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를 사는 사람
어슴푸레 새벽빛이 밝아오던 이른 아침에 마날리에 도착했다. 그 전날 오후에 델리의 어딘가에 모여서 관광버스를 타고 밤새도록 꼬불꼬불한 길을 타고 넘어 막 도착한 참이었는데, 불과 열몇 시간 전에 있던 델리와는 완전히 다르게 느껴져서 새삼스레 기분이 상쾌했다. 하늘은 파랬고 공기도 무척이나 쾌적했다. 당장은 50L 배낭을 짊어지고 숙소를 찾아야 했기 때문에 여유롭게 그 느낌을 만끽하고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델리에서 마날리로 오는 버스 안에서 옆자리에 앉은 언니, 오빠와 함께 숙소를 찾아나섰다. 동네를 한 바퀴나 돈 끝에 선택한 곳은, 오래 전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마운틴듀인가 마운틴뷰인가, 여하튼 탄산음료 같은 이름을 가진, 테라스에서 보는 경치가 죽여주는 곳이었다.
마날리는 인도에서 세 번째로 머문 곳이었는데 도시라기보단 마을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합할 정도로 조그마한 곳이었다. 마날리에 머무는 5일 동안 나는 매일 시간을 먹고 사는 한량처럼 마을을 휘적휘적 돌아다녔는데 마을 곳곳을 들러도 3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사실 그것은 올드 마날리에 불과한 부분으로, 마을 아래에 위치한 숲을 통과하여 30분쯤 걸어가면 인도의 읍내라고 할 법한 뉴 마날리가 있었고 거기서 또 30분을 넘게 도로를 따라 걸어가면 하쉬싯이라는 작은 마을이 또 있었다.
나는 주로 올드 마날리와 그 아래의 숲에서 시간을 보냈다. 마날리는 정말 완벽한 마을이었다. 숙소 바로 아래에는, 그다지 섬세하진 않고 투박했지만 맛있는 빵을 파는 베이커리가 있었고 매일 한 잔씩은 마시곤 했던 짜이와 한국음식을 파는 식당도 있었다. 굳이 한국식당이 아니어도, 마날리에는 훌륭한 식당과 카페들이 넘쳐났다. 한량들의 천국 같은 곳이었다. 아무 식당에나 들어가도 지글지글 소리가 아름다운 비리야니(인도식 철판 요리)나 쵸우멘(중국식 볶음면)을 맛볼 수 있었고 아무 카페에나 들어가도 매우 저렴한 가격에 끝내주는 생과일 주스를 마시며 시간을 때울 수 있었다. 힙한 흑백 그림들이 그려져 있던 한 카페에서는 내 생애 처음으로 에스프레소를 마셔보기도 했는데 아메리카노보다 진한 풍미와 쓴맛이 꼭 마음에 들었다. 밤에는 일행들과 펍에 들어가서 맥주를 마시며 재즈밴드의 음악을 들었다. 다들 깔깔대며 웃어댔고 주황빛 조명의 공간이 주는 분위기는 따스했다.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던 파일은 날아가고 일기장조차 잃어버려 지금의 기억이 그 때의 시간들과 꼭 맞게 표현되고 있는 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여유와 행복을 눈 앞에 그려낸다면 바로 마날리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마날리를 채 떠나기 전부터 생각했다. 마날리, 넌 내 두 번째 고향이 될 거라고. 몸이 아니라 마음의 고향. 3일이었던 원래 일정을 5일로 늘리기까지 했다. 그러고서도 인도 여행을 끝마치는 그 순간까지 그리웠던 곳이 마날리이다.
이상하게 마날리에서는 5시만 되어도 눈이 반짝! 하고 떠졌다. 몸이 쳐지거나 머리가 무겁지도 않고 매우 상쾌한 컨디션이었다. 같은 숙소에 머물렀던 언니와 오빠는 그렇게 일찍 일어나지 않았으므로 나는 혼자 테라스에 앉아서 저 멀리 구름을 모자처럼 걸치고 있는 설산과 파란 하늘과 아기자기한 동네를 바라보며 여유를 부리고는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곤 했다. 이른 시간이어서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마날리도, 그 속의 사람들도 아직 기지개를 켜고 있는 듯한 시간이었다. 고요하고 평화로웠던 시간들. 큰 눈망울을 순수하게 반짝이고 있던 아이들과 막 하루를 시작하고 있던 동네 사람들이 어슴푸레하게 기억난다.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고 와서 테라스에서 보이는 경치를 또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보면 언니 오빠가 잠에서 깼다. 우리는 숙소에 간단한 아침식사를 부탁해서 도란도란 식사시간을 가졌다. 그러고는 올드 마날리 아래의 숲에 산책을 하러 갔는데 아, 지금부터 말할 숲이 내가 마날리에서 가장 사랑한 곳이다.
