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싼타페 May 24. 2020

나는 아빠다. No.3

나 아빠 맞다고

    직장 : 병원

    직급 : 간호사

    나이 : 비밀 (발설했다가 걸리면 큰일 남.)


    아내는 간호사다. 병동에서 근무하다보니 3교대로 일을 한다. 출퇴근 시간이 그날그날 다르다보니 매일 피곤해한다. 반면 집이 일터고, 일하는 시간이 근무시간이다 보니 육아는 거의 내 차지가 된다.


    오늘처럼 이브닝 근무 때에는 시간 맞춰 어린이 집에 두 아이를 데리러 가는 것부터 시작해서 잠들 때까지 내 시간은 전혀 없다. 잠시라도 한눈을 팔았다 뒷감당하기에 애를 먹었던 일이 한두 번인가. 그래도 늘 해오던 일상이라 별다른 어려움은 없다.


    오늘 저녁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계란 밥’이다. 밥 솥에서 방금 꺼낸 뜨끈뜨끈한 밥위에 노른자를 익히지 않은 계란 프라이, 고소한 마아가린과 참기름을 적당히 넣어주고 간장으로 간을 하면 끝. 이 퍼펙트하면서도 간단한 요리(?)는 아이들이 좋아해서라기보다는 저녁 준비가 귀찮을 때 종종 선택하는 메뉴다.

    맛있게 먹고, 지들끼리 재미나게 놀다보면 어느새 잘 시간이다. 큰 놈 먼저 씻기고 작은 놈을 씻기는데 무척이나 근심어린 표정으로 말을 한다.

    “아빠, 오늘 나 잡아먹으면 안돼.”

    헉, 이게 무슨 소린고. 내가 너희를 안 잡아먹으면 나는 무슨 재미로 사냐? 물론, 내가 아이들을 좀 자주 잡아먹긴 하지만 그래도 그 즐거움을 거를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래서 한 마디 해주었다.

    “야, 내가 지금 왜 너를 깨끗하게 씻겨주는데?”

    말을 알아들었는지 세 살짜리 작은 녀석이 대꾸를 못한다. 내가 이겼다. 흐흐흐, 잠시 후에 보자꾸나.


    다 씻기고 잠옷으로 갈아입힌 후 이불 속으로 집어넣고는 불을 끄고 두 녀석의 사이로 들어가 누웠다. 한 팔에 한 놈씩 팔베개를 해주고는 나의 두꺼운 팔뚝과 말캉말캉한 알통으로 녀석들의 머리를 살포시 감싸 안아서.... 헤드 락.

    낄낄대며 빠져나가려는 녀석들의 몸부림과 못 빠져 나가게 하려는 나의 발광이 뒤엉킨다. 그렇게 한참을 놀아주다 보면 먼저 지치는 건 언제나 내 몫이다. 그럴 때면 언제나 움직이지 않기 놀이를 한다. 장난치기 좋아하는 아이들이라 일부러 몇 번 움직이기도 하지만 이내 잠이 들곤 한다.


    오늘도 변함없이 장난쳐 달라고 움직이고 그에 상응하는 격렬한 응징(?)이 따랐다. 그러던 중 큰 녀석이 한 마디 한다.

    “엄마, 아니, 아빠.”

    “응? 왜?”

    “아빠는 엄마보다 더 엄마같아.”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아빠는 엄마보다 요리도 잘하지, 찌찌도 크지, 우리랑도 잘 놀아주잖아.”

    크헉. 이 무슨 망발인고. 이때 작은 녀석이 끼어든다.

    “맞아.”


    크허허허헉. 직격탄을 두 발이나 맞은 나는 거의 실신 상태에 이르렀지만 혼미해져가는 정신을 힘겹게 가다듬어 대답해주었다.

    “아빠가 그렇게 좋아?”

    “응.”

    “고마워. 이제 자자.”

    그렇게 대화를 마무리하고는 자라고 토닥여줬다. 두 놈을 동시에 토닥이는 게 쉽지는 않지만 하루 이틀인가. 근데 오늘은 더 힘들다.


    엄마라니. 허, 나한테 엄마라니... 이것들이 종종 나에게 엄마라고 불렀던 게 실수가 아니라 본심이었단 말인가? 내가 엄마보다 찌찌가 크다고? 엄마 있었으면 니넨 벌써 죽었어, 이것들아. 니들 분명히 해라. 난 아빠다.


    ‘나는 ‘엄마’가 아니야.‘라고 외치는 나는 ‘아빠’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아빠다 No.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