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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디조 Jan 22. 2022

출퇴근길 누비기

직장은 살고 있는 오피스텔로부터 시내버스로는 10분, 걷기로는 50분 정도 되는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걸어 다닐 수 없는 거리라 생각했기에, 일을 시작하고 일주일은 시내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했다. 서울에 살 때에는 무조건 지하철만 이용했는데, 버스 멀미가 유독 심했기 때문이었다. 창원에서도 버스를 멀리 하고 싶었지만, 이용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 버스밖에 없었다. 출근과 퇴근 시간에 각각 10분만 꾹 참고 버스를 타면 됐지만, 버스에서 내릴 때면 어김없이 머리가 핑 돌고 온몸에 기운이 쭉 빠지는 듯한 어지러움증이 느껴졌다.


기분 좋게 시작하고 마무리 짓고 싶었던 출퇴근 시간이 점점 고통스럽게 느껴질 때, 번뜩 좋은 해결방안을 떠올리게 됐다. 첫 출근 때 회사 직원이 이야기 해준 창원의 공용자전거 ‘누비자’가 생각난 것이다. 당시 직원은 서울의 ‘따릉이’와 비슷한 것이라 ‘누비자’에 대해 소개하며 사용법, 위치, 가격 등도 친절히 덧붙여 설명해 주었다.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누비자 회원으로 가입하고 1년에 3만 원이라는 아주 저렴한 가격을 결제하고 나면, 자전거가 세워진 정거장에 가서 카드를 등록해 당일부터 바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누비자’가 생각이 난 김에 자취방에서 회사까지의 자전거 이동 시간을 지도 앱에 검색해 보았다. 시간은 약 15분 정도로 딱 적당한 출퇴근 시간이라는 판단이 섰다. 그리고 다음날 곧장 1년 치 누비자 회원권을 구입했고, 현재까지 날씨가 궂은 때를 제외하고는 꾸준히 자전거 타고 회사에 다닌다.




단순히 어지러움증을 피하기 위해 선택한 자전거는 생각지도 못한 이점을 느끼게 해 주었다. 계절의 변화를 가깝게 느낄 수 있다는 것도 만족스러운 부분 중 하나였다. 자전거를 타는 길가에는 양 옆으로 빽빽하게 심어진 나무와 이름 모를 식물들이 심어져 있다. 첫 출근을 하던 3월은 겨울이 막을 내리고, 봄의 새잎이 돋아나던 시기였다. 자전거 페달을 밟다 보면 돋아나는 새잎에서 은은하게 풀내음이 번져오곤 했다.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던 때에는 길가가 온통 초록색으로 덮였고, 매일 아침 푸릇푸릇한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시력이 좋아지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페달을 조금만 세차게 굴려도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도 했다.


나무잎이 빨간색, 노란색, 갈색 등으로 알록달록한 변신을 시작하던 가을에는 여름 내내 이마에 맺혔던 땀방울도 금세 자취를 감추었다. 떨어지기 시작한 낙엽 위로 바스락 소리를 내며 자전거를 타는 것도 힐링이었다. 겨울이 가까워질 때에는 나무에 힘겹게 매달려 있던 마지막 낙엽들이 세찬 바람에 후두둑 떨어졌다. 특히나 침엽수 잎을 가지고 있던 나무에서 낙엽을 마구 떨구던 날엔,   위에 내려 꽂혀 얼얼함이 느껴지던 출근길도 있었다. 요리조리 자전거 핸들 방향을 바꾸어 가며 낙엽을 피하려 노력해도, 볼을 세차게 스치며 떨어지는 잎은 막을 수가 없었다. 추위가 한창인 요즘 같은 1월엔 귀여운 여우 캐릭터가 수놓아진 털장갑이 없으며 손이 꽁꽁 얼어 자전거 타기가 힘들 정도이다.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것 외에도 자전거는 아침, 저녁 시간에 따라 전혀 다른 용도로 일상의 활력이 되어주고 있다. 아침 햇살을 듬뿍 받는 출근길에는 자전거 안장에 엉덩이를 대는 것과 동시에 청춘드라마 속 여주인공으로 빙의된다. 에어팟을 양쪽 귀에 꼽아놓고, 싱그러운 멜로디의 음악에 맞춰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바람결에 따라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분위기. 그 설레는 분위기에 매일 아침 잔뜩 취하고 있다.


반대로 퇴근길은 어떤 아름다운 음악과 풍경이 있더라도, 그것을 즐길 수 있을 만큼 나의 마음이 풍요롭지 않다. 회사생활에 스트레스가 잔뜩 쌓여 지끈지끈 머리가 아파오는 날들이 더 많다. 가끔 사그라들지 않는 분노가 폭발하기 직전까지 차오르기도 한다. 이런 날의 자전거 타기는 누구도 나의 지친 얼굴을 보지 못하게 페달 밟는 속도를 계속 높이게 된다. 그리곤 꽉 막혀있는 가슴속 울분을 끄억끄억 소리 내어 눈물로 터트린다.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을 욕도 바람에 묻히길 소망하며 멀리 뱉어본다. 고단한 마음을 곳곳에 흩뿌리며 정신없이 달리다 보면, 어느새 집 근처 정거장에 도착해 있다. 자전거를 세워두고 집으로 걸어가는 길엔 무거웠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져 있는 나를 마주하게 된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어도 또다시 기다려지는 ‘누비자’를 타는 시간. 그 시간이 있기에 출퇴근 길을 즐기는 마음으로 누비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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