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3개년의 한국영화시장은 두 갈래로 나뉜다. 2018년과 2019년 한국영화 극장 시장은 한 마디로 ‘마블+음악영화 vs 한국영화’였다. 2018년은 <신과 함께-인과 연>(1200만)이, 2019년은 <극한직업>(1600만)이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다. 나머지 상위 9편은 마블 프랜차이즈 영화와 뮤지컬 영화가 차지했다. 마블의 <어벤저스:인피티니 워>(2018년 2위)와 <어벤저스:엔드게임>(2019년 2위), <앤트맨과 와스프>(2018년 7위)와 <블랙 팬서>(2018년 9위), <스파이더맨:파 프롬 홈>(2018년 7위)과 <캡틴 마블>(2019년 9위) 역시 랭크에 올랐다. 뮤지컬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와 <겨울왕국 2>, <알라딘>도 두 해 동안 3위를 기록했다.
KOFIC의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KOBIS)에 따르면, 2018년과 2019년 국내 극장 박스오피스 상위 50개 영화 중 한화는 29편과 30편, 외화는 21편과 20이었다. 그러나 두 해의 박스오피스 상위 10편 중 한화는 3편, 외화는 7편을 기록해 상반된 결과를 보였다. 개봉 편수와 상영편수에서도 차이를 드러냈다. 한국영화의 제작 및 상영이 외화에 밀린 것이다. 2년 동안 한화의 누적 개봉편수는 661편, 697편이었는데 반해 외화는 1210편, 1249편이었다. 한화의 상영편수도 1959편, 1999편이었지만 외화는 3651편, 3327편이었다. 이 기간에 두 가지가 이목을 끌었다. 첫째, 천만 관객 영화의 숫자다. 2018년의 천만 관객 영화는 <신과 함께-인과 연>과 <어벤저스:인피니티 워> 2편이었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920만 관객을 모아 아쉽게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반면 2019년 천만 관객 영화는 <극한직업>, <어벤저스:엔드게임>, <겨울왕국 2>, <알라딘>, <기생충>등 5편이 이름을 올렸으며 <엑시트> 역시 940만 관객을 모았음에도 아쉽게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2019년의 천만 관객 5편 기록은 최근 10년(2010년~2019년) 중 처음 등장한 기록이었다. 둘째, 다양성영화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다. <콜미 바이 유어 네임>은 2018년에 가장 흥미를 끌었던 다양성영화였다. 관객들이 여전히 거리감을 느끼는 동성애가 소재였지만 20만 명의 관객을 모았다. 2016년 <연애담>도 같은 소재를 삼았으나 관객수 2만 명에 그쳤음을 고려한다면 최근 몇 년 사이 다양성영화에 대한 관객의 관심과 수요가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2019년에는 <벌새>(14만 명), <윤희에게>(12만 명)가 화제를 모았다 특히 여성영화에 대한 수요의 증가로 <82년생 김지영>(300만 명)과 <걸 캅스>(160만 명)가 박스오피스 50위권에 올라 약진했다.
2020년 한국영화 극장 시장은 한마디로 ‘코로나 19와 재개봉의 습격’이었다. 코로나 19는 2020년의 극장 풍경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사람들은 극장을 기피했고 각자 재택에서 IPTV나 OTT 서비스 등을 통해 영화를 시청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올해 1~7월 기준 한화, 회화 극장 누적 관객은 각각 2400만, 1390만 명으로 줄어들었다. 작년 동월 기준 누적관객 6000만 명, 7100만 명의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결국 극장은 ‘흥행작 재개봉’이라는 마지막 수를 두기 시작했다. 2월에는 <기생충>이, 3월에는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 <스타 이즈 본>이, 4월에는 <라라 랜드>가 재개봉했는데 특히 4월의 박스오피스 상위 10편은 모두 외화가 기록했다. 5월에는 <패왕별희-디 오리지널>, <위대한 쇼맨>을 재개봉했고 7월은 <알라딘>, <다크 나이트>가, 현재 8월은 <인셉션>이 재개봉되고 있다. 1월을 제외한 나머지 월별 박스오피스에는 외화의 수가 많았으며 8월 박스오피스 중 재 개봉작을 제외한 외화는 모두 애니메이션 영화다.
