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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싼타페 May 21. 2020

처절했던 기억과 오래된 상처로부터의 자유

‘글 쓰기’ 의 시작

    늦은 결혼과 함께 선물로 받은 새 생명.
    그것은 형용할 수 없는 커다란 기쁨과 축복이었지만, 나에겐 또 다른 아픔이었다.  단지 아픔이라는 단어로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고통스러웠던 순간들이 기쁨과 함께 뒤엉켜 도저히 표현해낼 수 없는 감정의 혼돈에 빠져있었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할 아프고 부끄러운 가정사를 알게 되었을 때, 혼란스러운 감정을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몰라 힘들어할 때, 아내는 출산을 앞두고 있었다.  아내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기에 ㅡ 말해줄 상황도 아니었고, 말해줄 심정도 아니었기에  그저 웃는 얼굴로 배를 쓰다듬고 있을 뿐이었다.  머릿속으로는 함께 배를 쓰다듬으며 곧 태어날 아이를 위해 기도도 해주고 고생하는 아내를 위해 파이팅을 외치라 하지만 나의 가슴은 혼란과 분노로 뒤엉켜 있었고 저 깊은 곳에서는 극단적인 단어들이 스멀스멀 기어오르고 있어 아무것도 못하고 그저 쓴 웃음만 보여줄 뿐이었다.  그런 내 모습이 다행히도 가식적으로 보이지는 않았는지 아내는 그저 밝은 웃음으로 화답해다.  아내의 밝은 웃음이 나에게는 또 다른 아픔으로 다가오는 지도 모른 채...

    첫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나는 분만실에 함께 있었다.  간호사가 갓 태어난 아이를 내게 안겨주며 첫 목욕을 해주라고 했다.  작은 힘에도 부스러질 것 같은 아이를 안고 조심스레 아이의 몸에 물을 묻혀 주었다.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져 버렸다.  나이 마흔에 첫 아이를 안았다는 감격으로 울컥한 것이 아니라 탄생의 순간 마음껏 축복해주지 못하는 못난 아빠의 모습이 미안하고 또 미안해서 울었다.  얼른 물에 젖은 손으로 눈을 닦는 척하며 눈물의 흔적을 지워내고는 다시 아이를 간호사에게 건넸다.

    그날 밤, 장모님과 교대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밤새 울고 또 울었다.  왜 하필 이 순간 그런 사실을 알게 되었을까?  차라리 몰랐다면 첫 아이를 향해 마음껏 축복하고 새 생명의 탄생을 마음껏 누렸을 텐데.  정답도 없는 질문들과 실현 불가능한 상상들로 아픔을 삭혀보려 했지만 그것은 미련한 짓일 뿐이었다.  허무함만 더할 뿐이었다.  그래도 그 미련한 짓들을 멈출 수가 없었다.
    불현듯 이 아픔을 이겨내야겠다는 의지가 일기 시작했고, 그 방법을 궁리하다 글로 써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에게 말 못할 이 이야기를 글로 써서 주관적인 관점에서 객관적인 관점으로, 개인의 이야기에서 타인의 이야기로 전환시키면 이겨낼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아픔이란 누군가에게 털어놓아야 고통이 줄어든다고 했으니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할 이야기들을 글로 풀어내는 것이 더 낫겠다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기억 속의 이야기들을 마주 할수록 아픔은 강도를 더해갔고 처음으로 ‘환장하겠다.’는 말뜻을 온몸으로 겪게 되었다.  눈물은 나오는데, 슬픔은 가득한데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배가 뒤틀리고 반쯤 벌려진 입에서는 끅끅대는 소리만 힘겹게 새어나올 뿐이었다.  의자에 앉아 흐느끼던 나는 이내 바닥에서 배를 움켜쥐고 뒹굴었다.  천천히, 그렇게 천천히 뒹굴며 고통에 젖어버렸다.  수건은 어느 새 이제 막 샤워를 끝낸 여느 수건보다 더 축축해져 버렸다.  겨우 한 줄 쓰고는 두어 시간은 울었던 것 같다.  그렇게 그날 밤은 울면서 반 장도 안 되는 양의 글을 썼다.  
    한 달가량 울다가 글을 쓰고, 쓰다고 다시 울기를 반복하다보니 어느 새 감정이 많이 누그러져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참으로 간사하다.  어느 정도 견딜만해지니 아픈 기억들을 마주하며 객관화하는 작업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그간 미뤄놓았던 일들이 적지 않았던 것이 좋은 핑계가 되어 나를 도왔다.

    그렇게 글로 감정을 풀어내어 아픈 기억들을 치료하고자 했던 나의 노력은 십 수 년째 답보상태였다.  코로나 사태로 집에 갇혀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별 쓸데없는 생각들을 하게 되었고, 그런 와중에 잊고 있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서 다시 시작해보려 컴퓨터를 켜고 제목을 대충 달고서는 잊었던 기억들을 떠올리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감정이 어찌 사라질 수 있을 까만은 예상보다 훨씬 크게 남아있는 녀석을 발견하고는 흠칫 놀랐다.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더 커진 것만 같은 녀석을 마주하고는 잠시 흔들렸다.  
    ‘그냥 덮어버릴까?’  
    덮는다 하더라도 상처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난감한 순간에 불쑥 튀어나올 것이 분명하다.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나의 내면에 웅크리고 있는 성처들을 끄집어내어 마주 해야한다.  직면만이 답이다.

    앞으로 몇 날이 걸릴지 예상조차 할 수 없지만 이번에는 마무리해보자.  조금씩이라도 매일 써나가자.  이렇게 글을 쓰는 순간에도 체한 듯 명치 끝이 꽉 막힌 상태지만 탈고하는 순간 뻥 뚫리리라 믿고 가자.  거친 물결의 감들이 잔잔해지리라.  세상의 아름다움과 새 생명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만끽하지 못했으니 이제라도 느끼고 누려보자.  코로나 덕분에 하늘도 맑아지지 않았나.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또 저리 맑은 하늘을 볼까.

    그러고 보니 코로나에게 감사라도 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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