴에 훈장으로 얼룩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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