이러한 결과를 바탕으로 2018년과 2019년의 한국영화 시장을 되돌아본다. <신과 함께-인과 연>이 전작의 흥행과 탄탄한 스토리라인으로, <극한직업>이 장르의 올곧음과 입소문으로 1위를 달성했다면 그동안 유닛 영화 및 어셈블 영화로써 팬층을 형성했던 마블 유니버스가 <어벤저스:인피니티 워>와 <어벤저스:엔드게임>으로 2위를 수성하며 페이스 4라는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보헤미안 랩소디>의 2018년 3위는 다소 의외였다. ‘퀸’이라는 영국 밴드가 한국 대중문화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그리 넓지 않았기 때문이다. 퀸의 활동 배경은 1970년대였고 당시 한국은 군사정권 시대였고 ‘모던 포크(새로운 통기타)’가 유행하고 있었다. 트윈 폴리오의 리사이틀, 양희은의 하얀 손수건, 김민기 1집이 모두 이때 나왔다. 추억과 지지층이 얕은 퀸을 소재로 한 이 영화가 한국에서 920만 관객을 달성했다? 쉽게 이해가지 않는 부분이다.
필리다 로이드의 <맘마미아!> 흥행을 끌고 와 반문한다면 곤란하다. 아바(ABBA)의 주 활동기도 퀸과 같은 1970년대였으나 필리다 로이드 감독이 <맘마미아!>를 개봉하기 전부터 ‘맘마미아’는 뮤지컬로 현대 대중들에게 익숙했던 그룹이자 노래였다. <맘마미아!>를 뒷받침하는 인지도의 성과와 <보헤미안 랩소디>를 뒷받침하는 <맘마미 마!>의 흥행 재현 및 카피. 결국 이 둘은 너무나도 다른 범주의 영화였다. <보헤미안 랩소디>의 성공 원인을 <맘마미아!>의 그것과 동일시하면 곤란하다.
2019년의 <겨울왕국 2>는 예상보다는 아쉬운 흥행이었다. 2013년 한국을 ‘보내버렸던’ <겨울왕국>은 ‘Let It Go’를 포함한 주제곡들, 디즈니에 이전에는 없었던 ‘위기를 주체적으로 극복하는 여주인공’이라는 새로운 설정에 힘입어 흥행할 수 있었다. 잘 만들어진 전작을 뛰어넘는 후속작을 만들기란 쉽지 않다. <겨울왕국 2>는 <겨울왕국>에 나타나지 않았던 서사의 빈칸을 메우는 스토리였다. 이전의 캐릭터 특징은 여전히 남아있었지만 기억에 남는 노래가 없었다.
그 외 돋보이는 변화는 여성영화의 관심이었다. 이전에는 다양성영화로 포함되었던 여성영화가 박스오피스 상위 50위 안에 올랐다. <82년생 김지영>은 14위를, <걸 캅스>는 33위를 차지했다. 순위에 들지는 못했지만 <피의 연대기>(2018), <밤 치기>(2018), <아워 바디>(2019) 역시 많은 관심을 받았다.
한편 2020년 한국영화시장은 이전의 기간과는 논외로 봐야 한다. 코로나 19가 극장가에 비극적이면서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다. 극장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겼고 때문에 배급사들이 배급 일정을 조정하거나 미루면서 월별 개봉하는 한화와 외화의 불균형이 초래됐다. CGV 등 대형 멀티플렉스의 운영 손해액은 6개월 기준 2천억 원 이상이고, 독립예술영화 전용관의 경우 상당수가 휴관을 선택했다. 극장 매출은 -80%를 넘었다. 영화의 재개봉 등 신작 영화가 극장에 유입되지 않은 것 역시 수입사들 직원들이 재택근무를 함으로써 상영 소스(DCP)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상황 탓에 발생했다.
의외의 변화도 관측됐다. 올해 코로나 19로 인해 사람들이 자택 근무 및 생활에 익숙해짐에 따라 사람들의 문화생활 패턴도 바뀐 것이다. 이를 가장 빨리 알아채고 변화를 시도한 영화는 <사냥의 시간>(감독 윤성현)이었다. 자의 반 타의 반 결정이었다. 리틀 빅 픽쳐스는 이미 홍보비로 20억을 썼기에 극장 손해액까지 감수할 여력이 없었다. 더 이상의 손실을 막기 위해 적잖은 법적 과정을 감수하고 결국 극장 대신 OTT 서비스 ‘넷플릭스’에서 개봉했다.
