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싼타페 Jul 15. 2020

# 편지 둘 - 내 안에 들어온 그대

     처음 영화를 보러 간 때였소.  그대가 내 안에 들어와 자리 잡게 된 것은.  컴컴한 영화관에서 나란히 앉아 커다란 스크린에 비춰지는 영상들을 보면서도 나의 모든 감각은 그대를 향해 있었소.  그대에게서 은은하게 피어오르는 체향이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곳에서 더욱 진하게 다가와 나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고, 영화 속 등장인물들의 연기에 몰입하며 움찔 대던 작은 움직임들이 바싹 붙어있던 좌석 탓에 가볍게 맞닿은 어깨를 통해 온몸 구석구석 전율로 퍼져 갔으며, 무서운 장면이나 긴장감 도는 장면이 나올 때면 차마 내 팔을 붙잡지는 못하고 소매 끝을 꼭 쥔채 얼어버린 그대를 나 역시나 감히 안아주지 못한 채 내 옷을 붙잡고 있던 그대의 손을 다독이다보니 내 안에 신께서 숨겨놓으신 사랑이 슬그머니 존재를 드러내더이다.  두근거리는 마음 달래려 콜라를 마시는데 어느새 콜라는 그대가 되어 내 안으로 들어와 내가 되더이다.  그대의 볼을 불그스름하게 달군 그 열기가 내 안에 또한 존재하고, 그대 심장을 울리는 두근거림이 또한 내 심장을 울리더이다.  그대의 체향은 내 기억 속에 고이 간직되어 어디서든 꺼내어 맡을 수 있게 되더이다.


    왜 그때 그대를 감싸 안아주지 못했던지.  이제와 생각해보면 참으로 아쉬울 따름이오.  그래도 다행히 그날 밤 처음으로 그대의 손을 잡고 걸어 갔었다오.  세상 다 가진 것처럼 들뜬 기분으로 걸어가보긴 그때가 처음이었소.  그러다 취객들이 몰려 있는 골목길에 접어 들면서 겁이라도 났는지 내 팔을 두 손으로 꼭 붙들었을 때 나도 살짝 겁이 나기는 했지만 그래도 남자 체면에 약한 모습 보이기 싫어 짐짓 태연한 척 그대를 다독이며 걸어 갔더랬소.  그때 내심 아무 일 없이 지나갈 수 있기를 얼마나 기도했는지 모른다오.  실상은 별볼일 없는 나를 그토록 의지하는 그대를 보며 앞으로 내가 보호해주리라 마음 먹었소.  그런데 참으로 이상하더이다.  그대를 보호해주리라 마음 먹으니 내면 깊숙한 곳에서 용기라는 놈이 고개를 들지 않겠소.  누군가를 보호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것이 아님을 너무도 잘 알고 있음에도 당신만큼은 내가 보호해줄 수 있겠다 싶었소.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지키겠다는 마음에 주머니에 넣어놓은 손이 주먹이 되며 힘이 들어가더이다.      


    그대를 지키겠다는 것은 내 것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소유욕을 의미하지는 않소.  내 것이 아닌 신께서 내게 부탁하신 그대를 지키겠다는 의지였소.  신은 그 누구도 아닌 내게 세상의 하나 뿐인 그대라는 존재를 부탁하셨소.  그대를 통하여 나의 부족함을 깨닫고 겸손해지라고, 그대를 통하여 나의 못난 부분을 덮으라고, 그대를 사랑함으로 당신이 손수 지으신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깨달으라 하시었소.  그대를 지키며 누군가를 위해 희생함이 얼마나 위대한지 알라 하시었소.  그대와 함께 신뢰를 주고 받으며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느껴보라 하시었소.  그대와 함께 삶을 완성시키라 하시었소.  그대를 위해 나를 위해 그렇게 살아 보라고 말이오.  신이 내게 그대를 부탁하신 것은 그대만을 위한 것이 아닌 그대와 나 두 사람을 위한 것이었소.  그대 내 안에 들어와 나의 의지를 발현시켰고 사랑으로 진화하였다오.  그대를 지키겠다는 나의 의지는 그렇게 사랑이 되었고, 그 사랑은 이내 그대에게 또한 신에게 전달된다오.     


