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싼타페 May 23. 2020

나는 아빠다 No.2

    일 년 가야 두어 번이나 될까?  낮잠을 즐기지 않는지라 어색하기도 했지만, 요즘 들어 많은 일들이 있었고, 특히 두 아이로 인해 많이 피곤했던 날들이 이어졌기에 오늘은 정말 편안한 복장, 편안한 자세, 편안한 마음으로 낮잠에 임했다.  


    평소 쉽게 잠들지 못하던 내가 오늘따라 베개에 머리가 닿기 무섭게 잠이 들었다.  꿈도 꾸지 않을 만큼 깊게 잠이 들어 간만의 편안함을 만끽하고 있는데, 얼마나 지났을까?  가위에 눌린 듯, 담이 걸린 듯 표현하기 어려운 미묘한 불쾌감이 몸 여기저기에 있었지만 굳이 일어나지 않았다.  익숙치 않은 낮잠이라 그런가보다, 빛이 밝아서 그런가보다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기도 했지만 구태여 이 편안한 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나보다.  시간이 갈수록 몸에서 이상한 신호들이 머리를 자극한다.  마치 구조 신호 같은... 꿈까지 꾸기 시작했다.  커다란 바위에 깔려 헤어 나오지 못하고 버둥대는 내가 보였다.  잠시 뒤 온 몸에 쇠사슬을 칭칭 감고 있는 모습으로 바뀌었고 커다란 칼을 든 괴물이 쳐다보고 있었다.  식은땀이 꿈에서 현실에서 동시에 흐르고 있었다.  괴물은 커다란 칼을 높이 치켜들었고 이내 나를 향해 내려쳤다.  그런데 굉장히 천천히 내려치고 있어 겁에 질린 내 모습이 칼의 옆면에 비칠 정도였다.  천천히, 천천히 내려오는 칼과 함께 내 시선도 함께 내려오고, 나는 점점 더 공포에 휩싸였다.  


    살려고 바둥바둥 거리다가 잠에서 깼다.  그런데 여전히 온 몸은 움직이질 않는다.  꿈이 아니었나?  눈을 크게 뜨고 주변을 보니 내가 잠들었던 익숙한 방안의 모습이다.  천장과 벽면을 확인하며 내려오는 나의 시선이 바닥까지 내려오자 몸이 움직이지 못하는 이유를 깨달았다.  

평소의 잠버릇과는 달리 큰 대(大)자로 누워있었고, 나의 왼 팔은 아내가, 오른 팔은 큰 아드님이 사용하고 있질 않은가.  작은 아드님은 내 두 다리를 크게 벌려 마치 1인용 소파인양 사용하고 있고.  

    내가 살이 좀 있다고 평소 내 배 위에서 자기를 즐겨하던 세 사람이 오늘은 사이좋게 나누어 사용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많이 당혹스러웠다.  오, 신이시여!  답답한 게 싫어 추운 겨울에도 이불을 덮지 않는 내게 이런 가혹한 형벌을 내리시다니.  꿈과 현실의 차이는 단 한 가지, 칼 든 괴물만 없을 뿐 뭐가 다른지요.


     몸이 움직이지 못하니 답답하고, 답답함이 계속되니 머리에서는 식은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살며시 탈출을 시도하려는 순간, 오, 주여, 세 사람이 동시에 각자의 두 팔과 다리를 이용하여 나의 사지를 옭아매는 것이 아닌가.  자는게 아니었나하는 착각이 일만큼 즉각적인 반응에 순간적으로 멈칫했다.  그리고 그 상태로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세 사람이 너무도 편하게 자고 있었기 때문이다.


    흑흑흑...

    가족들의 편안한 잠자리를 위해 참아야 하는 나는 아빠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아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