앞으로 극장 개봉 이전 OTT 플랫폼에 먼저 공개되는 경우가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를테면 씨네 드라마 <학교 기담>은 8월 27일 KT의 OTT 플랫폼 Seezn을 통해 공개됐다가 9월 3일부터는 IPTV인 올레 tv에서, 9월 12일부터는 종편 TV조선에서 방영될 예정이다.
그럼에도 영화의 극장 개봉은 미룰 수 없을 전망이다. 코로나 19 속에서도 이미 <반도>와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가 개봉했다. 많은 제작비가 투입된 <승리호>도 올 9월 개봉을 앞두고 있다. 마블의 <블랙 위도우>, <뉴 뮤턴트> 도 코로나 19 사태 및 제작과정에서의 난항으로 인해 그동안 개봉을 미루어 오다가 올 9월 개봉을 발표했다. 투자사와 제작사 입장에서는 투자금 회수와 스태프 임금 지불 등을 위해 더 이상의 극장 개봉을 미뤄서는 안 되는 실정이다.
정책의 영향도 외면할 수 없다. 올 3월 27일 발표된 ‘소상공인 금융지원 신속집행’에 영화업은 지원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영화산업의 특수성을 반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4월 21일 문화체육관광부가 코로나 19 피해를 입은 영화산업에 170억 원을 투입했다. 단기 실업 상태에 놓은 현장 영화인 700여 명에게 8억 원 규모의 직업훈련 및 생계비 지원도 실시됐다. 영화산업 정상화를 위한 특별전 개최와 1차 할인권 등의 지원금으로 각각 30억, 90억 원을 투입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2차 할인권의 배포 잠정 중단과 코로나 19 2차 확산 등으로 위기를 맞을 전망이다. 극장은 문화적 공공재다.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더욱 필요하다.
결국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영화시장을 대비해야 한다. 현재 극장이 겪은 위기는 ‘신작들의 극장 개봉 연기’다. 이미 미국은 ‘20세기 폭스 사 외 9개’ 제작사들이 자사 영화들의 개봉일은 잠정적으로 연기했다. 국내에서도 8월 19일 개봉 예정이었던 <국제수사>는 개봉을 잠정 연기했고, <칼 일라스 가는 길>은 8월 27일에서 9월 3일로 미뤘다. 언론 및 배급 시사를 해고했었던 <테넷>, <기기괴괴 성형수>, <아웃포스트>, <후쿠오카>, <고스트 오브 워>, <나를 구하지 마세요> 등이 시사회와 기자간담회를 취소하고 온라인을 통해 시사회와 제작보고회를 결정지었다.
OTT 플랫폼의 경쟁구도도 그려질 전망이다. 미국의 OTT 시장은 넷플릭스, 아마존, 훌루, 디즈니 플러스, 애플 TV 플러스, HBO맥스, 피콕 등이 코로나 19 시대에 들어서 치열한 경쟁을 그리고 있다. 특히 넷플릭스의 경우 2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가입자 수가 190개국 1억 9300만 명을 돌파했다. 디즈니 플러스 역시 서비스 9개월 만에 6050만 명의 가입자를 달성했다. 실제 디즈니의 OTT부문은 디렉트 투 컨슈머 사업 부문 매출에서 41억 달러 이상을 벌었다.
아마존이 프라임 비디오는 조금 다르다. 가입자 수가 아닌 이용시간으로 수익을 내리는 시스템 상 영화 스트리밍 서비스 이용시간이 급증하며 수익이 증가했다. 아마존 프라임 가입자는 현재 1억 5천만 명이며 연 회원비는 한화 약 월별 16만 원가량이다. 비회원은 월 1만 원에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국내 OTT 시장도 변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토종 OTT인 왓챠 플레이는 월 약 8000원으로 이용할 수 있다. 넷플릭스 역시 스탠더드 기준으로 월 약 13000원에 이용 가능하다. 영화 수익의 급감을 고려한다면 프리미엄 서비스를 추가 형성하는 것이 합리적으로 보인다. 이미 유튜브는 일반 구독자들을 위한 ‘멤버십’ 서비스를 통해 크리에이터에게 부가적인 이익을 보장하는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이를 바탕으로 영화의 감독판 및 마니아 층이 형성된 영화 등을 프리미엄 패키 징하여 부가수익을 창출해야 한다.
