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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싼타페 May 22. 2020

나는 아빠다.

    첫 아이가 태어난 지 50일.  그간 친정에서 몸조리를 하고 집으로 돌아온 아내와 아기를 맞이한 나는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오롯이 혼자 아기를 독차지 할 수 있었다.  그 행복이란...


    부족한 솜씨지만 정성스레 준비한 미역국으로 저녁을 차려주고 뒷정리까지 깔끔하게 마무리하고는 아무 짓도 안하는, 정말 아무 짓도 안하고 잠만 자는 아기를 보면서 즐거워했다.  하루 종일 잠만 자는데도 잘 잔다고 칭찬(?)하며 아기를 보고 또 보고 마냥 신기해 했다.  


    잘 때 코를 심하게 고는지라 혹여 방해가 될까 작은 방으로 가는 발걸음이 마치 도살장 끌려가는 소의 발걸음이지만 가족을 위해 이 정도 쯤이야 못해줄까 싶어 쿨 내 풀풀 풍기며 건너갔다.  막 잠이 들려는데 울음소리가 들렸다.  어찌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배가 고파 우는 소리임이 확실하다.  아내를 쉬게 하려는 마음으로 방3에 들어가 혹시나 하며 기저귀를 확인하니 뽀송뽀송하다.  역시 배가 고파 우는 것이었다.  젖을 물려줘야 할 텐데 내껀 내용물이 없어 효용가치가 전혀 없으니 천상 아내를 깨워야 했다.  조심스레 몇 번 흔들었는데 잔다.  참 잘 잔다.  코까지 골며 자는 걸 보니 많이 피곤했나 보다.

    별 수 없이 누워있는 아내의 웃옷을 올려 아기 도시락이 잘 보이게 해놓고는 두 손으로 경건하게 아기를 받쳐 들고는 최대한 편하게 먹을수 있도록 위치를 조정해 주었다.  먹는다.  맛있게도 먹는다.  그런 모습이 마냥 신기해서 또 웃었다.


    한참을 겸손한 자세로 아기를 받치고 있자니 팔이 아파오고 다리가 저려온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다리는 양반 다리도 아닌 발바닥을 서로 마주 보고 있는 자세였고, 팔은 두 허벅지 위에 팔꿈치를 올려놓은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불편한 자세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쩌랴.  나 하나 편하자고 맛나게 먹고 있는 아기의 입에서 젖꼭지를 빼는 것은 못할 짓이지 않은가.  줬다가 뺏는 게 얼마나 치사한지 익히 알고 있기에 더더욱 참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아빠니까!


    한참을 먹은 아기를 안고 밖으로 나가 트림을 시키기 위해 등을 가볍게 쓸어주는데 금방 시원하게 트림을 한다. 트림하는 아기가 또 신기하고 방통하다.  트림까지 했으니 또 자야겠지.  엄마 품에서 편히 자라고 뉘어 주고는 작은 방으로 돌아와 2시간 알람을 설정해 놨다.  아내는 분명 2시간 후에도 깨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까.  아니, 아내의 편안한 휴식을 위해서.  미리 분유를 준비해 놓을까 생각하다가 잠이 들었다.

    알람이 울린다. 얼른 손을 뻗어 알람을 끄고는 고민을 해본다.  일어날까?  다시 잘까?  내가 잠 들면 아내가 일어나겠지?  안 일어나면 어쩌지?  설마...


    두 시간마다 일어나 기저귀 갈고, 분유 타서 먹이다보니 눈꺼풀이 천근이 넘는 듯하다.  선택의 기로에서 한참을 고민하는 중에도 아기의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는걸 보니 아내는 여전히 주무시나보다.  


    꾸역꾸역 일어나 아기에게로 가는 나는 아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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