    그대 모습이 두 눈을 통하여 오랫동안 하나 하나 머릿속에 새겨지고, 그대 목소리가 들려오는 두 귀를 통하여 음악이 되었으며, 그대의 체취와 그대 숨쉬던 공기가 대기중으로 흩어지지 아니하고 내 코와 입을 통하여 들어와 내 안의 그대에게 생명을 주었소.  그렇게 생명을 가진 내 안의 그대는 춥고 좁은 머리에서 조금은 더 넓고 따뜻한 심장으로 자리를 옮기었다오.  그대가 떠오를 때면 그대와 함께 듣던 음악이 들리며 그대 체향이 느껴지며 내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하니 내 말이 맞지 않소.  내 안의 그대 모습, 내 안의 그대 향기, 내 안의 그대 숨결.  그러고보니 ‘내 안의’라는 말이 ‘내 아내’로 들리는구려.  요즘 유행하는 아재개그처럼 썰렁하긴 하지만 내 안의 그대가 이렇듯 내 아내가 되었구려.     


    핸드폰이 없던 시절이라 매일 같이 통화할 수 없어 무척이나 아쉬었지만 헤어질 때마다 다음 만남을 기약하니 그것이 또한 나에게 기다림의 즐거움을 알게 해주었다오.  그대를 집 앞까지 바래다주지는 못했지만 그대 집 근처에서 그대 들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다음 만날 시간을 머릿속으로 계산해보았다오.  아쉽게도 내 머리가 그리 좋지는 않아 계산이 되지는 않더이다.  


    한참을 바라보다 막차 시간에 쫓겨 몸을 돌리는 순간부터 나의 기다림은 시작되었소.  그때까지 그대를 볼 수 없다는 것이, 그대 목소리를 들을 수 없고, 그대 체취를 맡을 수 없다는 것이 고통이 되어 내 일부가 되었지만 얼마간 지나보니 그 기다림은 그대 향한 내 사랑이 숙성되는 시간이 되더구려.  참을성 부족하던 혈기왕성한 나를 단련시켜주는 시간이 되었소.  그대 그렇게 나를 어른으로 만들어 주었다오.       


    그 누구의 말도 귀담아듣지 않으려는 아집이 종종 직장에서 불화가 있었음에도 당최 꺽이지 않았건만 그대의 작은 손이 내 소매를 붙잡는 순간 힘없이 허물어지더이다.  20대 후반 천방지축일 수밖에 없던 내가 그대 곁에만 있으면 순한 말티즈처럼 그대의 손길 하나에 꼬리를 살랑거리게 되니 그대 나의 조련사임을 어찌 부인할 수 있으리오.  오가며 지나치는 어렵고 소외된 이들을 볼 때면 그대 언제나 그냥 지나치지 않았더랬소.  작은 것 하나라도 건네주려 작은 가방을 뒤적이는 그대 모습을 보고 있자면 일면부지의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돌덩이같던 내 감성을 섬세하게 다듬기 위한 것 같았소.  그런 그대는 나를 다듬는 조각가였소.  


    간혹 미처 지갑을 챙기지 못했거나 돈이 없을 때가 있었소.  난감해하던 내 표정을 읽었는지 아니면 그날은 그대가 내려 작정했는지 알 수 없지만 살며시 돈을 접어 으례 그 미소와 함께 건네주며 나로 계산하게 하였더랬소.  내심 많이 미안했지만 그대 직접 계산대 앞에서 지갑을 꺼내 지불할 수 있었음에도 내 못난 자존심을 생각해 그리 해준 그대가 얼마나 고맙고 어른스러워 보이던지.  그대 나의 흠집난 자존심을 세워주는 심리학자였다오.  그렇게 나를 만들어가는 그대에게 감사하오.

매거진의 이전글 # 편지 하나 - 첫 만남을 추억하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