그렇다면 극장사업이 기울고 OTT 서비스가 강세하는 시기가 올 것인가. 극장이 장기침체에 빠질 것은 확실해 보인다. 코로나의 기세가 줄어들거나 기대작품들과 거대 프랜차이즈 영화들의 개봉이 관객들을 극장으로 유혹하지 않는 한 말이다. 국내 진출 가능성이 있는 디즈니+나 애플 TV+,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등의 해외 OTT 서비스의 잠재성도 무시할 수 없다. IPTV, 각종 OTT 서비스와 제휴를 맺고 있는 국내 통신사들, 아직 모습을 보이지 않은 해외 OTT 서비스 등의 존재감은 극장산업을 압도할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프로듀서들이 영화를 극장과 OTT 플랫폼 중 어디에 보낼 것인지 고민해야 하는 시기다. 극장 입장에선 공급과잉 문제를 해결하고 프로듀서들도 플랫폼에 맞는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다. 특히 OTT 플랫폼에서는 실패를 했더라도 제작비를 받아 다음 작품을 시도할 수 있기 때문에 극장과 OTT의 순환은 영화인들에게 힘을 불어넣어줄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극장이 정상적으로 운영된다는 전제 하에서다
그러나 이런 OTT 서비스의 활성화 중에서도 한국 영화산업은 웃지 못할 전망이다. 최근 넷플릭스는 공식적으로 한국 콘텐츠 제작 일정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한국 콘텐츠 제작에 참여하고 있는 제작진들의 건강을 염려해서다. 토종 OTT 서비스 업체 ‘왓챠 플레이’ 역시 걱정에 휩싸여 있다. 8월 5일 영화수입배급사협회(이하 수배협)가 왓챠·웨이브·티빙 등 국내 OTT 서비스에 영화 콘텐츠 제공을 중단키로 발표했기 때문이다. 저작권료 배분이 문제의 핵심인데, 전체 콘텐츠의 시청 수에서 작품 별 비율을 따져 저작권료를 정산하는 국내 OTT의 특성상 영화 콘텐츠는 러닝타임이 짧고 여러 회차 관람이 유도되는 예능 및 드라마 시리즈에 비해 불리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영화산업과 OTT 플랫폼 역시 변화를 피할 수 없다.
극장 입장에서는 정부의 정책적, 경제적 지원이 간절하다. 국내 영화관 시장은 수익의 75%를 극장 매출에 의존한다. 이를 돕기 위해 7월 27일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코로나 19 극복, 한국영화 개봉 활성화 특별지원’에 따르면 3억 4찬 만원의 지원금으로 영화의 온라인 마케팅, 디자인, 예고편 제작 등의 홍보 마케팅 대행료가 지원될 예정이다. 2021년 3월 31일까지 진행되는 이 정책은 해당 기간 내에 개봉 예정인 순제작비 60억 원 이내 신작 한국영화 배급사만 지원할 수 있다. 한계적이고 적은 수준의 지원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정부 입장에서는 더욱 공격적인 극장 지원 정책을 구상하고 시행할 필요가 있다.
다양한 영화 시청 방법이 나오고 있다. IPTV를 보거나 인터넷 플랫폼에서 영화를 구입해 보거나, OTT를 통해 영화를 보거나 하물며 집 안에 빔 스크린을 설치해 극장 환경을 조성하는 등 극장을 대체하려는 시도가 등장하고 있다. 당장 5년, 10년 뒤에는 어떤 영화 시장이 펼쳐지고 있을까. OTT 시장에 맞춰 제작 투자금액을 조절하거나, 블록버스터 영화의 감소와 클래식 옴니버스 영화의 등장이 관객의 이목을 사로잡을 수도 있다. 또는 코로나 19가 종결되지만 극장은 재정 회복을 위해 규모가 줄어든 현재 상태를 유지하며 운영될지도 모른다. 확실한 건 미래 영화시장의 규모가 줄어들 것이라는 점이다. 극장의 약세와 부가판권 수입의 하락은 어찌 됐던 수입뿐 아니라 차후 제작의 규모에도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보아왔던 거대하고 엄청난 스케일의 블록버스터 영화는 점차 모습을 감춰갈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