올드 마날리 아래로 내려가다 보면, 숲에 들어서기도 전에 이미 끝도 모르고 뻗은 듯한 침엽수들이 곧고 매끈한 몸매를 뽐내며 서있었다. 숲에 들어서면 잘 구워진 빵 껍질처럼 윤기 나는 멋진 갈색을 가진 나무몸통들이 온통 나를 둘러쌌다. 고개를 들면 이파리가 완벽한 규칙을 가지고 나무에 매달려 흔들리고 있었고 바닥에 떨어져 부드러워진 갈색 이파리는 푹신푹신했다. 중간에는 얕은 깊이의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는데 숲의 입구와 가까운 곳은 거의 흔적만 남다시피 해서 발목까지 적시지 않고도 발을 물에 담글 수 있었다. 운이 좋으면 야크떼를 모는 마날리의 주민을 만나 서로간에 미소를 교환하기도 했다.
나는 매일 아침에 언니오빠와 함께, 그리고 오후에 나 혼자서 꼭 두 번씩 숲에 가곤 했는데 그것은 그 숲이 너무나도 완벽한 하나의 세계였기 때문이다. 그 숲은 누군가와 함께 걸을 땐 천천히 왕복하면 1시간 정도의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산책길이 되어주었다.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하며 깔깔대기도 하고 바위 위에 올라가 가만히 앉아서 숲을 바라보기도 했다. 그러다가도 오후에 나 혼자 나무숲 사이로 난 좁은 오솔길을 걸어가면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나만의 세계로 빠져들 수 있었다. 이어폰을 귀에 꼽고 온전히 숲을 느끼는 그 순간이 좋았다. 거칠거칠한 나무 껍질을 만져보거나 신발을 벗고 맨발로 조금은 축축하고 차가운 바닥을 느낄 때면 마치 내가 그 공간에 속해 있는 것만 같았다. 평평한 바위 위에 누워서 그 어느 것에도 재촉받지 않고 흘러가는 시간을 눈에 담을 듯이 느껴보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늘 쫓기듯이 살았었기 때문에 그 손에 잡힐 듯이 분명했던 여유는 그 이후의 삶에 또 다른 세계를 열어주었다.
나는 한국에서는 참 힘들게 살았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 나를 힘들게 했다. 과거의 아픈 상처들은 흉이 진 채 잘 낫지 않았다. 여러 사건이 얽히고설켜 복잡하게 엉킨 실타래처럼 잘 풀리지 않았다. 어떻게 벗어나야 했는지 잘 몰랐던 나는 벗어날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그 과거를 떠올리고 또 떠올렸다. 생각하면 한 치 앞도 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보는 것처럼 답답한 미래도 나를 괴롭혔다. 내가 선택한 길에서 나는 잘해나갈 수 있을지,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자신감도 확신도 없어 불안하기만 했다. 다들 성실하게 한 발짝씩 앞으로 나아가는 와중에 나만 과거의 기억에 붙잡혀, 미래에 대한 걱정에 발이 묶여 옴짝달싹 못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늘 뭔가를 하라고 나 자신을 재촉했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고, 무엇이라도 해야만 한다고. 여행은 그러한 조바심의 훌륭한 도피처가 되어주었다. 여행을 하고 있는 순간에는 나는 굳이 무언가를 하지 않고도 안심할 수 있었다. 이미 ‘여행’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러고 보면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를 얻고자 여행을 떠난 셈이었다. 그리고 그 자유를 처음 상징했던 곳이 바로 두 번째 여행에서의 마날리였다. 마날리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완벽했다. 단지 동네를 산책하는 것만으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새콤한 생과일 주스를 마시는 것 이상의 것을 나에게 요구하지 않았다. 마날리에서는 그 모든 순간에 나 자신이 존재했다. 쓸데없이 과거로 흘러가 괴로운 기억을 끄집어내지도 않았고 어느샌가 미래로 날아가 부질없는 고민거리를 붙잡아 가져오지도 않았다. 나는 그 순간, 그곳에 있었다. 나는 매일 아침 일어나서 보이는 구름 낀 산과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그 풍광에 감탄했고 투박한 맛의 크로와상을 먹으며 행복했으며 축축한 숲의 공기를 느끼며 기뻐했다. 나는 순간순간에 하염없이 빠져들었다. 바로 ‘지금, 여기’에 존재한다는 것이 어떤 감각인지 느꼈다.
물론 마날리에서 그러한 경험을 해보았다고 해서 쫓기듯이 살던 내가 한순간에 그 어떤 순간이라도 온전히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현재’를 감각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당신이 불안하고 흔들릴 때에, 상처 입은 마음으로 괴로워할 때 그 감각이 힘든 순간을 받아들이고 또 다음의 현재로 나아가는 힘이 되어준다는 것을. 나에게도 그랬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 순간부터 다시 내 삶은 풍랑 속으로 빠져들었지만 마날리에서 경험했던 ‘현재’에 대한 감각이 때때로 나를 붙잡는 기준이 되어주었다. 내 삶은 여전히 불안하고 힘들었지만 그 불안함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새롭게 나아가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흔들릴 때가 더욱 많았지만 무너지지는 않게 나를 붙잡아 주었다. 그래서 나는 마날리로 돌아가고 싶다. 언젠가는 돌아갈 것이다. 다시 한번 ‘지금, 여기’에 있는 감각을 떠올리러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